브루더호프공동체의 크리스마스
[[휴심정] 박성훈의 브루더호프 이야기]
천사들 모두 모여라 아기 예수님 맞아라
촛불을 켜서 환하게 마굿간 밝히 비추라
라라라라라 랄라라…
아침 6시가 되자 오늘도 어김 없이 아침을 깨우는 예쁜 노래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옆집에 사는 2살짜리 엘리가 일어나자 마자 노래를 부르며 다닙니다. 조그만 입으로 얼마나 또박또박 이쁘게 부르는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엘리 덕분에 저희 집엔 알람시계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에도 정확히 6시가 되면 노래를 부르니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싶어도 노래 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지네요.^^
아뭏튼 청아한 엘리의 노래 덕분에 상쾌한 아침을 맞고 이메일을 열어보니 반가운 소식이 와 있습니다. 저희 공동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벨베일 공동체에 사시는 제프 할아버지와 수잔 할머니께서 ’Cheese evening’을 한다며 우리 가족을 초대하셨습니다.
수잔 할머니는 매주 금요일이면 아이들과 함께 치즈를 만드시는데 한번은 제가 할머니께 어떻게 치즈를 만들게 되셨냐고 여쭤봤더니 할머니께서 30년전에 캣츠킬 공동체에 사셨답니다. 그 공동체에는 젖소가 2마리가 있었는데 공동체 전체를 먹이고도 우유가 남아 젖소를 돌보던 형제가 수잔 할머니께 혹시 치즈를 만들어 보겠냐고 해서 그 때부터 치즈를 만들어 왔다고 하십니다. 처음에는 만들기 쉬운 크림치즈부터 시작하다가 책을 보면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종류의 치즈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저도 미국에 와서 치즈 매니아되었는데 이날을 위해 지난 1년간 숙성시키며 정성스럽게 만들어온 수잔 할머니의 수제 치즈를 맛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면서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드디어 ‘Cheese evening’날이 왔습니다. 여기 저기 다른 공동체에서 온 형제들과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인사하면서 홀에 들어가니 할머니 자녀들과 손주들이 크리스마스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치즈가 차려진 테이블로 가보니 세상에나… 이렇게 멋지게 차려진 치즈는 처음 봅니다.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치즈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한 20가지는 넘는 것 같습니다.
치즈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유에 박테리아를 첨가하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순두부 같이 생긴 ‘커드’라 불리는 고체와 물과 같은 ‘유청’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 커드를 천에 담고 유청을 짜내면 단단한 치즈가 되는데 우유의 온도와 숙성기간, 박테리아의 양과 유형에 따라 맛과 질감이 달라지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치즈는 보통 톰과 제리 만화에서 나오는 구멍이 뻥뻥 뚫어져 있는 스위스 치즈입니다. 스위스 치즈도 종류가 많은데 ‘치즈 아이’라 불리우는 구멍이 있는 치즈는 스위스 에메 계곡에서 생산되어 에멘탈이라 불리우는 치즈입니다. 이 구멍은 치즈가 숙성되는 중에 박테리아가 발효하면서 내는 가스가 치즈 안에 갇혀서 생긴 것이라 합니다. 수잔 할머니는 여러가지 허브 등을 넣은 몇종류의 스위스 치즈를 만드셨는데 알싸한 맛이 내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스위스 치즈 옆에는 우리 가족 모두 좋아하는 브리(Brie) 치즈가 있네요. 브리치즈는 파리 La Brie지역의 이름을 따서 만든 프랑스의 대표적인 치즈로 하얀 껍질부분과 안쪽에는 크림과 같이 하얀 부드러운 치즈입니다. 수잔 할머니에게 브리 치즈 만드는 비법을 물어보니 껍질부분은 하얀 곰팡이를 피워 몇달간 숙성시켜 만들고 흰곰팡이로 인해 살아 있는 치즈의 껍질이 치즈의 단백질을 분해해 안을 부드럽게 만든다고 합니다. 크레커에 부드러운 브리치즈 한조각 올려 먹으니 입에서 살살 녹으며 감칠맛 나는 것이 일품이네요.
