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금호강 다시 죽이는 개발’보다 ‘얼룩새코미꾸리’를 더 보고 싶어요

김기범 기자 2022. 12. 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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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오염 이겨낸 금호강, 곳곳이 개발로 몸살
홍준표 공약 ‘금호강르네상스’가 멸종위기 어류 위협
“환경 피해 최소화하도록 사업 내용 수정해야”
지난 7일 대구 금호강에서 수중 촬영한 멸종위기 어류 얼룩새코미꾸리의 모습. 성무성씨 제공.

파크골프장 조성을 위해 파헤쳐진 대구 금호강 천변에서 아직 훼손되지 않은 구간으로 발을 옮기자 무성한 수풀 속에 숨어있던 고라니들이 뛰쳐나와 후다닥 도망을 쳤다. 강가로 다가서자 바로 천연기념물 330호인 수달의 발자국이 눈에 띄었다. 몇 발자국 옆 바위 위에는 수달 배설물도 있었다.

지난 7일 금호강 천변 공사 현장에서는 가는 곳마다 쉽게 수달과 큰고니, 얼룩새코미꾸리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7일 대구 금호강에서 확인된 멸종위기 포유류 수달의 발자국. 김기범 기자

대구 시내를 관통하는 국가하천 금호강은 섬유업체를 포함한 산업단지들이 밀집해 있던 탓에 산업화 시기 극도로 오염됐다. 역설적으로 수질오염이 심각한 탓에 다른 강에 비해 개발 압력이 낮았고, 이후 수십 년이 지나 차츰 수질이 회복됐다.

지난 7일 대구 금호강에서 확인된 멸종위기 조류 큰고니와 오리류 들의 모습. 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

하지만 하루 동안 돌아본 금호강 곳곳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공약이기도 했던 ‘금호강 르네상스’와 각 자치구, 환경부 등이 추진 중인 각종 개발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사업 명목과 주체는 다르지만 현재 금호강에서 추진 중인 개발사업들은 모두 금호강 생태계를 보전하기보다는 이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오랫동안 앓다가 이제 겨우 건강이 회복된 금호강의 숨통을 다시 끊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물놀이장, 수변무대, 탐방로 등 친수시설들을 조성하는 대구시의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에서 가장 큰 비판을 받는 부분은 수상레저단지 조성을 위한 수중보다. 4대강사업을 통해 보 건설이 녹조 창궐과 수질 악화, 어종 단순화 등 수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음에도 잘못을 되풀이하려 한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대구시의 수중보 건설이 얼룩새코미꾸리 등 어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이날 하중도 인근에서 대구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실시한 어류 모니터링에서는 불과 십여 분 만에 얼룩새코미꾸리 2마리가 확인됐다. 어류의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은 겨울철에 짧은 시간 동안 얼룩새코미꾸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어류가 금호강에 많이 서식한다는 방증일 수 있다.

지난 7일 대구 금호강에서 수중 촬영한 멸종위기 어류 얼룩새코미꾸리의 모습. 성무성씨 제공.

얼룩새코미꾸리는 흐르는 물에서 서식하는 어종으로 보를 만들어 유속이 느려지면 서식지를 잃게 된다. 금호강 하류에서는 처음 확인됐는데 하류의 수생태계가 회복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 존재가 되자마자 이 지역에서 절멸할 위기를 맞이했다.

현재까지 환경단체 모니터링에서 금호강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 어종은 적어도 37종으로, 도심을 흐르는 하천에서 이렇게 많은 어류가 발견된 것은 흔치 않다.

지난 7일 대구 금호강에서 수중 촬영한 멸종위기 어류 얼룩새코미꾸리의 모습. 성무성씨 제공.

대구 북구청은 천변 파크골프장 조성을 위해 약 10만㎡ 면적의 천변 용지에서 복토 작업을 진행하면서 수달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다. 파크골프장 면적은 약 3만㎡ 정도로 수달의 주 활동공간인 강기슭은 훼손할 필요가 없지만 북구청은 공사를 강행 중이다. 현재 조성 중인 파크골프장 부지 가까이에는 이미 다른 파크골프장이 있다.

지난 7일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대구 북구청의 파크골프장 조성 공사로 파헤쳐진 금호강 천변을 둘러보고 있다. 김기범 기자

환경단체들은 금호강 강촌햇살 다리 인근에 환경부가 만들려는 자전거도로와 교량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미 금호강 대부분 구간에 자전거도로가 조성돼 있고, 몇 분만 걸어가면 인도교가 있는데 굳이 벌목을 진행하면서까지 새 도로와 교량을 설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현장을 둘러보면서도 기존 도로와 교량이 이미 시민들의 산책로로서 충분히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경부가 자전거도로 설치를 추진하면서 훼손될 위기에 놓인 금호강 천변 모습. 김기범 기자.

환경단체들은 금호강 개발이 예산을 낭비하면서 천변 환경만 파괴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 우려한다. 대구시의 금호강르네상스 사업에는 국비 405억원과 시비 405억원 등 810억원이 투입되며 수중보 건설 등에는 추가적인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호강 고모지구에서 추진 중인 제방 폭 확장 공사의 경우 현재도 폭 5m로 충분히 기능하고 있는 데다 강물이 범람 될 경우 피해를 보는 면적도 매우 적어서 대표적 예산 낭비 사례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날 둘러본 해당 제방 인근의 밭은 환경단체들이 “정부나 지자체가 사들여서 홍수 때 자연적으로 범람하도록 두면 투입되는 예산이 훨씬 적을 것”이라고 주장할 만큼 면적이 좁다.

대구 북구청이 파크골프장 조성 공사를 실시하고 있는 금호강 천변에서 발견된 수달 배설물. 김기범 기자

금호강 개발사업은 국토교통부에서 환경부로 하천관리 기능이 이관된 뒤에도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예산이 투입된 사업을 백지화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환경부가 맡아서 사업을 진행한다면 재검토를 거쳐서 환경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줄이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환경단체, “되살아난 대구 ‘금호강’ 죽이는 환경부의 하천정비 반대”
     https://www.khan.co.kr/environment/environment-general/article/202211151556001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중립적인 수생태계 전문가 자문을 거쳐 사업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 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연구자가 아니라면 정부 입맛에 맞는 자문 결과가 나오기 쉬울 것이라는 얘기다. 금호강에서 멸종위기 어류가 잇따라 발견되고, 개발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훼손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전문가 자문을 거쳐 보호방안을 추가로 보완한 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17일 밝힌 바 있다.


☞ “강 건너에 또 자전거길?”…대구 금호강변 정비사업 두고 환경단체 반발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1161522001

대구 수성구청은 금호강 산책로 조성 과정에서 환경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민 편의를 높이는 동시에 환경 훼손은 줄이는 사례를 만들어냈다. 수성구청은 애초 포장된 산책로를 만들고, 야간조명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환경단체와 협의를 통해 흙길 산책로를 만들고, 야간조명은 달지 않기로 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흙길 산책길이 완공된 후 확인해 보니 사람 발자국뿐 아니라 고라니, 삵의 발자국도 확인됐다”며 “지자체와 환경단체가 한발씩 양보해서 성과를 만들어낸 덕분에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이 가능한 공간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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