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도 조선 골동품 고객이었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2. 12. 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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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문화재 고객 장부 확인
한국에 30년간 살며 주요 문화재를 수집한 로버트 마티엘리. 【사진 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장애인 사회운동가 헬렌 켈러(1880∼1968)도 조선 책상에 반해 구매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간 우리 문화재를 사간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정보를 담은 '고객 장부'에서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미국인 로버트 마티엘리 씨(97)에게서 한국 문화재 관련 자료 3건, 총 60점을 기증받았다고 19일 밝혔다. 재단 측은 "이 장부는 현재까지 최대 규모의 '한국 문화재 구입 외국인 명단'"이라며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 과정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마티엘리 씨는 도난당했던 18세기 불화 '송광사 오불도'를 2016년 국내로 귀환시킨 인물이다. 1958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에 살면서 주한 미8군 사령부 문화부 미술공예과장을 지냈으며 부인 샌드라(96)와 모은 병풍, 자수, 도자기, 목공예품 등 한국 문화재만 1946점에 달한다. 부부는 미국 포틀랜드 미술관, 오리건대 조던슈니처 미술관, 시애틀 미술관 등에 소장품을 기증·기탁해 한국 전시실 조성에 기여했다.

이번 기증품 중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고미술상(Samuel W. Lee & Co.)을 운영한 새뮤얼 리의 장부가 주목된다. 1936년부터 1958년까지 약 22년에 걸친 거래 기록을 통해 한국 미술품을 사갔던 서양인과 일본인 고객 수백 명의 이름, 판매 일자, 주소, 품목 등이 확인됐다.

특히 1937년 7월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방문해 서울과 평양 등에서 강연했던 헬렌 켈러가 서안(책을 보거나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책상)을 구매한 기록도 나왔다. 마티엘리 씨가 받은 고미술상과 표구상 등의 명함 58점을 통해 당시 외국인에게 한국 미술품을 취급하던 상점 정보도 파악된다.

'국민 화가' 박수근(1914∼1965)이 1962년 미8군 SAC 도서관에서 열었던 개인전을 소개한 책자에는 기존 자료보다 작품 11점이 더 나왔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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