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빼앗겼다, 집회 멈춰달라"…용산 주민 1000명 탄원서
"주말이면 낯선 사람들로 가득
시위 유튜버, 아이불러 출연 강요
불안해 애들 놀이터도 못보내"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도 직격탄
"집보러 왔다가 시위에 돌아가"
주말에 문닫는 사무실 수두룩
대통령실 입주후 거래 '반토막'
지난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앞.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아래로 뚝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구호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진보·보수 단체가 이날 한꺼번에 집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진보 단체인 촛불승리전환행동이 서울역 방면으로 행진하자, 길 맞은편에서 맞불 집회를 열던 보수단체 신자유연대 소속 회원 1000여 명이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주변 도로 8개 차로 중 4개가 통제된 탓에 이 일대를 통과한 차들은 심각한 교통체증을 겪어야 했다.
대통령실과 가까운 용산이 폭증하는 집회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 몫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월 평균 40.7건이던 용산경찰서 관할 집회 신고 건수는 5월 81건, 6월 97건으로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단체행동에 나섰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용산 대통령실 인근 주민 1000여 명은 집회로 인한 피해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15일 서울 용산경찰서와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 등에 제출했다. 권 의원은 서울 용산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탄원서에 서명한 이들은 삼각지역 인근인 서울 한강로1가의 용산 대우월드마크, 용산파크자이아파트, 용산 자이 오피스텔 주민이다. 이날까지 탄원서에 서명한 인원은 총 933명이다. 탄원서 제출을 주도한 용산 대우월드마크 입주민 대표회 관계자는 “서명 인원이 계속 늘고 있다”며 “더 많은 서명을 받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 용산구청, 대통령 민원실에도 탄원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탄원서에 담긴 요구 사항은 △아파트 주변에서 고출력 확성기 사용 전면 금지 △야간 집회 및 시위 전면 금지 △집회 및 시위 참가자 인원 제한 △집회 및 시위 참가자의 아파트 내부 출입 금지 △아파트 앞 도로 점거 금지 등이다.
주민들은 “평화로웠던 일상을 빼앗겼다”고 호소했다. 가장 큰 피해는 소음이다. 17일 집회 현장에서 측정한 집회 소음 크기는 평균 69dB, 최대 80dB이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80dB 크기의 소음은 철로변 및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수준으로 청력 손실을 일으킬 수 있다. 소음 내용도 문제다. “이재명 구속” “윤석열 죽어라” 등 특정인에 대한 비난부터 “XX하고 자빠졌네” 등 원색적인 욕설도 심심찮게 나왔다.
애꿎은 아이들까지 피해를 본다고 주민들은 성토했다. 9세 자녀를 키우는 김모씨(42)는 “주말이면 동네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낯선 사람들로 가득하다”며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오겠다고 해도 불안해서 못 보내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삼각지역 인근에 거주하는 채모씨(45)는 “집회하는 사람이 하굣길 아이들을 불러 자신이 중계하는 유튜브에 강제로 출연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 지역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한모씨(44)는 “주말에 집 보러 왔다가도 ‘시위 때문에 살기 안 좋겠다’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며 “집회가 있는 주말이면 아예 문을 닫는다”고 푸념했다. 용산 지역의 주택 수요자 특성상 피해가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인중개사 김모씨(52)는 “용산구는 전통적으로 직장 은퇴 후 조용한 곳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중산층이 찾는 곳”이라며 “집회 광경을 보면 그런 분들이 여기로 이사 오고 싶겠나”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가운데 용산은 집회 피해까지 겹치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용산 대통령실 입주 뒤인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용산구 주택거래 건수는 총 1287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2403건) 대비 46.5%가량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주택거래 건수는 9만587건에서 4만8869건으로 약 46% 줄었다. 대통령실 이전 초기만 하더라도 지역 부동산 거래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현재 상황에선 악영향이 더 크다는 게 지역 부동산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이광식/구교범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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