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긴축 재정’ 팬데믹을 끝내려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둔화 때문에 세계 각국이 긴축 재정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비토르 가스파르 국제통화기금(IMF) 재정국장은 12월 6일 국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물가 상승 및 국가 채무 확대 속도를 고려해 긴축 재정 운용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비슷한 권고안을 내놓았다. 고물가를 잡기 위한 각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긴축 통화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기대인플레이션(기업 등 경제 주체가 현재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예상하는 미래 물가 상승률)이 안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당분간 세계 각국이 긴축 재정 정책을 지속하라고 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등 여러 국제기구 합동 조사에서 개발도상국 94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43개국이 2023년까지 긴축 재정 모드를 유지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처럼 세계 각국으로 번지고 있는 긴축 재정이 사회 취약 계층을 더욱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는 코로나19,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 부채 상승, 기후 위기 등에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생활비와 정치적 불안정성까지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강력한 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재정 억제(fiscal restraint)’ 혹은 ‘재정 통합(fiscal consolidation)’이라 일컬어지는 긴축 재정을 비롯한 실패한 정책과 효과적인 세금 정책 및 부채 감소 정책의 부재(不在)는 수십억 명이 직면한 거시 경제 불안과 일상적 어려움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정책 입안자들이 (기존의) 노선을 바꾸지 않는 한,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긴축 팬데믹(austerity pandemic)’은 세계 경제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최근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한 긴축 트렌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보다 시기적으로 더 빠른 감이 있으며,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재정 지출 전망을 분석해본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143개 정부가 지출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67억 명, 전 세계 인구 85% 이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정부는 2021년에 이미 공공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고, 예산을 삭감한 국가들 수는 2025년까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각국은)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3.5% 정도를 삭감했고, 이는 2008년 금융 위기 때 삭감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다.
훨씬 우려되는 대목은 50개 이상 국가가 과도한 삭감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정부 지출이 (이미 낮은 수준이었던)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도 기니, 에스와티니, 라이베리아, 가이아나, 리비아, 수단, 수리남, 예멘을 포함한 많은 저개발 국가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각국 정부가 고려하고 있거나 이미 시행 중인 긴축 재정은 국민에게, 특히나 여성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정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제한할 것이다. 가족, 노인, 장애인 지원 프로그램을 줄이고, 교사나 보건 관계자 등 공공복지 부문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노동자의 월급을 줄이거나 임금 상한선을 조정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며, 교통·에너지·수도 서비스를 민영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노동자 보호 및 고용주의 사회적 보장 기여를 축소하고 보건 지출을 줄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많은 정부는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단기 수익 창출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는 ① 역진세, 부가가치세 같은 소비세 인상, 민관 협력 강화, 공공 서비스 수수료 인상 등이 포함된다.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서는 에스와티니(옛 스와질란드), 케냐, 마다가스카르, 르완다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세 종류의 관련 정책을 고려하거나 이미 시행 중이며, 레소토는 네 종류, 보츠와나는 다섯 종류의 방안을 추구하고 있다. 보츠와나, 케냐, 마다가스카르, 르완다, 우간다, 잠비아는 각각 수익을 더 올리기 위해 네 가지 이상의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보츠와나, 케냐, 마다가스카르, 르완다, 잠비아는 각각 지출 삭감과 세금 인상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최소한 일곱 가지의 긴축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
전례에 없던 가뭄과 물가 상승 위기에 맞닥뜨린 이들 국가는 고통스러운 긴축 재정을 시행할 뿐만 아니라 이미 심각한 수준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업과 부유한 개인에 대한 세율 인상 같은 정책을 채택하려는 의지가 아예 희박하다.
긴축 재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회적 보호와 공공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국제 구호 개발기구 옥스팜(Oxfam)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50% 정도가 이미 하루에 5달러 50센트(약 7000원) 미만의 돈으로 삶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수조달러가 투입돼 왔으며, 일반인들이 그 비용의 많은 부분을 떠맡고 감내해야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공격적인 긴축 재정의 위험성을 지난 10여 년간 분명히 목격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연금과 사회 복지 비용 삭감, 여성, 어린이,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의 투자 감소, 저임금을 받는 교사, 보건 및 지역 공무원의 감소, 기본 소비세(상승)로 인한 물가 상승 때문에 수십억 명의 목숨이 위험에 처한 것을 말이다.
우리는 또다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긴축 재정을 대신할 대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빈국에서도 최소한 아홉 가지의 다른 재정 옵션이 있는데, 이는 이미 몇몇 정부가 채택해 운용하고 있으며, 유엔과 국제기관으로부터도 승인받은 것이다. 누진 과세, 부채 제거 또는 구조 조정, 불법적 금융 거래 단속과 노동자의 사회 보장 기여 및 보장 확대, 재정 및 외환 보유고 사용, 공공 지출 재할당, 수용적인 거시 경제 채택, 공식적인 개발 지원, 그리고 IMF 보유 자산의 재배분, ② 특별인출권(SDR)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재정 결정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만이 참가하는) 폐쇄적인 방식으로 결정돼서는 안 되고 노동조합, 고용주 연맹, 시민 사회 기구를 아우르는 국가적 대화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에게만 이득이 돌아가는 긴축 재정 방식을 멈춰야 한다. (보다 많은) 사람을 지원하고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
세계는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을 앓고 있다. (긴축 재정이라는) 또 다른 팬데믹까지 감당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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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역진세(regressive tax)
소득 금액이 높아짐에 따라 세율이 낮아지는 조세 방식. 소득 금액이 커질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세와 대립하는 개념. 전시(戰時)나 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에 한해 가능하며, 고소득층은 유리하나 저소득층은 불리하다.
②SDR(Special Drawing Right)
국제통화기금(IMF)의 공적 준비 자산인 제3 세계화폐를 의미. IMF의 운영축은 금과 기축통화인 달러지만, 국제 유동성의 필요는 급증하는 데 반해 금의 생산에는 한도가 있고, 미국이 달러를 무제한 공급할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될 수 있어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으로 만들었다. 일반인출권(GDR)이 종래 출자를 통해 필요할 때 기금을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 반면, SDR은 출자 없이 가맹국 합의에 따라 발행 총액을 결정하고 IMF에서 출자 할당액에 비례·배분해 특별히 인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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