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시절 "빵·자유" 외쳤지만...이집트, 또 IMF행
정치 혼란 이어지며 경제 문제 도외시
외환위기 고조 중...물가 상승에 민생고도 증가
극심한 외화 유출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이집트가 국제통화기금(IMF)에 또다시 손을 벌렸다. 2011년 아랍권 민주화 시위인 ‘아랍의 봄’ 이후 벌써 세 번째다.
당시 이집트 국민들은 “빵과 자유”를 부르짖으며 30년간 독재를 해왔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했지만, 경제 사정은 그때보다 더 악화됐다. 이후 들어선 집권 세력이 경제 문제는 외면한 채, 종교적 교리를 강요하거나 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경제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구제금융에만 의존해온 이집트에는 '빚중독에 빠진 국가'라는 오명만 남았다.
IMF, 30억 달러 구제금융 제공
18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IMF는 전날 성명을 통해 "이집트에 앞으로 46개월간 30억 달러(약 3조9,300억 원)의 '확대 금융(EFF)'을 지원하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EFF는 무역수지 악화에 따른 외환보유고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에 자금을 지원하려 만들어진 IMF 기금이다.
CNN방송은 전문가를 인용해 “이집트의 만성적인 해외 채무 문제를 완화하려 IMF가 임시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집트가 경제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부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집트는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이후 지금까지 총 3차례나 IMF 구제금융의 도움을 받았다. 2016년에는 2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에도 80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이로 인해 이집트는 아르헨티나에 이어 IMF의 최대 채무국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이집트, 아랍의 봄 이후 경제 위기 지속
이집트에서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화 운동이 발생한 건 빈부격차가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랍의 봄 발생 직전인 2010년에 이집트는 연간 경제성장률이 5.2%를 기록할 정도로 사정이 좋았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혜택이 소수 특권을 지닌 엘리트층의 전유물이 되면서 국민들이 상당한 박탈감을 느꼈고, 이는 민주화 시위로 폭발했다.
하지만 이집트 경제 사정은 '아랍의 봄' 이후 더 악화됐다.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하고 집권한 정당인 ‘무슬림 형제단’이 경제 문제는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무슬림 형제단이 여성 차별과 교육 제재, 언론 탄압 등에 나서면서 내수 경제는 얼어붙었고, 해외기업까지 추방하면서 이집트 경제는 성장동력을 잃었다.
2013년 집권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도 대안이 되진 못했다. 엘시시 대통령이 독재 행보를 보이면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는 등 정국 혼란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제정책이 시행될 리 없었다. 엘시시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 우방국에서 낮은 이자로 외환 원조를 받아와 이집트 경제를 지탱했지만, 나중엔 이마저도 끊겼다. 외환위기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이집트가 IMF에 손을 벌리며 살아온 이유다.
이집트, 외환위기 고조...인플레에 민생고까지
이집트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올해 들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신흥시장인 이집트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달러화 자금이 올해 1분기에만 147억5,000만 달러(약 19조7,82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발 식량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이집트의 무역수지 적자 폭도 확대되는 중이다. 이에 따라 이집트 외환보유고는 올 7월 기준 331억4,000만 달러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집트 당국은 외환 자금을 확보하려 사력을 다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효과는 없다. 올해 여름에는 밤 11시 이후 가로등과 상점 등을 소등하고 최저 냉방 온도를 기존 20도에서 25도로 높이는 조치를 발표했다. 절약된 발전용 천연가스를 해외에 수출해 외화를 벌기 위해서였다. 사우디와 UAE에 이집트 국영기업 지분을 매각해 외화를 조달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집트에서 외환위기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이집트 파운드화 가치는 지난 10월 기준 미국 달러 대비 14.5%나 폭락했다. 이집트 물가상승률도 올 7월 기준 13.6%를 기록하면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CNN방송은 “야채와 빵, 유제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이집트 국민 중엔 음식 섭취를 줄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이집트 인구의 약 60%가 가난에 취약한 상태”라고 전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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