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야근’ 근절 나선다…IT업계 등 포괄임금제 오남용 사업장 기획감독
정부, ‘크런치모드’ 문제 언급…첫 기획감독
이정식 “포괄임금제 오남용 해 ‘공짜 야근’ 문제”
“청년에게 더 가혹…실근로시간 단축 이루겠다”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해 직원들에게 ‘공짜야근’을 시키고 있는 IT 업계 등에 대해 기획감독을 실시한다. 연장근로시간을 위반하거나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업체를 제보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파악하고 감독을 벌이는 것이다.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첫 기획감독이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1월부터 3월까지 소프트웨어(SW) 개발업 등 포괄임금제(포괄임금·고정OT 계약) 오남용 의심 사업장에 대한 기획형 수시 감독을 한다고 19일 밝혔다. 고용부는 전국 지방청 광역근로감독과를 중심으로 연장근로 시간제한 위반, 약정시간을 초과한 실근로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등을 집중적으로 감독할 예정이다. 감독 결과 연장근로수당 등 미지급이 확인되면 규정에 따라 14일 내 시정조치하도록 할 방침이다.
포괄임금제라고 불리는 ‘포괄임금 계약’과 ‘고정OT(Over Time) 계약’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제도가 아니라, 판례에 의해 형성된 임금지급 계약 방식이다. 각각 산정해야 할 여러 임금 항목을 포괄해 일정액으로 지급하는 계약을 뜻한다. 근로 형태나 업무 성질상 추가 근무수당을 정확히 집계하기 어려운 경우 수당을 급여에 미리 포함하는 계약 형태다. 노사 당사자 간 약정으로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을 미리 정한 뒤 매달 일정액의 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한다.
대법원 판례와 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르면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 지급계약을 체결했더라도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공짜 야근’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돼 왔다.
포괄임금제의 대표적 오남용 사례는 IT 업계 ‘크런치 모드’가 있다. IT 업체가 개발자인 직원에게 포괄임금제가 적용된다면서 한 달에 40시간 이상은 무조건 야근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실제로 주말과 휴일에도 출근해 월 40시간 넘게 일했지만 추가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마련한 전문가 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지난 12일 포괄임금 오남용을 막기 위해 근로감독을 강화하라고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연 ‘2030 자문단’과 간담회에서 한 청년 참석자가 “포괄임금 때문에 공짜 야근에 시달리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장관은 포괄임금제에 대해 “사회 초년생인 청년 등 노동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문제”라며 “그간 정부 차원에서 소위 포괄임금제의 오남용 시정 노력이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포괄임금・고정OT 오남용에 대한 기획감독을 최초로 실시하고, 영세기업의 임금・근로시간 관리 어려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포괄임금·고정OT 오남용 방지대책(가칭)’도 조속히 마련하겠다”라며 “공정한 노동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실근로시간 단축을 이루어 나가겠다”고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포괄임금제 악용 실태를 놔두면 국민 설득이 안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감독 대상 사업장을 10~20곳으로 추리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주52시간 근무제 관리 단위를 현행 ‘주’에서 최대 ‘연’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 전에 포괄임금제가 오남용되어 온 현실부터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거나 관련 지침을 만드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고용부는 “포괄임금제는 법원에 의해 사후적으로 형성된 법 논리인데, 정부가 지침을 만들면 공식적인 제도가 돼버린다”며 “일부 사업장에서 포괄임금제가 적용되는 현실은 인정하되, 일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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