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블라디미르 ‘배우 김성옥 연구’ 영전에 올립니다”

한겨레 2022. 12. 1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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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가신이의 발자취] 배우이자 연출가 고 김성옥 선생을 기리며
지난 2021년 3월 목포 원도심의 카페 밀물에서 고 김성옥(왼쪽) 선생과 전성희(오른쪽) 교수가 구술 인터뷰를 하면서 함께한 모습이다. 필자 제공

최근 2년간 고향 목포에서 인터뷰
지난 15일 ‘평전’ 출판 이튿날 ‘부고’
“병상에서 딸이 읽어준 원고 듣고…”

최근 몇년 동안 목포 나들이는 참으로 놀라운 시간이었다. 지난 2019년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 평전’ 집필을 맡아 관련 인터뷰를 위해 김성옥 선생님과 약속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길은 마치 나를 운명처럼 그의 생, 특히 연극배우로 활동했던 그의 삶 속으로 이끌었다. 자주 목포에 내려가 선생님을 만나면서, ‘김성옥 연극인생’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2년에 걸친 그와의 긴 인터뷰를 끝내고 지난 가을 평전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2022년 12월 15일, 드디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다음날인 16일 선생님의 부고를 받았다. 병상에서 따님이 읽어주는 원고를 듣고는 서둘러 가버리셨다고 했다.

무슨 운명이었을까? 나는 그를 기록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는 자신의 연극인생을 정리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1935년 목포에서 태어난 김성옥 선생님은 목포중·고교를 나와 1956 년 고려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목포시사> 에서 그를 “목포가 낳은 최고의 배우” 라고 부를 만큼 그는 천상 배우였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연극을 시작했던 선생님이 대학 진학 후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종교에 심취해 있었던 그는 사학도로서 자연스럽게 유럽 중세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신과 인간의 문제에 천착했다.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연극을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무렵 세계적 조류였던 허무주의와 부조리에 빠져 들었다. 그는 단순히 대사를 암기해 무대에서 재현하는 연기를 한 배우가 아니라 철학적 바탕의 사유를 표현하고자 했던 배우였다.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 국내 초연
‘블라디미르’ 역 맡아 전석 매진사례
말년 홀로 1시간10분 시낭송 공연도

1969년 국내 처음 무대에 올린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역 ‘블라디미르’로 열연한 고 김성옥(오른쪽)과 ‘에스트라공’ 고 함현진(왼쪽·1940~1977) 배우의 포스터. 극단 산울림 제공

김성옥 선생님은 실험극장의 창립 동인, 드라마센타 단원, 극단 산하의 동인이기도 했다. 이후 국립극단 전속 배우로 <베니스의 상인>(1964) 에서 샤일록 역을 맡아 초대 극단장이자 배우 선배였던 변기종 선생님으로부터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배우” 라는 극찬을 듣기도 했다.

1969년 한국연극사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그해 원작자 사뮈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극단 산울림이 창단공연으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블라디미르’ 에 김성옥, ‘에스트라공’ 에 함현진이 캐스팅되었고 연출은 임영웅이었다. 전석매진이라는 기록적인 성공은 배우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김성옥 선생님은 “밤샘 연습을 하고 나면 발바닥이 아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파고들었었다” 고 회고하셨다. 1960년대 선생님은 <막차로 온 손님들>, < 창공에 살다 >, < 휴일 > 등 영화에도 100편 넘게 출연했고,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국하자 탤런트로서 ‘임꺽정’과 같은 의협심이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여 선이 굵은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다. 1974년 연극 무대를 떠날 때까지 15년 동안 ‘동아연극상’ 2회 , ‘ 제 1 회 서울신문 문화대상’ 연극부문 연기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현 백상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이후 사업을 하면서 실패를 겪었지만 다시 연기자로 돌아와 티브이 와 영화 등에 출연했다. 우석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2009년 낙향해 6년 동안 목포시립극단의 단장을 맡기도 했다.

필자 전성희 교수가 쓴 평전 ‘배우 김성옥 연구’가 실린 <배우와 연기를 보는 여섯개의 시선>.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제공

그리고 ‘작은문화모임 소리꽃 시낭송회’ 를 만들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시 낭송을 지도했다. 명예시인이자 명예배우였던 고 김성우(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의 글 ‘돌아가는 배’를 김성옥 선생님이 홀로 1시간 10분 동안 낭송했던 공연은 노 배우의 품격과 아름다움, 그리고 생의 쓸쓸함을 보여준 하나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8 월에는 고향 후배 김지하를 기리는 문화제에서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88년의 삶을 마감한 김성옥 선생님. 그의 마지막은 아름다웠다. 지난 10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와인 잔을 드시고 “멋지다, 멋져” 라며 내게 들려준 김기림의 시 ‘길’ 서정주의 시 ‘자화상’ 의 낭송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원한 자유인이며 소년인 배우 김성옥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영전에 책, < 배우와 연기를 바라보는 여섯 개의 시선 - 배우 김성옥 ( 金聲玉 ) 연구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엮음) 를 바칩니다.

전성희/명지전문대 교수·차범석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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