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기공사, 세무사, 한복 디자이너…“‘전문가’ 되면 길 열립니다”
취업·학위 모두 잡은 우수 졸업생
치과기공사로 캐나다 영주권 취득
한복전문점 운영 등 창업도…
실습 위주 수업 현장서 갈고닦아
해외취업반서 실습비 지원까지
지난해 12월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이른바 ‘4년제’라 불리는 일반대학 졸업자 취업률은 61%다. 코로나19 여파도 있지만 10년 새 최저 취업률을 기록했다. 대학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은 53.5%다. ‘대학 입학보다 졸업 뒤가 더 문제’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는 29일부터 시작하는 전문대 정시모집 원서접수 기간을 앞두고, 졸업 뒤 해외 취업 및 창업에 성공한 전문대 우수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5~16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만난 전문대 우수 졸업생 4인방은 “20대라는 이른 나이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커리어를 쌓고 있는 지금이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대구보건대 치기공학과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캐나다에서 취업한 김지안씨(이하 김), 배화여대 한복문화콘텐츠과를 졸업한 뒤 인사동에서 한복전문점을 운영하는 강소원씨(이하 강)와 홍초롱씨(이하 홍), 울산과학대 세무회계학과 졸업 뒤 세무사로 일하고 있는 장재식씨가 말하는 ‘전문가’는 무엇일까? 아래는 일문일답.
전문대 진학 계기는?
김 : 대학 진학 고민이 많았던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치기공학과 전망이 좋다고 추천해주셨다. 친오빠가 뉴욕주립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현지에서 일하고 있어 워낙 해외 취업에 관심이 많았다. 알아보니 대구보건대학교의 해외 취업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었고 입학하면서부터 학교 ‘해외취업반’에 들어가 캐나다 취업을 준비했다.
강 : 고등학교 때 우리 옷에 관한 수업을 듣고 관심이 생겼다. 지금은 한복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지만 그때는 미디어 등에 한복이 잘 안 나올 때라 우리 옷 관련 정보를 접할 수가 없었다. 열심히 찾아보다가 한복문화콘텐츠과를 알게 됐다.
홍 : 우연히 티브이에서 한복 디자이너가 나오는 걸 봤다. 너무 멋져서 ‘저분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주변 어른들은 “굳이 한복을 전공한다고? 그냥 패션디자인과를 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09학번인데, 당시 전국에서 한복을 전공으로 마련해둔 학교가 배화여대밖에 없었고 끌리듯 입학하게 됐다.
장 : 울산이 집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취업을 빨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문대를 택했다. 처음에는 사실 세무 쪽에 관심이 있어서 갔다기보다는, 일단 취업이 잘 되어 보여서 선택한 것도 있다.
학과 커리큘럼 중 기억에 남는 과목은?
장 : 어려웠던 과목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국세기본법은 워낙 중요하고 양도 많다. 모두 암기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세법의 기본이기도 해서 제일 기억에 남는다.
김 : 해외취업반에 들어가면 다른 학생들보다 300시간 정도 수업을 더 들어야 한다. 3년 내내 방학도 없이 영어와 전공 지식을 쌓아가면서 공부했다. 2학년 겨울방학 때 캐나다 캘거리에 있는 ‘스카이 캐드’에 실습을 나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갈고닦을 수 있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해외 실습은 사실 자비 부담이 큰데, 학교에서 정착비와 항공편 등을 지원해주셨다. 실습했던 회사에서 취업 제안을 해주셨고 국가고시를 치르자마자 캐나다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캐나다 영주권 취득 후 현재 4년째 근무 중이다.
홍 : 전문대인 만큼 실습 위주의 수업들이 큰 도움이 됐다. 재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린이 한복, 여성 한복, 남성 한복 등 굉장히 세분화 된 현장 지식을 전수받는다. 버선 및 저고리 만드는 법부터 자수 및 금박 놓는 법 등 한복의 모든 것을 배운다.
강 : ‘전통혼례복 제작’이라는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 고증을 바탕으로 원단 자르는 것부터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다.
재학 중 꿈을 이루기 위해 했던 활동이 있다면.
