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주변국 분쟁 위협에도···韓 군사력 '안방용' 못 벗어나
우크라·대만문제 등 주변정세 불안
中·러·日 전략무기 고도화하는데
한국군 전력은 대부분 대북억제용
韓 5년간 296조 넘게 지출하지만
주변 3강 증액 대비 더 뒤처질 판
재정효율화로 군비예산 확보해야
“주변국들이 모두 역내 군사력 투사 능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대북 억제력에만 주안점을 두고 군사력을 구축해 왔으니 걱정이 큽니다.”
지난달 서울경제와 만난 한 고위 당국자는 이같이 동북아의 안보 상황을 진단했다. 중국·러시아·일본이 국방예산을 대거 증액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전략무기나 게임체인저형 장비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현재 우리 군이 보유한 무기 체계로는 이와 대등한 수준의 안보 균형을 맞추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첨단 무기들은 대부분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안방극장용’에 불과하다는 게 군 및 연구기관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한반도에 갇힌 국군 전력=물론 국방부 및 각 군 차원에서도 해결 방안을 모색해오기는 했다. 국방과학연구원(ADD) 주도로 유사시 주변국도 견제할 수 있는 준(俊)전략무기급 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냈다. 한미 미사일지침의 단계적 완화 및 폐기에 맞춰 개발한 탄도미사일 현무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현무 시리즈 중에는 최대 6~8톤급 중량의 탄두까지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위력 미사일’도 포함돼 있다. 중국 항공모함 등의 위협을 견제할 국산 초음속대함순항미사일 개발도 지난해 성공했다.
다만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불거진 북핵·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 3축 체계(킬체인·한국형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 구축에 주안점을 둬왔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변국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 체계 및 장비 개발 및 확충은 후순위로 밀리는 분위기다. 해군이 중국 등의 서해 위협에 맞서기 위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했던 경항모 사업도 내년도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사업 방향 등을 확신하기 힘들다. 장거리 투사 능력을 갖춘 현무 미사일 시리즈 등에 대해서는 윤석열 정부가 충분히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예산편성에 주안점을 뒀다. 그러나 이 역시 대북 억제 수준에서의 적정 비축량이 산정됐을 뿐 주변국의 위협을 억제할 물량을 확보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군 관계자들은 귀띔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수시로 전략폭격기, 최신 전투기 등을 동원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침범하고 있고, 중국은 해상 연습 등을 핑계로 우리 측의 서해상 배타적경제수역(EEZ) 등도 대놓고 넘나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 관계 복원의 손짓에 대해 조금씩 교감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안보문서 개정안에서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로 표기하는 행태를 재개해 양국 간 영토 분쟁의 잠재적 불씨를 다시 부각시켰다.
◇‘뱁새의 딜레마’ 빠진 한국=현재 군 내부에서 예의 주시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전과 양안관계(중국·대만 관계)의 문제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자체적인 일정에 따라 진행되는 계획적인 성격이 있고 김정은 정권 유지용 무기여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을 갖고 있다”며 반면 “우크라이나전이나 대만 사태는 불확실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며 러시아가 불리한 전황에 몰리면서 막판에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대만 문제도 최근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0월 제 2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대만과 평화통일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고자 최대한 노력과 성의를 다하겠지만 무력 사용 포기를 결코 약속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옵션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혀 안심할 수 없는 사안이 됐다.
이에 대응하려면 북한뿐 아니라 주변국에 대응하는 대응 체계를 확충하고 이를 뒷받침할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가용할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정부가 올해 하반기 수립한 5개년 중기재정계획(2022~2026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부터 5년간 국방 지출 증가율은 4.0%로 책정됐다. 같은 기간 정부의 총지출 증가율(4.6%)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중국은 당분간 7%대 안팎의 국방비 지출 증가율을 지속할 것으로 보이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급격히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도 중국에 맞설 전력 구축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청에 편승해 2027년까지 국내총생산 대비 2%선으로 방위비 예산을 증액하기로 했다.
당장 글로벌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의 충격으로 재정 여력이 크지 않은 윤석열 정부로서는 주변국들의 확장적 군비 확충을 똑같이 따라가다가는 다리가 찢어지는 ‘뱁새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전문가들이 국방예산의 총액 증액에 못지않게 기존 편성 예산에서 불요불급한 사업, 선심성 사업 등은 적극적으로 구조 조정하거나 시행 시기를 미루는 재정 효율화 방식으로 주변국 대응 군비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민병권 기자 newsroom@sedaily.com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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