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반도체 리스크`에 빠진 SK
계열사들 현금 확보 사활
자회사·보유 건물도 매각
中 다롄 공장도 애물단지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도체 리스크'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5월 경기 분당 정자동에 있는 SK U타워의 소유권을 SK리츠에 5072억원에 매각했고, SK E&S의 100% 자회사인 부산도시가스는 지난 19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본사 사옥 등을 대우건설·SK증권 등 컨소시엄에 6328억원에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SKC는 지난 2일 사모펀드(PEF)인 한앤컴퍼니에 필름사업부문인 SKC미래소재 지분 100%를 처분하고 1조5950억원의 매각대금을 받았다. SK온은 최근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최대 1조3000억원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SK그룹의 재무적 상황은 썩 밝진 않다. 향후 5년간 24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핵심 '캐시카우' 역할을 해야 할 SK하이닉스의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어서다. 지난해까지 SK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던 SK하이닉스가 10년여 만(2012년 3분기 이후)의 분기 적자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올 4분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1조4000억원 안팎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올해 사상 최대인 5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계열사인 SK온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 증설 투자에 조 단위의 투자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여력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와중에 SK하이닉스는 또 다른 악재도 가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중국 다롄에 있는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솔리다임)를 인수하기로 하고 작년 말 1차 인수 대금으로 70억달러(약 8조3000억원)를 지급했고, 2025년 3월께 나머지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을 2차로 지급해야 한다. 여기에 추가로 현지 사무실 재정비 등에 수백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메모리반도체 시황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솔리다임의 누적 순손실만 9000억원에 이르고 있어 SK하이닉스의 자금 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패권다툼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점도 부담이다.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1년간 장비 수입 유예를 적용하면서 당장의 부담은 아니지만,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동맹을 일본과 대만, 네덜란드 등으로 확장하고 있어 추가 제재의 가능성은 계속 열려있다.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략도 변수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사업의 명줄을 쥐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D램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사가 전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큰 변수가 없지만, 낸드플래시는 30%대 점유율인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이 10%대 점유율을 기록하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낸드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감산 없이 생산량을 늘릴 경우 나머지 업체들의 수익성 압박은 더 심해진다. 낸드 사업이 계속 적자를 이어갈 경우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D램 의존도는 더 높아지고, 사업다각화를 위해 90억달러를 투자해 인텔 낸드 사업을 인수한 것은 큰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SK그룹이 투자계획을 지킬지 여부는 '반도체 보릿고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달렸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12.6% 하락해 1344억달러에 그치고, 내년에는 이보다 17% 더 하락하며 2년 연속 역대급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업체는 다만 "2026년까지 반도체 매출은 연평균 6.5%의 성장세를 기록할 것"이라며, 반도체 보릿고개가 내후년에는 끝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예상이 맞아 떨어질지 여부가 SK그룹의 재무 건전성 확보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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