김 : 전공뿐 아니라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학생 때는 막연히 토익 공부부터 시작했고 영주권 준비하면서는 아이엘츠 시험을 봤다. 회사 지원으로 취업 비자도 나왔다. 한국 치과기공사들의 실력이 워낙 좋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선호한다. 국가고시 합격 후 캐나다에 와서 틀니 분야 자격증을 취득했다. 영주권자가 된 뒤로는 2~3개의 직업을 가져도 된다. 지난해부터 ‘디지털 덴탈 웹 플랫폼’인 ‘판게아’를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 치과 관련 의뢰인과 덴탈 캐드 디자이너를 연결하는 사업이고 현재 한국지사장으로 잠시 귀국했다.
홍 : 학교에서 2년 동안 쉬지 않고 공부했다. 한복업체에 실습도 꾸준히 나갔다. 강남쪽 고급 한복 숍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시야가 많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장신구와 단추 하나하나를 직접 보면서 한복에 대한 안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방학 때 친구들과 자수와 색동을 넣은 가방을 직접 만들어 판매해본 경험도 기억에 남는다.
장 : 졸업 즈음부터 진로를 고민하다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 2017년에 울산대로 편입했다. 졸업 후 세무사 1차와 2차 시험에 같은 해 합격해 지금은 세무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직업인이자 전문가로서 보람 있던 순간이 궁금하다.
장 : 절세를 돕는 직업이다 보니 일로써 고객들의 세금 관리를 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 양도나 상속·증여 쪽으로 전문화된 세무사가 되고 싶다.
강 : 한복은 보통 특별한 날, 특별하고 싶은 날에 많이 입는다. 재학 중 배운 전공 지식이 그러한 ‘특별한 옷’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최근에는 생활한복이 인기를 끌고 있고, 한복 대중화를 통해 인식 개선도 많이 됐다. 전통한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관리하기 편하고 예쁜 디자인의 한복을 만들어보고 싶다.
홍 : 내년이면 우리가 운영하는 한복전문점 ‘모란나비’가 10주년을 맞는다. 결혼할 때 한복을 맞추셨던 고객이 “오늘은 아이 한복하러 왔어요”라고 말씀해주실 때 참 보람을 느낀다.
김 : 할머니, 할아버지가 틀니로 불편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내가 잘 만들어서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의치(denture) 만드는 게 보통 거친 일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남성들이 많이 하는 파트인데, 요즘에는 디지털화가 되어서 3D 프린터 등 장비를 사용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 모두를 활용할 수 있어 진출 분야가 더욱 넓어졌다. 선배들에게 배우면서 후배들에게는 새로운 분야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전문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장 : 집에서 혼자 시험 준비를 했는데, 1년 반 정도의 수험 기간 동안 외로운 점도 있었다. 주말마다 여유롭게 노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다. 수험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전산회계나 전산 세무 등 다른 자격증도 좋지만, 세무사를 목표로 한다면 바로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걸 추천한다.
강 : 기본적인 바느질은 되어야 하고 한복에 애정도 있어야 한다. 한복에도 여러 분야가 있다. 생활한복, 디자인, 마케팅, 바느질, 의상 연구, 전통의상 복원 등 자신이 어떤 파트에 관심 있는지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바느질을 낯설어하거나 힘들어하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바느질을 하면서 즐거운지,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홍 : 한복에 관심이 있다면 광장시장에 한번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와 강 대표도 광장시장 원단 도매 집에서 3년 동안 처음 일을 배웠다. 창업을 결심한 뒤 종로4가 지하상가의 2평짜리 매장을 얻어 재봉틀 하나 두고 시작했다. 재학생이라면 어느 전공이든, 교수님을 자주 찾아가서 모르는 것을 여쭤보고 ‘괴롭히는 것’을 추천한다.(웃음)
김 : 치기공학과를 졸업한다고 해서 무조건 치과기공사가 되는 게 아니다. 자신의 관심 분야에 따라 서지컬 가이드 팀에 들어갈 수도 있고 임플란트 회사에 취업할 수 있다. 사업을 할 수도 있다. 전공 심화 과정을 통해 1년 더 이수하면 학사 학위가 나오니 대학원에 가서 연구직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 해외 취업의 경우 한인 기공소에서 경력 많은 선배들께 많이 배울 수 있고 영주권 취득도 가능하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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