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전한 가상자산시장 육성을 위한 제언
가상자산시장은 2022년 내내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법정화폐와 등가교환성을 표방하는 스테이블코인의 일종인 테라와 루나의 가치가 며칠 사이에 0으로 수렴하는 사건이 5월에 발생했고, 11월에는 세계적인 가상자산거래소인 FTX가 파산을 신청했다. 이달에는 국내 게임사 위메이드가 발행하는 가상자산인 위믹스가 국내거래소에서 퇴출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의 궁극적 원인은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하자는 미명 아래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 규율을 소홀히 한 것이다. 업계에서 자율규제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탓도 있다. 이에 가상자산 보유자들을 보호하고 시장을 건전히 육성하고자 가상(디지털)자산에 관한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시작됐다. 그렇지만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들을 보면 총체적인 규율체계를 정립하기보다는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거래 금지에 입법 방향이 맞춰져 있다. 입법 진행 또한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과 달리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싱가포르, 중국 등 주요국은 이미 가상자산 관련 규율체계를 정립해나가고 있다. EU는 2024년 관련 기본법을 시행할 예정이며, 일본은 일찌감치 자금결제법에 가상자산에 대한 규율체계를 도입하고 시장상황 변화를 반영하여 법을 개정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가상자산에 대한 기본법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적 규제체계가 정립된 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가상자산에 대한 규율은 국제 정합성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현재 금융위는 증권형 토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인 걸로 알려져 있는데,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가상자산 분류체계를 구체화하고 자산별 건전성 규제 및 행위 감독 방안과 규제 거버넌스를 담은 가상자산에 관한 기본법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급결제용도로 활용될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에는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담보자산을 매개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전통적 금융시장과 연계성이 높으며 코인 발행업자의 담보자산 보관 방식은 소비자보호와 직결된다. 이러한 이유로 EU, 영국, 일본, 미국 모두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규제를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높진 않지만 향후 은행이나 빅테크기업 등이 발행에 나서거나 해외 스테이블코인이 유통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선제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안전하게 발행·유통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둘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증권형 코인과 달리 지급결제용 코인, 즉 화폐에 해당하며 따라서 스테이블코인 교환·유통시스템은 자금결제시스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스테이블코인은 법화 등 기존 화폐와 균일성을 가져야 하며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하는 지급결제제도의 한 부분이 된다.
스테이블코인의 담보자산 가치가 불안정해져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하락할 경우 화폐제도 안정성의 필요요건에 해당하는 화폐의 균일성이 훼손된다. 따라서 지급결제제도와 화폐 발행, 화폐가치 안정성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 감독에 권한과 책임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디 세계적인 수준의 가상자산 규제체계가 마련되어 우리나라 가상자산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할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해본다.
[현정환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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