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도에 대한 뒤늦은 답변
1899년 여름, 유악(劉鶚)은 말라리아에 걸린 친구 왕의영(王懿榮)을 위해 북경의 달인당(達仁堂)을 찾는다. 당시 달인당은 용의 뼈, 즉 ‘용골(龍骨)’이 함유된 약제로 유명했는데 만병통치약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유악은 약봉지 속에서 뼈조각을 끄집어 왕의영에게 보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용골이었다. 고문서학자였던 왕의영은 용골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신기해하던 중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표면에 한자와 비슷한 무늬들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왕의영이 완쾌하자 두 사람은 달인당을 비롯하여 북경 시내의 모든 한약방을 돌아다니며 용뼈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은 용뼈를 면밀히 살핀 후 총 1058개의 고대 문자를 확인했고, 이것은 ‘갑골문(甲骨文)’의 최초 발견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2세기경에 편찬된 <설문해자說文解字>를 근거로 약 9000자의 기원을 이해하였고 학자들은 이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1903년에 유악과 왕의영이 갑골문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철운장귀鐵雲藏龜>를 발표하자 <설문해자>가 독점하던 권위는 무너지고, 각 한자의 유래와 의미를 밝히는 데 더욱 정확한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용골이 최초로 발견된 하남(河南)성 안양(安陽)시 교외의 작은 마을 소둔(小屯)으로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소둔 마을은 기원전 1046년경에 멸망한 상(商)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있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은허(殷墟)’라고 불리는 커다란 흙 언덕이 있었는데, 가난한 농민들이 그곳에서 용골을 캐내 읍내의 한약방에 내다 팔고 있었다. 1928년부터 은허 발굴조사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과학적 발굴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갑골(Oracle bones)’이라 불리는 거북 배 껍질이 다량 발견되었다.
고대 상(商,B.C.1600-B.C.1046)나라 왕들은 그들의 조상과 연락하고 싶을 때 거북 배 껍질 점(占)을 쳤다. ‘귀갑(龜甲)’, 즉 거북 배 껍질 표면에는 전쟁의 여부와 사냥의 성과를 묻고 제사에 쓰일 희생물의 종류, 그리고 날씨와 농산물 수확의 예상, 왕이 꾼 꿈의 징조 등을 묻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점치는 행사를 총괄한 전문가들을 정인(貞人)이라 했는데, 이들은 먼저 거북의 배 껍질에 구멍 흔적을 냈는데 이때 고도로 섬세한 기술이 필요했다. 정인은 껍질을 완전히 뚫지 않고 0.5㎜보다 얇은 막의 홈을 만들었는데, 벌겋게 달군 나무막대로 홈을 지질 때 나타나는 균열을 일정한 형태로 유지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배 껍질이 열에 의해 갈라지며 맑고 깨끗한 소리를 냈는데, 이 소리를 ‘박(噗)’이라 했고 당시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귀갑이 ‘말을 한다’고 했다. 정인들은 갈라진 균열을 통해 조상신들의 대답을 판독하여 왕에게 보고했으며, 그 문답의 내용을 사용했던 귀갑에 칼로 새겼고 그 문장은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졌다. 한자에서 ‘점치다’ 또는 ‘점쟁이’란 뜻의 ‘복(卜)’자는 귀갑 표면에 갈라진 균열을 문자화한 것이다. 갑골은 17만5000개가 발견되었고 그 중 약 5000개의 조각에 글자가 있었다. 현재까지 이 글자 중 절반 정도만 의미가 해독되고 있다.
그런데, 하필 거북 배 껍질로 점을 쳤을까? 거북과 점복(占卜) 사이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고대 상나라의 사람들은 온 세상을 사방(四方)으로 인식했다. 방(方)은 네모난 형태를 뜻한다. 그들이 살고있는 중앙의 네모난 땅과 동서남북으로 미지의 네모난 땅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흔히, 동양의 우주관을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땅은 사각의 형태가 아니라 동서남북으로 사각형이 이어져 붙은 ‘십자(十字)’ 모양의 사각형이다. ‘아시아(Asia)’대륙을 뜻하는 ‘아(亞)’자는 이들의 지리관이 투영된 글자인 것이다.
이들은 동쪽 네모난 땅의 끝에 거대한 뽕나무가 있다고 믿었다. 뽕나무 가지에는 열 개의 태양이 걸려있는데, 매일 새로운 태양이 뽕나무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태양은 스스로 날아다닐 수가 없으니 새가 태양을 움직인다고 믿었는데, 이 새가 바로 삼족오(三足烏)이다. 열 개의 태양이 한 번씩 날아오르면 십일, 즉 ‘일순(一旬)’이 되고 이를 세 번 반복하면 한 달(一月)이 된다. 태양을 이동시키는 검은 새가 다리가 셋인 것은 한 달의 시간을 시각화한 것이다.
태양이 저무는 서쪽 네모난 땅의 끝에는 곤륜산이 있다. 곤륜산 꼭대기의 거대한 오동나무 가지 위로 태양이 내려앉으며 하루해가 진다. 오동나무와 뽕나무는 누런 샘물, 즉 ‘황천(黃泉)’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루낮을 밝히는 소임을 다한 태양과 삼족오는 이 지하 샘물을 타고 다시 동쪽으로 이동한다. 동쪽 뽕나무 밑으로 이동한 태양은 온천수가 고여있는 탕곡(湯谷)의 함지(咸池)에서 몸을 씻고 다음을 준비한다.