브리 치즈옆에는 네델란드 고다 지방에서 만들어져서 이름이 붙여진 고다치즈가 있네요. 고다치즈를 처음 만들때는 부드러운 맛이 나지만 1년에서 4년까지 숙성되는 동안 맛은 더 날카롭고 강한 맛이 납니다. 고다 치즈 옆에는 크림치즈에 아몬드와 건과일, 허브와 베이컨등을 섞어 만든 치즈볼이 있네요. 자매들이 만든 아티산 브레드에 크림치즈를 발라 발라 먹으니 달달한게 디저트로 딱 좋네요.
형제들과 담소하면서 수제 치즈 하나하나를 음미하니 참 행복해지네요. 아내와 함께 손님들과 바쁘게 인사하시는 제프할아버지, 수잔할머니에게 인사드리니 잘 왔다며 너무나 반가와하십니다. 숙제때문에 같이 못온 유빈이를 못봐 아쉬워하시며 원하는 만큼 가져가 유빈이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제프할아버지와 수잔 할머니는 저희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하신 분이십니다. 15년전 저희 가족이 우드크레스트 공동체에서 영국에 있는 비치그로브공동체로 이사 갔을때 공동체에서는 친척이 없는 저희 가족을 위해 특별히 이 두분을 하빈이와 유빈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저희 공동체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이나 싱글들, 가족이 없는 노인분들도 혼자 살게 하지 않고 다른 가정에 속해 한 가족으로 서로 돌보게 하는데 이 두분이 우리 아이들의 조부모님이 되어 주신 겁니다. 그당시 저희집 큰 아들인 하빈이가 5살이었는데 하빈이는 매주 금요일 아침식사에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하빈이는 할머니가 만드신 감자요리가 맛있다며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의 생일을 잊지 않으시고 때마다 챙기셔서 선물을 주시곤 했는데 모두가 할머니가 직접 만든 것이었습니다. 야생화들을 말려 장식한 멋진 초와 아이들을 위해 직접 손으로 손뜨개질해서 만든 고양이, 생쥐 인형, 양털로 만든 천사등 할머니의 아이디어는 끝이 없습니다. 성탄절이 오면 크리스마스 나무 밑에 선물을 놓고는 매년 우리 가족을 불러 아이들에게 직접 만드신 선물들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백발의 머리에 멋지게 생기신 제프 할아버지는 마음이 참 따뜻해 제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면 그 때마다 인자하신 얼굴에 맑고 그윽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시며 제가 길을 잘 찾아 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격려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벌통을 만들어 들판에 놓고 양봉도 하시고 수제 맥주도 기가 막히게 잘 만드셔서 주말이면 할아버지가 하는 일을 조금씩 거들면서 방금 만든 신선한 맥주도 맛보곤 했습니다.
저희가 3년후 이곳 메이플릿지로 이사 오기 위해 영국 비치그로브 공동체를 떠나올때는 할머니께서 저희 가족을 위해 아내에게는 드레스를 저와 아이들에게는 셔츠를 같은 천으로 세트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제프 할아버지께서는 직접 운전하시며 저희를 공항까지 배웅해 주셨는데 작별인사를 할때는 할아버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셔서 저의 마음도 울컥해 왔습니다. 두분은 저희가 미국 공동체로 이사온 이후에도 저희 가족 생일과 결혼기념일마다 한번도 잊지 않으시고 인편을 통해 늘 선물과 안부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우리 가족을 친 자녀, 손주 같이 섬겨준 두분의 사랑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고자 할때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를 백배나 받게 된다는 마가복음의 말씀을 떠오르게 됩니다. 아무쪼록 저희도 두분에게서 받은 사랑의 빚을 다른 이들에게 흘러 보내길 바랄뿐 입니다.
오랫동안 영국 공동체에 계시던 제프할아버지, 수잔 할머니께서 드디어 몇년전에 이곳 미국 공동체로 이사를 오셨는데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손을 분주히 놀려 주변의 사람들을 열심히 섬기십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따님 가족과 함께 길가에 가판대를 놓고 직접 만드신 파이, 쿠키, 잼을 판매해 지역 사회의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돕고 아이들에게 공예도 가르치시고, 공동체내에 어려움을 겪는 자매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격려합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할머니는 멋지게 공예품을 만들어 마운트 고등학교 바자회에 보내시곤 합니다.
한달 전부터 저희 공동체 게시판에도 마운트 고등학교에서 바자회를 하니 원하는 사람은 공예품을 보내달라는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일하는 룻 할머니께서도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 수 있는 점토로 만든 예쁜 아기 사과를 만드느라 바쁘십니다. 옆집에 사는 크리스틴 역시 나무에 우드버닝으로 멋진 그림을 새겨 보냈네요.
