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자유·연대론과 일본의 한반도 선제공격 [정의길 칼럼]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의 부상,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은 국제질서를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 대결’로 규정한다. 국제 정세는 그런 이분법 질서대로 흐르고 있나?
미국에 공식 동맹 이상이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보자. 사우디는 냉전 때 수교조차 하지 않았던 원수 소련의 후신 러시아를 오펙플러스에 초대해 국제유가 결정에서 공조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대러시아 제재에 불참했다. 지난 7~9일(현지시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우디 방문과 걸프 지역 국가들과의 정상회담으로, 사우디는 미·중·러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나토 동맹국인 터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입장을 중재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스라엘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 멕시코, 브라질 등 전통적인 친서방 국가도 마찬가지다.
중동에서는 바레인·이집트·쿠웨이트·카타르·아랍에미리트가 중·러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의 대화 파트너이거나 참여를 고려 중이다. 상하이협력기구가 서방의 나토에 상응한다면,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는 주요 7개국(G7)에 상응한다. 이 브릭스에도 사우디·이집트·터키가 가입 의사를 비치며, 대화하고 있다.
최근 미들파워 국가(중견국)들의 대외정책은 냉전 때인 1955년 반둥회의에서 결성된 비동맹 노선과는 차이를 보인다. 당시 중국과 인도가 주도한 비동맹 노선은 ‘비미비소’(미국도 아니고 소련도 아니다)였다면, 중견국들은 비동맹보다는 ‘다연대’ 노선을 추구한다. 미·중·러 모두에 발을 걸치려 한다.
미국 내에도 중견국이 다연대 노선을 선택한 데 대한 자책이 있다. 트럼프 전 행정부의 안보보좌관 허버트 맥매스터는 미국이 기존 동맹과 자동적인 연대를 상정하는 것은 ‘전략적 나르시시즘’이라고 일갈했다. 이런 전략적 나르시시즘은 사우디가 지난 10월 미국의 석유 증산 요구를 일축하고, 200만배럴을 감산한 데서도 드러난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오펙플러스가 러시아와 연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극언했다. 미국은 사우디가 전통적으로 유가 결정 때 미국의 영향력에 저항했던 것을 눈감은 것이다.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동맹국의 불참을 촉구했지만, 영국·독일·오스트레일리아(호주)·한국 등 대부분의 동맹들이 참가한 데서도 미국의 전략적 나르시시즘이 드러난다.
미국도 다연대 노선을 추구하는 중견국들에 맞춤형 접근으로 선회한다. 전통적인 집단안보기구나 양자동맹에 머물지 않고, 미·일·인·호의 ‘쿼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수교인 ‘아브라함 협정’, 인도·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미국의 이른바 ‘I2U2 그룹’ 등을 추진한다. 지난 7월14일 첫 공동성명이 나온 I2U2 그룹은 역내 경제협력 강화를 천명했는데, 미국은 서아시아판 쿼드로 발전을 추구한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 국가들의 연대를 구축하고는, I2U2를 매개로 ‘인도-아브라함 동맹’으로 발전시켜나가려는 것이다. 중국을 봉쇄하려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큰 틀 아래 그 핵심인 쿼드에 인도-아브라함 동맹을 중첩·연동하는 전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 대결이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기존의 패권국이나 강대국 질서의 약화도 시험한다. 중동과 서남아 국가들이나 중견국들이 미국의 자장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고, 미국이 이들 국가에 맞춤형 연대 전략을 꾀하는 것이 그 두가지 조류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질서 재형성의 주요 동력으로 중견국들의 능동주의를 부각한다. 남아공, 인도, 사우디, 터키,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 등이 이런 어색한 동반자 부류라고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이반 크라스테프는 지적했다. 이런 중견국들이 공유하는 것은 열강 대결에서 ‘메뉴판’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 오르겠다는 결의라고 그는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과연 메뉴판이 아니라 테이블에 동참하려는 결의인가? 윤 정부는 자유와 연대를 미국식 어법으로 반복하는 대외정책을 천명하고 있다. 동북아에 있는 한국이 지정학적 조건이 다른 중동이나 서남아 국가들과 같은 대외정책을 천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활한 열강들의 지정학적 대결을 다른 중견국들이 ‘기회’로 대응하는데, 한국은 특정 열강에 더욱 줄을 서야 한다는 ‘위기’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본은 사실상 예방적 선제공격인 ‘적기지 공격’이라는 ‘반격 능력’의 한반도 적용은 자신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공식화했다. 우리의 헌법상 주권 지역인 한반도를 일본이 선제공격 지역으로 설정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윤 정부가 자유와 연대를 어떤 정부보다도 떠들었기에 더욱 그렇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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