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10억 빼돌려도 아무도 몰라…피같은 돈 줄줄 새나간 그곳

권오균 기자(592kwon@mk.co.kr), 박제완 기자(greenpea94@mk.co.kr) 2022. 12.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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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회비
정부와 여당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깜깜이 회비 사용’를 정조준하면서 노조비 지출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심심찮게 터져나오고 있는 노조 간부들의 횡령 사건이나 집행의 투명성 문제 등도 이같은 주장에 힘을 더하고 있다.

18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고위당정회의에서 “그간 노조 활동에 대해 햇빛을 제대로 비춰서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노조의 재정 운영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 정부가 과단성 있게 적극 요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주노총 등 노조의 재정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노조의 재정 정보를 상세히 들여다보고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113만명(2020년 고용노동부 통계)으로부터 조합비를 받는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조합비는 정규직 노동자 1인당 월 1450원, 비정규직 노동자 1250원, 최저임금 노동자 860원이다. 조합원 중 비정규직 비율이 35%이고, 이 중 절반 정도가 최저임금 노동자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건설·사무금융·전교조 등 다른 산별노조까지 합치면 민주노총 전체로는 연간 조합비가 1700억원을 넘어설 것이란 추정치가 나온다.

그렇지만 노조가 회계를 공개해야 할 강제 규정은 없다. 노조법 25조에는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회계감사원으로 하여금 6개월에 1회 이상 당해 노동조합의 재원 및 용도, 주요한 기부자의 성명, 현재의 경리 상황 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게 하고 그 내용과 감사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이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회비는)상·하반기 내부 감사를 받고 감사위원은 민주노총 내부 절차로 선임한다”며 “감사 결과는 대의원 회의에서 공개하고 확인받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19일 성명서를 내고 “노조 기금과 사업비는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예산계획 안에서만 움직인다”며 “단 1원도 회계상 지정된 항목을 벗어나 집행될 수 없다. 결산보고서는 매년 400쪽 규모로 제작해 전 조직에 배포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속노조는 “이것으로 모자라 선출한 감사 5인이 금속노조에 상주하며 일상적인 회계감사와 원 단위 업무 감사를 진행하고 수정을 지시한다. 감사는 집행체계와 분리해 독립적이고 조합원에게만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끊이지 않는 조합비 사용의 투명성 문제는 계속 제기돼 왔다. 민주노총의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최근 주목받은 일은 포스코 복수 노조 중 한 곳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지난달 30일 금속노조를 탈퇴한 사건이다. 포스코노조는 2018년 가입 이후 수억 원의 조합비를 냈는데, 금속노조가 사실상 조합비만 챙겨가고 도와주지는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민주노총을 떠났다.

노조 간부 개인의 비리도 적지 않았다.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진병준 전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의 조합비 횡령사건이다. 진 전 위원장은 지난 2019년부터 3년여 동안 조합비에서 현금을 인출해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6월 구속됐다. 진 전 위원장은 직원들에게 상여금을 준 뒤 자신의 가족 계좌로 돌려받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횡령이 의심되는 총금액은 10억여원에 달한다. 한국노총은 7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산하 조직인 건산노조를 제명한 바 있다.

현대제철 노동조합에서는 노조 지회장이 조합비 7000여만원을 횡령한 데 더해 임단협 노사 합의안 조합원 투표에서 투표함을 바꿔치기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 지회장을 포함한 전 조직부장과 전 부지회장은 지난해 7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지난 4월에는 조합비 3억7000여만원을 빼돌려 유흥비, 개인생활비, 해외여행비용 등으로 사용한 민주노총 전 지부장이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도 발생했다.

학계와 경영계를 중심으로 노조 회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조합의 본래 취지인 근로조건 개선 등에서 벗어난 정치 투쟁을 하면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투명하게 노조비 내역을 공개하면 정부가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가압류를 하지 않아 노조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부분 선진국은 독립성을 갖춘 외부 회계 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의 경우 단지 결산 내역만 공개하고 있어,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노조비 사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은 좋은 방향”이라면서도 “과도하게 노조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사정 각각 서로 자율적인 기구인데 국가가 과다하게 개입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지 않으면 국가가 노조를 탄압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관계자는 “조합원 숫자가 많은 대기업 노조에서 대규모로 조합비를 횡령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영세한 산별 노조 사업장에서는 조합비로 투쟁 사업을 벌이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주노총에서는 간이 영수증 사용도 금지하고, 외부 기관에 맡겨 회계감사를 진행하는 산별 노조도 많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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