상나라 사람들이 믿었던 땅과 하늘의 질서는 이와 같았다. 거북의 배는 십자(十字) 형태의 ‘아(亞)’와 비슷하고 등껍질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五方)을 덮은 반구형의 하늘을 닮았다. ‘천원지방’으로 설명되는 그들의 공간개념은 거북의 모습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신석기 시대부터 ‘희생(犧牲)’으로 돼지, 개, 소, 양 등의 다양한 동물을 불태웠다. ‘희생’을 바쳤다는 것은 그 제사의 대상이 인간화된 신(神)이며 그것은 조상신이다. 현실의 형태가 아닌 혼(魂)과 백(魄)으로 변한 조상신이 섭취하기 위해선 음식의 형태도 달라야 했다. 연기와 냄새는 혼백으로 변한 조상들이 먹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이때 달구어진 동물의 뼈는 소리를 내며 미세한 균열을 냈을 것이고, 태고의 무당들은 이를 무심히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다. 이것이 불의 예언, 즉 화점(火占)의 기원이다.
한(漢, B.C.206-A.D.220)나라 때의 무덤 예술에는 지하세계가 거북과 용이 사는 곳으로 묘사된다. 땅은 거북의 뱃살이고 용은 땅속에 흐르는 물을 상징함으로 당연한 것이다. 물은 수증기로 올라갔다가 다시 비로 내려오기 때문에 동양의 용은 날개 없이도 날아다닐 수 있다. 반드시 날개가 있어야 비행할 것이라 상상한 서양의 용과 다르다. 당시의 무덤인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견된 비단에는 뽕나무 가지 위에 검은 새와 아홉 개의 태양이 그려져 있다. 상나라의 우주관은 한나라 때에도 이어졌고, 그것은 고구려의 무덤 벽화에도 여전히 일관되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우리 민족 문화의 축복이다. 4세기경에서 7세기까지의 고구려 시대상을 오롯이 확인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그중에서도 평안남도 강서군의 무덤 벽화는 압권이다. 강서대묘의 사신도(四神圖)를 화면에 띄우면 아이들의 탄성은 저절로 나온다. 전통 예술품 중에 아무런 설명 없이도 반응이 터지는 몇 안되는 작품이다. 중학생의 눈에도 화면을 꽉 채우는 사신의 자태는 웅장하기 그지없고, 기운생동하는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나 보다. 화가는 1500년이 지난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감동을 자아낸다. 화가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것을 통탄할 뿐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혼자서 허우적거릴 때,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현무는 왜 거북이와 뱀이 뒤엉켜있어요? 그리고 거북이가 거북이 같지 않아요~”
이 글은 그때 그 아이에게 전하는 뒤늦은 답변이다. 거북은 곧 세상이고, 죽은 조상의 영혼이 머무는 북쪽의 검은 땅을 상징한다. 고대인들은 거북이 암컷만 있고 수컷이 없다고 여겨 수컷의 역할을 뱀이 한다고 믿었다. 중국어에서 “거북이알”이라고 하면 패륜적인 욕설이 되는 것은 ‘아비를 알 수 없는 호래자식’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강서대묘에 그려진 현무의 거북이는 실재의 거북과 닮은 구석이라곤 등껍질뿐이다. 날렵하고 기다란 다리와 역동적으로 뒤로 젖히는 머리는 사냥개의 그것이 분명하다. 의도적으로 사실성을 회피함으로써 오히려 실재감을 고조시킬 수 있는 회화적 성취의 결정판이다. 이러한 작가의 기량은 백호(白虎)의 표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호랑이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면 사후세계의 신으로서 경외심이 절감되었을 것이다. 백호와 청룡의 모습이 구분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대에는 호랑이에 잡아먹히는 사람이 많았다. 그 두려움을 순화하는 일 환으로 호랑이의 입속이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는 통로라는 의식이 생겼다. 사신도에 호랑이가 있는 이유이다. 청룡은 지하의 수중과 지상의 하늘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존재임으로 사신(死神)에서 빠질 수 없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游)’의 첫 문장에는 거대한 새 ‘붕(鵬)’이 등장한다. 붕이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을 가득 덮는 구름과 같고 바다 기운을 움직여 태풍을 만든다고 했다. 태풍과 같은 큰바람 또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어서 상나라의 사람들은 이 또한 새가 움직이는 것이라 믿었다. 하여 바람 ‘풍(風)’자의 갑골문자는 봉황을 닮은 새의 형상인 것이고, 붕과 봉황과 주작은 비슷한 상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때 그 아이에게 제대로 답변을 못 했던 것이 마음에 남아있었다. 한국 미술사 관련 서적에는 마땅한 답변이 없어 조금 헤매야 했다. 시각적 호기심에서 자발적 탐구가 시작되고 창의적 발상이 출현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교사가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만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이해하려 한 그 아이의 궁금증이 조금은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덕분에 나도 여러 책을 뒤지며 공부하고 궁리하여 이 글을 썼다. 감사하다.
글·그림 노길상 이우학교 미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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