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골디락스 다시 안온다 … 그래도 해법은 세계화뿐"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양세호(yang.seiho@mk.co.kr) 2022. 12. 1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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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경제위기 극복 대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한국과 세계 경제 위기 가능성을 진단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성진 국제경제학회장,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박석길 JP모건 수석이코노미스트. <김호영 기자>

"정책 입안자들은 정부 지출을 늘리되 그만큼의 세입 확보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낮은 금리의 시대를 겪었다. 그러나 더 이상 이와 같은 상황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금리와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데 경기 침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다."

19일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낮은 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이 투자와 소비를 이끌고 세계가 하나의 공급망으로 엮여 완만한 물가 상승률을 구현할 수 있었던 장밋빛 시대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냉철하게 전망했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경쟁에서 시작된 글로벌 공급망 개편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정치적·지정학적 위험이 '저금리·저물가'라는 골디락스 시기를 끝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새로운 표준이 주요 경제 대국들을 덮쳐 전 세계적 경기 침체가 오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로고프 교수는 매일경제가 주최한 '경제위기 극복 대토론회'에서 '저금리·저물가' 시대의 끝이 머지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낮은 물가 상승률과 금리 시대에 있었지만 다음 세기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 같은 상황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금리가 낮으면 그만큼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가계와 기업 등 소비 주체들이 쓸 돈이 많아지며 경제성장이 상대적으로 손쉽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위시로 경제성장을 위해 금리를 낮춰 너도나도 돈 풀기에 나서며 전 세계적인 저금리 시대가 이어졌다. 대표적인 장기금리 지표로 쓰이는 10년물 미국채는 물가 상승률을 제외한 실질금리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평균 0%인,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라고 로고프 교수는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10~20년간 물가 역시 완만하게 상승했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면 물가가 급등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물자와 노동력, 서비스의 이동이 자유로운 세계화 바람을 타고 물가 상승이 제어될 수 있었다고 로고프 교수는 진단했다. 당시는 자본과 노동력, 원자재 등 생산 요소의 효율성이 최대화되고 이를 소비할 수 있는 시장도 개방돼 경제적 효용이 극대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고프 교수는 지정학적 위기로 물가가 급등했고 상황은 변했다고 지적했다. 올해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원자재와 곡물값이 수직 상승했고 이것이 물가 전반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연간 세계 물가 상승률은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2008년 금융위기(6.3%)를 제외하고 5.1%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IMF는 올해 물가 상승률이 8.8%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미·중 간 패권전쟁이 물가 상승을 고착화할 것이라고 봤다. 양 국가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며 세계화의 효율성이 예전 같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실질금리 또한 2000년대 초반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로고프 교수는 10년물 미국채의 실질금리를 지표로 삼아 "향후 4% 혹은 그 이상의 높은 수준이 유지될 것"이라며 "이는 부동산, 주식, 예술품,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같은 다양한 자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역시 배경에는 지정학적 위험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봤다. 그는 "장기금리(10년물 미국채) 인상 이유 중 대표적으로 국방비 지출을 꼽을 수 있다"며 "중동과 우크라이나 상황 등을 감안하면 미국의 국방비 증대는 예측 가능한 수순이고 전 세계적으로 군비 증강이 번지고 있다"고 했다. 군비 증강을 위해서는 그만큼 국채를 발행해 채권금리가 상승(채권값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또 탄소중립이 세계적 의제가 되면서 친환경 시대 전환을 위한 정부 지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막대한 재정 부양책과 백신 개발, 빠른 일상으로의 회복 전환이 맞물려 꽤 괜찮은 수준"이라면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보였다. 미국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올해 4번에 걸쳐 자이언트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는 등 공격적인 긴축 기조를 유지 중이다. 로고프 교수는 "현재 견조한 노동시장에 따라 임금 상승이 예상되고 물가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인플레이션을 연준의 목표인 2%대로 잡기에는 현재 임금 상승률이 높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 30년 동안 금리 인상도, 물가 상승도 없었던 일본의 상황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장기 실질금리가 4%대로 정상화되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로고프 교수는 영국의 연기금이 마진콜로 인해 자산을 매각했던 일을 거론하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전 세계적 협력을 통한 세계화 확대가 문제 해결의 단초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세계화 움직임은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도전 과제 중 하나"라며 "앞으로 10~20년간 대두될 환경 난민과 정치, 종교적 갈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과 재화의 이동이 자유로운 세계화가 전 세계적 평화에도 기여했다"며 "교역과 소통이 모두 부족한 냉전시대로 돌아간다면 지금까지의 진전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로고프 교수가 같은 하버드대 동료인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와 함께 역대 금융위기를 분석한 공저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경제학계의 필독서로 꼽힌다. 과거 800여 년간 66개국에서 반복된 호황과 불황을 분석했다.

[류영욱 기자 / 양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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