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유경호 한림대학교성심병원장 | “720만 명 양질의 데이터 보유…디지털 헬스케어 시대 열겠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이 의료 플랫폼으로 거듭난다. 지난 2017년 취임한 유경호 병원장은 취임 이후 ‘초일류 기관’ 도약을 내세운 뒤 담금질을 지속해왔다. 그는 융합과 통합으로 발굴한 혁신 시스템이 환자 중심의 가치 실현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수년간에 걸쳐 확보한 720만 명에 달하는 의료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할 예정이다.
유경호 병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5년 전 미래를 지향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고 현재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로보틱스 등 미래 의료 기술들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라며 “하나하나의 모듈을 하나로 합쳐 환자 진료에 도움 되는 의료 서비스 형태로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은 흩어진 기술을 한곳에 모으기 위해 지난해 ‘도헌디지털의료혁신연구소’도 개소했다. 일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 연구소 운영에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과 사무직 등 병원 소속 인원은 물론, 외부 업체도 참여할 수 있다.
유 병원장은 “병원만 가지고 디지털 혁신을 하기 어렵고, 실제 의료 현장에 쓸 수 있는 것을 외부에서 만들어 내기도 어려워 하나로 모아 운영해보자는 취지”라며 “연구소 내 연구자와 기술 업체들이 협력해 과제를 만들어내고 이를 실제 의료 현장에서 시험해 피드백을 받는 등 확산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구성원이 모여 자연스레 발생한 집단지성은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환자를 위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며 피부로 느낀 의료진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제 의료 기기로 적용되면서 업무 효율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
지난해 진료 전주기 지능형 워크플로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병원 선도 모델 개발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외래·입원·전원 등 진료를 위해 필요한 전 과정이 AI, 실시간 위치 추적,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무선 웨어러블 장비 등 다양한 기술로 연결돼 통합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예컨대 키오스크를 도입해 병원을 찾은 외래 환자 대기 시간을 단축했다. 외래 환자가 스마트폰으로 받은 바코드를 키오스크에 가져다 대면 진료 전 혈압, 키, 체중 등 필요 정보 측정을 안내하는 식이다. 측정이 마무리되면 해당 값은 EMR(전자의무기록)로 자동 전송·기록돼 진료 대기 명단으로 전달된다. 환자는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의료진은 단축한 시간을 다른 환자에게 할애할 수 있다. 최근에는 로봇을 도입해 약 배달은 물론, 외래 환자에게 이동 경로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기는 사업도 실증 중이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은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10개 이상의 국책 과제 수행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업 예산 규모는 총 350억원에 달한다. 대부분의 과제가 의료 데이터와 AI 등을 활용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사업이다. 그동안 데이터를 축적하며 양보다 ‘질’에 집중해온 결과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주관 데이터품질인증심사에서 데이터 정합률(데이터 필드 규칙에 맞는 비율을 의미) 99.99%를 기록했다. 이는 데이터품질인증 부문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등급으로, 보유 데이터 대부분이 양질의 데이터라는 의미다.
확보한 양질의 데이터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규제 때문이다. 규제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산업이 빛을 보지 못한 채 단발성으로 끝나는 배경이기도 하다. 유 병원장은 “의료 데이터 활용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규제와 중앙 정부 부처의 소통”이라며 “이를 풀어낸다면 미래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7년 취임 이후 혁신적 병원 시스템 구축을 언급했다.
“대단히 만족하고 있지만, 아직 해야 할 게 많다. 5년 전 미래 지향한다는 목표가 현재 미래 의료 기술들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AI, 데이터, VR, 로보틱스 등 다양한 모듈을 하나로 합쳐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되는 의료 서비스 형태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
병원장직과 함께 도헌디지털의료혁신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연구소의 역할은.
“병원만 가지고 디지털 혁신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연구소를 병원에 붙여 놨다. 연구소에서는 의료 현장에 쓸 수 있는 것을 시험·운용해보고 있다. 병원 소속 의료진의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청취해 외부 업체와 협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연구자와 기술 업체가 협력해 과제를 만들고, 의료계는 과제를 시험해보고 피드백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혁신 확산의 장이다.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헬스케어 선두 주자라는 목표도 있다. 이를 위해서 의료 데이터를 모으고 실제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다른 병원도 이런 연구소를 갖추고 있나.
“국내외 여러 곳에서 벤치마킹했다. 다만 도헌디지털의료혁신연구소처럼 지속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세계 유수의 연구소를 살펴봤는데 AI, VR 등 개별 연구소로 구성됐다. 연구소가 이처럼 의료계와 밀접하게 연계된 곳은 없다.”
연구소 구성원은 어떻게 충원했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핵심 인력은 의사, 간호사 등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이다. 이외 보건 관리자를 비롯, 다양한 분야 외부 인재도 확충했다. 일부 팀에는 박사 학위 전공자들을 대거 채용했다. 연구소 내 직책 대부분이 새로 만들어진 자리다 보니 고용 창출 효과도 있었다.”
1년 반 동안 국책 사업을 10개 이상 따냈다. 성과에 대한 평가는.
“한림대의료원(한림대학교성심병원·강남성심병원·동탄성심병원·한강성심병원·춘천성심병원)이 260만 명의 환자 데이터를 191 TB(1TB는 1024㎇)로 쌓아 놨다. 의료원뿐 아니라 외부 7개 병원 데이터도 있다. 여기에 대학까지 합치면 데이터 규모는 720만 명에 달한다. 의료 데이터에 대한 중요도가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외부 데이터품질인증심사를 통해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 검사가 99.99%라는 평가도 받았다. 양뿐만 아니라 질이 높다는 의미다.”
국책 사업 수행 이후 상용화 사례도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스마트병원 선도 모델 개발 지원 사업에 참여했었다. 외래 환자를 대상으로 도착 알림 키오스크를 개발·도입해 환자 대기 시간과 불필요한 동선을 단축했다. 키오스크 제작 업체는 우리 병원뿐 아니라, 다른 병원으로도 공급을 확대했다.”
확보한 데이터를 확대 적용할 수 있나.
“병원 데이터는 정제된 특수 데이터다. 의료 산업적 측면에서 장비 개발과 진단은 병원 데이터로만 할 수 있다. 다만 병원 정보는 아주 작은 부분이다. 실생활 데이터와 다른 통계 자료를 건강보험공단 등과 연계해야 한다. 개개인의 건강 생활 전체를 전 주기로 보면 병원 이외의 데이터를 묶어야 한다. 신약 개발하는 제약사에서도 시장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연구소 운영 과정에서 규제로 어려움 겪은 적은 없는지.
“의료 데이터 활용성 측면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내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의료 데이터를 풀어내지 못했다. 사용·활용에 있어 한계가 분명하다.
또 중앙 정부 부처 간 커뮤니케이션도 어렵다. 뇌졸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었다. 뇌졸중 환자는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그래서 119 자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행정안전부 소관이었다. 보건복지부와 협업이 잘 안됐다. 이런 것들이 풀어지면 미래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플레이어들에게 조언한다면.
“의료계는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곳이다. 의료진과 협력하지 못한 혁신은 단발성으로 끝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실제 의료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지, 적용 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개선 여지는 없는지 등 다양한 피드백을 해야 한다. 초기부터 의료 시스템에 적용해 피드백을 받으며 재개발하는 체계를 가진 팀과 협력해야 한다. 시스템이 있는 병원과 협력으로 플랫폼에 들어와야 지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강력한 리더십도 필요하다. 미래 의료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세상을 이끌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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