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동식물 낙원 상상도] 동토의 땅 그린란드, 200만 년 전에는 코끼리가 살았다
코끼리가 개울을 건너가고 숲속에는 토끼와 사슴이 뛰어다닌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표지에 실린 이 사진은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북극 그린란드의 모습이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지금은 황량한 동토(凍土)의 땅인 그린란드가 200만 년 전에는 동식물의 낙원이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에스케 빌레르슬라우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12월 8일 네이처에 “그린란드 지층의 토양 시료에서 나온 환경유전자(environmental DNA)를 분석해 200만 년 전 생태계가 숲이 우거지고 다양한 동물이 살던 풍요로운 모습이었음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200만 년 전 코끼리 거닐고 투구게 헤엄쳐
연구진은 그린란드의 극지 사막에 있는 카프 쾨벤하운 지층에서 토양 시료를 채집했다. 앞서 연구에서 200만~300만 년 전에는 이곳이 지금보다 11~19℃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정도 기온이면 다양한 동식물이 살 수 있었겠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
빌레르슬라우 교수는 특정 동식물의 화석을 찾는 대신 환경유전자를 찾았다. 환경유전자는 물이나 토양, 대기에 남아 있는 생물의 유전 물질을 의미한다. 그린란드 지층에서 나온 환경유전자를 그동안 발굴된 화석과 현존 생물의 DNA와 비교했더니 동식물 135종의 유전자가 확인됐다.
200만 년 전 그린란드에는 포플러와 자작나무, 측백나무를 포함해 102종의 식물이 한대림(寒帶林)을 이뤘음을 알아냈다. 그중 24종은 새로 발견됐다. 숲에는 코끼리의 먼 친척인 마스토돈과 함께 순록, 토끼, 쥐, 거위가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마스토돈은 코끼리의 먼 친척으로 1만 년 전 멸종했다. 코끼리처럼 기다란 엄니가 발달했다.
마스토돈은 그동안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만 화석이 발굴됐다. 이제 마스토돈의 서식지가 북으로 더 확장된 것이다. 순록 DNA도 지금까지 연구를 뒤집는 성과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화석 증거로 보아 순록이 100만 년 전에 진화했다고 추정했는데 이번 연구로 그 시기가 100만 년 더 앞당겨졌다.
육지뿐 아니라 바다에도 다양한 동물이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온이 높은 곳에 사는 투구게와 산호, 바닷말의 DNA가 나왔다. 과거 그린란드는 육지와 바다 모두 지금보다 더 따뜻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반면 육식동물 유전자는 나오지 않았다. 연구진은 당시에도 곰이나 늑대, 검치호랑이 같은 포식자가 있었지만, 수가 적어 환경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동물 유전자 최고 기록 100만 년 늘려
연구진은 이번에 동물 DNA 해독의 최고(最古) 기록을 갈아 치웠다. 지금까지 DNA가 해독된 가장 오래된 동물은 매머드다. 스웨덴 고유전학연구소의 러브 달렌 박사는 지난해 2월 네이처에 시베리아에서 발굴한 매머드 화석에서 110만~165만 년 전 DNA를 찾아내 해독했다고 밝혔다. 그전까지 가장 오래된 동물 DNA는 2013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이 78만~56만 년 전 말 화석에서 발견했다.
빌레르슬라우 교수는 “이제 100만 년이라는 역사가 추가로 열린 것”이라며 “처음으로 유전자를 통해 오래전 생태계를 바로 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 산타크루스 캘리포니아대의 베스 샤피로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지층에 보존된 작은 DNA 조각으로 이처럼 완벽하게 고대 생태계를 유추해낸 것은 정말 마법과도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성과는 20년 넘게 끈질기게 진행된 연구의 결과물이다. 빌레르슬라우 교수는 덴마크 코펜하겐대 박사 과정에 있던 2000년에 환경유전자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2002년 12월 시베리아에서 처음으로 매머드와 사향소의 유전자를 찾아냈다. 이듬해에는 같은 방법으로 40만 년 전 그린란드에 버드나무가 자라는 숲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네이처’ 논문은 지난 2006년 그린란드 지층에서 채집한 토양 시료를 16년간에 걸쳐 분석한 결과다.
토양 시료를 채취한 카프 쾨벤하운 지층은 100m 두께로, 빙하가 만든 U 자형 협만인 피오르에서 영구 동토층과 빙하에 덮인 채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게다가 DNA가 광물, 진흙과 결합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분해되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41개 토양 시료에서 나온 DNA는 절반이 석영에 붙어있었고, 절반은 진흙과 결합된 상태였다.
지층 시료가 최근에 오염됐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 예로 오늘날 자작나무에 많은 돌연변이가 그린란드 토양의 환경유전자에서 나온 자작나무 DNA에는 나타나지 않아 200만 년 전 모습 그대로 보존됐음을 알 수 있었다.
온난화 극복 비결, 유전자에서 찾는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과거 동식물이 기후 변화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밝혀내고, 나아가 오늘날 기후 변화에 대응할 방법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코펜하겐대의 미켈 페더슨 박사는 “이번 결과는 지금껏 생각보다 더 많은 종이 급변하는 기온에 적응해 진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동식물은 사정이 다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온난화 속도는 너무 빨라 과거처럼 종들이 적응할 시간이 부족하다. 빌레르슬라우 교수는 200만 년 전 동식물이 기온 상승에 적응한 전략을 모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DNA를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는 효소 단백질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과거 식물의 적응 유전자를 오늘날 작물에 도입하면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방법으로 극지의 짧은 여름에 자랄 수 있는 작물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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