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가건물과 1평짜리 쪽방···한기는 ‘낮은 곳’으로 스몄다
19일 경기 포천시 가산면에 위치한 수백동의 비닐하우스 위에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비닐하우스 전부가 농작물을 키우는 곳은 아니었다. 일부는 말 그대로 비닐로 만들어진 하우스, 즉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샌드위치 패널로 세운 가건물이 보였다. 4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 A씨(29)는 솜을 넣은 신발과 두꺼운 패딩을 입고 시금치와 열무 농사를 한다고 했다. A씨는 “어두운 밤 패딩 차림으로 털양말까지 신고 비닐하우스 밖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가 가장 불편하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B씨(29)는 경기 김포시의 한 제조공장에서 일한다. 오후 7시에 일이 끝나면 B씨는 10㎡ 남짓한 컨테이너 가건물에 몸을 누인다. 방에는 잠금장치도 없고 벽지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지만 숙소비로 매달 25만원을 낸다. B씨는 “춥고 어두컴컴한 방에 혼자 있으니 우울감이 심하다”고 했다. 6개월 전 김포고용센터에 열악한 주거환경을 신고한 적이 있다. 그러자 고용주는 B씨와 동료의 숙소를 일반 주택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들은 한 달쯤 뒤 다시 원래 있던 가건물로 돌려보내졌다.
B씨는 지난달 14일 김포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류상 거주지가 가건물이 아닌 ‘주택’으로 등록돼 있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B씨는 “항의도 해봤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고 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타향살이를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아늑한 집’은 낯선 개념이다. 2020년 12월20일 영하 15도의 날씨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이 임시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사망한 후로 고용노동부는 컨테이너를 기숙사로 제공하는 사업장에 고용을 불허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이주노동119가 지난 9월 발표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상담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66명의 이주노동자 중 30명이 비닐하우스 살이를 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의 가건물은 대체로 컨테이너를 뜻한다.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C씨(30)와 D씨(28)는 지난해 2월26일부터 충북 논산시의 한 딸기 농가에서 일을 시작했다. 숙박시설을 제공받는 대가로 매달 임금에서 14만3000원을 공제한다고 근로계약서에 써 있었지만, 농장주는 이들에게 폐가를 안내했다. 집 문은 종이로 돼 있어 한기를 막기 힘든데, 난방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농장주는 두 사람에게 약속보다 더 많은 숙박비를 받아갔다. 월 36만~41만원을 임금에서 떼 간 것이다. 올해 2월에는 난방비와 전기요금 명목으로 140만원을 추가로 걷어간 적도 있었다. 한국어에 서투른 이들은 어떻게 항의해야 할지 몰라 꼬박 1년간 묵묵히 참고 지냈다. 지난 3월 이주노동자지원단체 지구인의정류장을 통해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뒤에야 사업장을 바꿀 수 있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고용노동부가 직접 주택상황을 살피지 않고 관행적으로 허가를 내주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숙소를 주택으로 허위 신고하고 실제로는 가건물에 살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주에 돌아봤더니 반경 5㎞내 농장 15곳에서 노동자 40여명이 불법 가건물에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장주의 90%는 임차농이라 숙소를 짓고 싶어도 못 짓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에게 행정적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시골의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가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도 쪽방촌은 유독 겨울나기가 힘든 곳이다. 특히 올 겨울은 강추위에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겨울을 지내기가 한층 힘겨워졌다. 서민 연료인 등유가격이 올해 초 1100원대에서 현재 1700원대로 50%가량 뛰었다. 2년 전 장당 700원에 팔리던 연탄가격도 올해 850원으로 올랐다. 올해 전기요금은 세 차례에 걸쳐 kWh당 19.3원 인상됐다.
정난희씨(55)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10㎡ 넓이의 방에 남편과 둘이 산다. 두 사람이 함께 덮을 수 있는 이불을 펼치면 방이 꽉 찬다. 집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건 칠 벗겨진 목재 미닫이문 하나다. 인근 쪽방에 사는 아들 김연우씨(23)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겨울철 집 밖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돌릴 때면 심란해진다. 냉온수 조절이 안 되는 탓이다. 김씨는 “1분쯤 따뜻한 물이 나오는가 싶어서 몸에 물을 끼얹으면 바로 냉수가 된다”며 “어머니는 당뇨가 있어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촌은 1000여명이 모여 사는 서울 최대 쪽방촌이다. 지난 17일 방문한 이곳은 영하 10도의 날씨 탓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전날 내린 눈으로 얼어붙은 길에는 태우고 남은 연탄재가 늘어서 있었다. 쪽방촌 생활 30년이 넘은 김영자씨(72)는 전날 한파를 피하기 위해 평소 살던 옥탑방에서 나와 주민사랑방에서 잤다고 했다. 김씨는 “난방비부터 밥값까지 안 오른 게 없다”며 “옥탑방은 난방이 제대로 안 돼 추운 겨울에는 오래 있기 힘들다”고 했다.
동자동 쪽방촌 비탈길 중턱에 있는 이순자씨(77)의 집문 안쪽에는 이불이 걸려 있다. 한파에 대비해 이달 첫째주에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이불을 걸지 않으면 방바닥에 한기가 퍼져 보일러도 무용지물이다. 이씨는 “11월에는 밤에 사나흘 정도만 보일러를 켰는데 가스비가 5만원이 넘었다”며 “요즘은 가스비를 줄이려 이불로 몸을 감싸고 그 안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돈의동 쪽방촌의 상황도 비슷했다. 폭 1.5m의 미로 같은 골목을 서너번 꺾어 들어가면 나오는 한 쪽방 건물 3층에 손모씨(60)가 살고 있었다. 손씨는 젊어서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다 지병이 생긴 뒤 이곳으로 왔다. 3.3㎡ 남짓한 방에 사는 그는 기초생활수급비 80만원을 받아 월세로 24만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생활한다. 방 한 켠에는 손씨가 매일 먹는 수면제와 혈압약이 놓여 있었다. 손씨는 내복 위로 옷을 여러 겹 껴입는 방식으로 추위를 버틴다고 했다. 방 벽에는 깔깔이부터 패딩까지 겨울옷 대여섯 벌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쪽방촌 주민인 김선학씨(47)는 무료급식소와 연계해 틈틈이 주민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한다. 덕분에 쪽방촌의 주거환경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김씨는 “쪽방촌 건물의 20% 가량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졌다. 그런 곳은 거의 보온이 안 된다”며 “술을 마시면 몸이 달아올라 추위를 견디기 용이하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겨울철에 술을 더 많이 먹는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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