이번 바자회는 마운트 고등학생 건축 클럽 학생들이 만드는 ‘헤비타트 집 만들기 프로젝트’ 기금마련을 위해 열렸습니다. 건축 클럽 학생들은 작년부터 헤비타트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집을 지어 왔습니다. 건축클럽에는 공동체에서 수년간 건축일을 담당해온 형제들이 학생들에게 기본부터 철저하게 가르쳐 웬만한 건축팀 못지않게 학생들이 멋지게 집을 지었습니다. 학생들은 방학때에도 시간을 내어 집을 지어 작년에 집 두채를 만들어 옆 카운티의 어려운 이웃에게 새 보금자리를 보냈고 올해도 새로운 집을 만들고 있습니다.헤비타트 본부에서도 고등학생들이 이 프로젝트를 한다니 놀라워하면서 기뻐하십니다.
드디어 바자회날이 왔습니다. 지역 사회 주민들도 학생들이 하는 일을 후원하기 위해 많이들 오셔서 바자회장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동안 마운트 학생들은 바자회를 위해 공예품도 만들고 쿠키도 굽고 리스도 만들면서 분주한 시간을 보냈는데 특별히 클럽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여 멋진 공예품을 만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웰딩클럽 아이들의 작품입니다. 마운트 고등학교에서는 몇년 전부터 웰딩클럽을 만들어서 가르치고 있는데 저희 공동체 주 사업인 ‘Rifton’ 이라는 장애인 기구를 만드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웰딩 파트를 담당해온 형제들이 학생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운트 웰딩클럽은 올해 SkillsUSA 웰딩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는데 역시나 학생들이 만든 촛대며 장식품들이 어딜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특히 모닥불을 피워 그위에 그릴을 올리고 숯의 화력 정도에 따라 그릴을 위아래로 조절하게 만든 파이어 핏이 제맘에 속 듭니다.
목공클럽 아이들도 테이블과 도마등 멋진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젖소모양을 한 카우벤치는경매에 붙여졌는데 150달러에 주인을 찾았네요. 카드너와 블루제이새 모양을 해 그 속에 새모이를 넣어두어 새들이 날아오게 만든 새 모이통도 정말 마음에 듭니다. 이것 역시 경매에 붙여졌는데 150불에 팔렸네요.
낙농업클럽 학생들이 직접 양봉한 꿀을 넣은 곰돌이도 산타 모자를 하고 있는 것이 참 귀엽고 직접 기른 계란과 양털, 빵, 쿠키코너도 아주 분주합니다. 나무 열매와 꽃잎들을 말려 만든 크리스마스 리스도 너무 이쁘고, 자연물을 이용해 등대를 만든 작품도 아주 멋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든 양초와 도자기, 귀여운 크리스마스 인형들, 쿠션과 앞치마등 마치 공예 박람회에 온 것 같이 눈을 뗄 수 가 없습니다. 공예품을 사러 온 지역 사회 이웃들도 다 마음에 들어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며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입니다.
어려운 이웃들의 새 보금자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헤비타트 집 짓기에 기쁨으로 동참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오셔서 학생들이 오랫 동안 수고해 만든 정성 가득한 공예품을 즐겁게 사가시는 지역 사회의 이웃들을 보니 제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작은 불꽃 하나 하나가 모여 밝게 빛을 내듯 여기 저기서 손을 내밀어 좀더 따뜻하고 밝은 세상이 퍼져가길 소원하며 성탄의 노래를 함께 나눕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천사의 노래 들리면 땅에서는 평화를
아기예수를 생각하라 성탄절 아침에
성도여 일어나서 성탄빵을 구어라
세상은 어둡고 사랑원해
성탄이 밝아 오네
천사의 노래 들리면 성탄 기쁨 나누라
나눌수록 즐거워지네 성탄절 아침에
성도여 일어나서 성탄 불을 지펴라
세상은 춥고 지쳐있네
성탄이 밝아 오네
천사의 노래 들리면 문을 활짝 열어라
많은 이들이 들어오게 성탄절 아침에
성도여 일어나서 문을 활짝 열어라
문밖에 많은 이들 기다리네
성탄이 밝아 오네
글 박성훈(미국 브루더호프 공동체원, 메이플리치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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