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언론계가 기록한 키워드는 '폭력', 그 모습은

박재령 기자 2022. 12. 1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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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길 한국외대 교수 "출국 금지, 영화에서 보던 단어가 연결"
유선영 TBS이사장 "법이 의사결정권자 선의에 의존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언론학계가 모인 송년세미나의 화두는 '폭력'이었다. 학자들은 법치에 기반한 공권력이 개인에게 얼마나 파괴적인지, 그 폭력성을 고발했다. 학계는 지금의 상처를 앞으로 기록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 16일 서강대 가브리엘관에서 열린 문화연구 송년세미나. 왼쪽부터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 유선영 TBS 이사장, 박성우 우송대 교수. 사진=박재령 기자

지난 16일 서강대 가브리엘관에서 한국언론학회 문화젠더연구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문화정치연구회 등과 서강대 미디어융합연구소 주최로 '2022국면, 문화연구의 대응' 세미나가 열렸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유선영 TBS 이사장(성공회대 교수),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 등이 참석해 정권의 행태와 학계 대응방침을 논했다.

채영길 교수는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으로 공권력에 의해 압수수색과 출국금지를 당했던 당사자다. 검찰은 '2020년 상반기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재승인'에 참여한 복수의 심사위원들을 지난 9월 압수수색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TV조선 등 재승인 심사점수가 조작됐다는 주장이지만 학계는 고유권한과 전문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심사위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TV조선은 내년 4월 새로운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다.

채영길 교수는 “영화나 뉴스에서 보던 단어들이 나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이 상당히 놀라웠다”며 “출국금지 대상자 중에는 무서운 사람들이 많다. 형사재판 중이거나 징역형, 금고형의 집행이 끝나지 않은 사람, 출국 시 국가안보 또는 외교관계를 해칠 염려가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출국금지는 3개월 더 연장될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 지난 10월 '한국 속에 갇힌 한국의 국제보도' 토론회에 참석한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 사진=김예리 기자

이어 “(수사가) 언제 끝날지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주에도 이메일 압수수색과 포렌식 절차를 보기 위해 들어갔다 왔다. 개인을 향한 폭력이 너무도 편하게 진행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당시 TV조선이 생각보다 점수를 잘 받았다는 일반적 견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러한 조치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법률로 강하게 지식인을 얽매어 왔던 오랜 역사의 쉬운 적용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심사위원 압수수색 이외에도 언론계가 공권력의 폭력성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은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KBS 감사와 MBC 고발이 있었고 TBS는 조례안 폐지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10년간 이어져 온 마을미디어도 폐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 테두리 안에 있지만 엄연한 폭력이자 '예견된 일'이라는 지적이다. 채 교수는 “매일매일 자행되지만 우리는 닥쳐야 알게 되는 폭력”이라며 “정권이 바뀌고 난 이후 일련의 폭력들이 있었다. 사실은 이미 폭력을 행할 것이라고 정해져 있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 서울 상암동 TBS 사옥.

유선영 TBS 이사장은 “절차 안에 숨어있는 폭력은 당하는 사람만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TBS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2년 연속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2024년부로는 서울시 지원이 끊겨 존폐 기로에 선 상태다.

유 이사장은 “지난 4월 오 시장 취임 이후 계속 감사가 이어졌다. 정기 감사가 끝나도 계속 감사가 반복되는 세월을 보냈다. 결정적인 임원이나 회사의 비위가 없었음에도 계속 감사가 진행된 것”이라며 “심의위원회에 의견진술 하러 나가도 위원들에게 갖은 모욕과 굴욕을 당해야 한다. 월급이 없어질 걱정을 하는 직원들에게도 엄청난 심리적 폭력”이라고 말했다.

법과 제도가 특정 사람을 위해 쓰이는 현실도 지적했다. 유 이사장은 “언론 자유를 주장하는 법들은 있지만 이 법들이 실질적으로는 최고 통치권자, 의사결정권자들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법치가 아니고 '인치'가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법·규정이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 개인의 호의, 철학, 가치관에 의존해 자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한국은 아직 후진국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법치가 '인치'로 변한 원인 중 하나로 '관료제'를 짚었다. 김 실장은 “TBS 조례 폐지 사건은 법치의 폭주보다 관료들의 정치적 도구화라고 진단하고 있다. 시장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들은 순식간에 예산을 바꾸고 빠르게 절차를 진행한다”며 “정권교체가 번갈아 반복되면서 관리 집단 내에 자기 조직을 지키기 위한 보수화가 더 강해졌다. 결국 자신이 어떠한 목적으로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지는 잊고 어떻게 권력자와 관계를 유지할지만을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5년 동안 방통위하고 서울시 관료들이 보였던 행태와 정권교체 후 검찰의 모습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종편 심사위원에 대한 검찰수사는 관료조직 내의 적대적 정치가 보인 일종의 파편이라고 생각한다”며 “방통위 관료들 또한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보이고 조치의 하자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그것이 안 되니까 심사위원 개인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는 지금의 상처를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기형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부족하지만 사회적인 기록으로 만들고 이 과정을 끝까지 정리하는 보고서든, 논문이 아닌 방식의 작업을 만들어서 다른 포럼 위에 올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영길 교수는 “폭력의 흔적뿐 아니라 폭력에 대응하는 모습도 기록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 기회를 통해 전체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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