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엔 5m 도로로 나와있는데…골목마다 가건물·불법 설치물 사람 두 명 지나가기도 힘들다
(1) 무단 증축에 점령당한 골목
서울 8대 상권 전수 조사
골목 절반을 매장으로 바꾸고
가게 앞엔 천막·테이블 설치
“불법이 아닌 걸 찾기가 더 어렵네요.”
한국경제신문 취재팀과 서울 익선동, 망원동 망리시장 등의 골목을 둘러보던 공무원들은 건축물대장, 평면도와 실제 건물을 천천히 살펴본 뒤 이렇게 입을 모았다. 19일 한국경제신문이 서울 주요 8대 상권의 지하철 반경 500m 이내 폭 5m 이하 골목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런 문제는 곳곳에서 확인됐다. 위반 건축물이 없는 길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불법 아닌 골목 찾기 더 어려워
익선동, 을지로 상권을 아우르는 종로3가역 인근은 47개 골목 중 41개(87.2%)가 위반 건축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 갑자기 나타난 불법 건축물에 몸을 부딪히는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 건대입구역(78.1%)과 망원역(72.9%) 상권 등에서도 10개 중 7개 골목에서 위반 건축물이 발견됐다. 홍대입구역(56.3%)과 문래역(54%)은 절반 이상의 골목에서 문제가 있었다. 비교적 뒤늦게 형성된 신사역(47%), 강남역(42%), 성수역(40%) 상권이 상대적으로 낮은 40%대를 기록했다.
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망원동 ‘망리단길(망리시장+이태원 경리단길)’은 불법 건축물의 백화점 같았다. 불법 테라스뿐 아니라 가건물과 창고 등이 뒤엉켜 있었다. 망리단길 입구의 한 골목은 지도에 표시된 폭 5m 길은 온데간데없었다. 골목 대부분을 차지한 건 폭 2m, 길이 5m 가건물을 설치한 카페였다. 맞은편 건물 역시 불법 증축해 실제 도로 폭은 2m 남짓에 불과했다. 건축법상 도로는 폭 4m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골목길이 사라진 것이다.
건물에 손을 대는 일은 최근 더 늘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지적이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공간 가치가 높아진 게 ‘불법 경쟁’의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물렁한 이행강제금이 이런 수요에 기름을 부었다. 건물주 사이에서 “이행강제금을 내고 가게를 확장하는 게 더 이득”이란 인식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이명주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무단 증축이 확실하지만 아직 구청에 적발되지 않은 상가도 많이 있다”며 “서울 전체가 불법화되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만한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일수록 이런 현상은 확산되고 있다. 건대입구역은 떠오르는 위험골목 중 하나다. 먹자골목 초입에 자리잡은 고깃집은 도로를 2m 정도 차지해 가건물을 지었다. 10m 옆 한 술집은 간이 천막으로 손님 대기 공간을 만들었다. 모두 건축법 위반이다. Y 공인 관계자는 “일반 주거지역에 상권이 들어서다 보니 불법 증축이 늘 수밖에 없다”고 했다.불법 설치물도 곳곳에 널려 있다. 공용 도로에 테이블과 의자를 깔고 장사하거나 가게 앞에 테이블을 놓고 물건을 판매하는 식이다. 종로구 익선동 ‘갈매기 골목’이 대표적이다. 골목 한쪽에 고기를 구울 수 있는 테이블 수십 개가 통행을 막고 있었다. 허가 규모(11㎡)보다 불법으로 공용도로를 차지한 면적이 더 큰 식당도 즐비했다. 해당 가게 사장은 “포장마차도 아무 문제 없이 장사하는데 우리만 문제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언성을 높였다.
좁아진 폭만큼 안전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오토바이와 행인 간 교통사고 건수는 2017년 1만8241건에서 지난해 2만598건으로 12.9%(2357건) 증가했다.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제2의 이태원 참사가 언제 어디서 재발할지 알 수 없다”며 “1%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355개 골목길 '3180개 건축물' 한경 취재진이 직접 전수 조사
좁아진 골목길은 크고 작은 안전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번 조사는 불법 건물이 우리에게 얼마큼 가까운 ‘일상의 위협’으로 다가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시작됐다.
골목길은 주요 상권 중심을 기준으로 반경 500m를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이 직접 찾아 폭 5m 이내 골목길을 추려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다중인파가 몰릴 경우 생길 수 있는 위험도를 측정하는 만큼 다른 길로 완전히 트이는 사거리를 골목의 시작과 끝으로 삼고, 그 사이를 하나의 골목길로 정의했다. 5m는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던 골목길의 폭이다.
해당 지점 조사 대상이 된 골목길은 총 355개였고, 그 골목길에 접해 있던 건축물은 총 3180개였다. 골목 길이는 최소 10m부터 200m까지 다양했다. 접하는 건물 수도 최소 두 개부터 30여 개까지였다.
상권은 전통적으로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과 SNS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지역으로 떠오른 곳 등 두 그룹으로 나눠 조사하고 비교했다. 전통 상권은 강남역, 홍대입구역, 건대입구역, 신사역이었고, SNS 상권은 망원역, 문래역, 성수역, 종로3가역이었다. 이번 이태원 참사가 SNS를 통해 핼러윈 유행이 빠르게 번지면서 사람이 모인 점을 감안해 기존 상권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인파가 몰리지 않은 곳이라도 SNS로 떠오른 상권을 포함했다.
위험에 노출된 'SNS 상권'…불법건축물 비율 더 높아
한국경제신문의 이번 골목길 실태 조사에선 SNS를 통해 유명해진 상권이 일반 상권보다 불법 건축물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망원역, 문래역, 성수역, 종로3가역 등 ‘SNS 상권’으로 불리는 곳의 불법 골목길 비율은 67.5%로 집계됐다. SNS 상권은 최근 10여년 동안 SNS상에 맛집, 명소 등이 노출되며 새롭게 상권이 형성된 곳이다. 총 148개 골목(건물 1935개)을 조사했고 100개 골목이 불법 건축물을 끼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았던 강남역, 신사역, 건대입구역, 홍대입구역 인근 상권은 55.5%로 SNS 상권에 비해 낮은 불법 골목길 비율을 보였다. 총 207개 골목(조사건물 1245개) 중 115개가 불법 골목길이었다.
전문가들은 빠르게 커진 상권일수록 불법 증축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늘어난 유동 인구에 맞게 건물을 새롭게 꾸미는 과정에서 불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망원, 문래 등 구도심은 획지정리가 덜 돼 있어 불법 증축 외엔 건물을 활용할 방법이 별로 없다”며 “법이 바뀌는 사회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불법 건물이 늘어날수록 크고 작은 안전사고에 더 취약해진다는 점이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처럼 SNS를 통해 일시적으로 사람이 모이는 경우 안전 문제에 더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SNS 영향으로 하나의 상권에 사람들이 쏠리는 경향이 강해진 시대”라며 “크리스마스 등 특정 이벤트가 있는 날에 구조가 복잡하고 좁은 골목에서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민기/장강호/원종환/김우섭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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