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의 바이오 인사이트 <21>] 신약 개발 전쟁터, 기사회생 기회 얼마든지 있다
매일 신약 개발 전쟁터에서 승전과 패전의 소식이 들려온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아쉽게 유효한 효능과 유해하지 않은 독성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문턱을 넘지 못한 물질들의 비보와 수많은 역경과 고비를 넘기고 신약 승인과 상용화에 성공한 낭보가 그것들이다. 이 결과들이 무한의 경쟁과 끝없는 도전이 이뤄지는 바이오 전장에 주는 의미와 영향은 무엇일까. 특정 표적을 제어하는 치료제 개발 실패나 희박한 성공 가능성으로 인한 개발 포기 뉴스가 떴을 때 주위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표적을 대상으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다른 임상시험 결과와 회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어차피 큰 차이가 없는 표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다른 임상시험 결과도 뻔할 것이고 회사의 가치는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실망에 가득 찬 염세주의적 답변과 치료제 유효성이 검증된 것이고, 임상시험 결과는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달라지므로 끝까지 해봐야 안다는 희망 섞인 낙천적 답이 예상된다. 경쟁 관계에 있는 개발 당사자들뿐 아니라 투자자 입장에서도 굉장히 절실하고 신속하게 답을 구하고 싶은 문제일 것이다.
우선 실패한 경우를 살펴보자. 개발 실패라는 패전 소식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전을 제어해 질병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개발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될 수는 없다. 실험실 발명 단계를 지나서 임상시험에 들어오는 물질들은 일단 실용화의 문턱을 넘은 것으로 간주된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 치료제로 개발되는 상용화 단계에서의 실패로 기가 한풀 꺾일 만하다. 개발자들은 실패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임상 디자인이 잘못됐거나 최적화되지 못했는지, 평가 지표가 물질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는지 확인하고, 혹은 새롭거나 변화된 용법을 시도하는 등 임상시험에서 같은 실수나 실패를 범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한다.
얼마든지 기회는 있다
그렇다면 같은 기전을 가진 적응증(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동일한 표적을 제어하는 물질에 대한 임상시험에서 앞서가던 물질들이 실패할 경우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거나 새로 진입을 준비하고 있는 물질들에 기사회생의 기회가 있을 것인가. 답부터 이야기하면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작아질 수 있지만 여전히 ‘얼마든지 기회는 있다’이다. 완벽한 복제품이 아니라면 치료제의 분자생물학적인 구조나 생화학적 물성의 차이와 생물학의 태생적 특성인 세포의 이질성(heterogeneity) 때문에 생체 내에서 일어나는 신호 전달 체계가 치료제에 대해 보여주는 반응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몇 개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세포들은 단일이 아닌 복수의 신호 전달 체계에 의존해 생존하거나 기능을 유지한다. 필수적인 신호 전달 통로가 막히면 항상성과 생명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조건 반사적으로 우회로를 통해 생체 신호를 전달한다. 이 같은 특성도 다양하고 이질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다. 또 표적은 동일하지만 세포의 고유 특성이나 병변이 있는 기관에 따라 치료제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바로 세포와 상호 작용을 하는 생체 기관마다 갖고 있는 미세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적응증에 따라 치료제에 따른 효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리하고 억지스러운 이론이나 해석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선행 물질의 실패가 뒤를 따르는 물질들의 개발을 중단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앞선 물질의 실패 원인을 자세히 분석하여 과학적으로 대처한다면 여전히 성공이라는 열매를 맺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과학자의 신념과 자부심 必
여기에 내 것은 다른 사람의 것보다 우월하다는 과학자들의 신념과 자부심이 더해진다면 임상 개발의 지속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추게 된다. 지레 겁을 먹고 전선에서 후퇴하는 비겁한 장수가 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선행 물질이 성공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적어도 치료제로 개발 중인 물질이 적응 질환에 대해서 유효하다는 낭보임이 틀림없다. 자연히 선행 물질과 차별화되고 특허권이 확보되어 있는 물질의 개발 성공 가능성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선행 물질의 개발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자신의 물질에 더 최적화된 디자인과 분석 지표 등을 설정하는 후발 물질의 이점과 호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무리해서 ‘혁신 신약(first in class)’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조금 기다리면서 앞서가는 물질의 개발 중 저지르는 실수와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피해 가면 훨씬 더 수월하게 신약 승인과 상용화라는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고 평범한 상식적인 기대와 실제 임상의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임상시험에 성공한 물질의 개발 과정은 후발 물질들 개발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임상시험을 기획할 때 선행 물질의 독성 시험 항목이나 임상 디자인을 참고하는 것은 기본적인 과정이며 시간을 단축하고 돈을 절약할 수 있다.
특히 치료제의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 설정하는 대조군과 치료군 환자 수와 임상 지표 설정에서 결정적인 정보를 얻고 반영할 수 있다. 이렇게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반대의 부정적인 영향들은 무엇이 있을까. 동일한 혹은 유사한 표적을 대상으로 한 치료제가 승인되는 순간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후발 물질에는 더 높은 효능과 더 낮은 독성이라는 관문이 놓이게 된다. 또한 내 물질의 임상시험에 적합한 환자군의 범위가 더욱 좁아지고 조건도 까다로워질 수 있다.
신약을 테스트할 수 있는 환자군의 조건은 표준 치료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의학적 미충족 수요를 기본으로 한다. 당연히 새로운 치료제의 승인과 표준 치료법으로의 진입은 해당 질환의 의학적 미충족 수요를 축소시키고 자연스럽게 임상시험의 대상군 수도 줄어들어 환자 모집과 등록에 어려움이 생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 기간을 연장하거나 시험군의 조건을 완화하고 통계학적인 유의성을 도출할 수 있는 최소 숫자의 환자와 대조군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한다. 이러한 변수들은 임상 비용의 증가와 집중력을 약화시키고, 임상시험에서 도출되는 데이터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통계학적인 오류를 증가시키고 유의성을 떨어뜨리는 등 시험 결과의 분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선행 물질의 임상시험 성패는 직간접적으로 후발 물질에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적 타이밍과 과학적 소통 必
이제 남은 질문들은 이런 영향들을 선택의 여지가 없이 모두 받아들이고 일일이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혹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만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일 것이다. 만일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영향을 모두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아무리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해도 물질 개발에 기대되는 가치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부정적인 요소를 회피해 후발 물질의 개발 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최소화하지 못하고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개발자의 역량과 준비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선택과 예방이 가능하다. 선행 물질 개발 과정에서의 부정적인 경험을 후발 물질 개발 프로그램 혹은 모델과 동기화해서 개발 경로가 일치하거나 교차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면 미리 규제 기관과 협의를 통해 수정을 하거나 임상 프로토콜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의 중간 분석을 통해 향후 개발 일정을 개선하는 방법 등은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과감하게 임상시험을 일시 유보하고 개발 프로그램의 전면적인 점검과 개선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최적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외부와 진솔하고 과학적인 소통을 하여 불필요한 우려가 조성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오롯이 개발자의 노력과 학습으로 축적한 실력과 경험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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