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봉인해온 기안84를 과연 어떻게 풀어놓을까('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가 근 10년간 아성을 지키는 이유는 리얼리티 때문이 아니다. 외로울 틈 없이 새로운 이웃을 계속해 소개해준 덕이다. 최근 코드쿤스트가 음식, 패션모델로 큰 활약을 할 수 있게 된 이유도 <나 혼자 산다>의 파급력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사실상 우리네 일상과 거리가 먼 연예인, 셀럽이 정서적으로도 가깝고 호감 가는 가까운 친구처럼 다가오는 강력한 인력. 이는 <나 혼자 산다>의 지향이 바로 '인간미'라는 데서 발생한다.
기안84는 이런 <나 혼자 산다>의 지향을 드러내는 정서적 지주이자 상징이다.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의 캐릭터를 활용해 돌파구를 마련했고, 그가 논란에 빠졌을 때는 빠져나올 수 있는 지렛대가 되어 공생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을 맺은 제작진과 기안84이 손잡고 아예 하나의 프로그램을 더 내놓았다.
MBC의 새 예능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기안84 캐릭터의 확장판이다. 태어난 김에 산다라는 수더분함과 기행 사이에 있는 기안84의 캐릭터를 일상에서 세계로 무대로 옮기고 넓혔다. 공식적으로 스핀오프라 밝히진 않지만 모든 것이 <나 혼자 산다>에서 비롯되었다. 상 없이 방바닥에 조촐한 안주와 소주 한 병 놓고 공허함과 매너리즘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행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빌드업 과정은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다. 장도연, 쌈디, 송민호 등 <나혼산>의 전현직 출연진으로 이뤄진 스튜디오 토크쇼의 구성, 기안84의 여행가방, 여행 파트너인 이시언, 촬영 및 편집 기법과 자막 스타일 등등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 등장하지 않은 2회까지는 사실상 <나 혼자 산다>의 한 에피소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아무 데서나 눕고, 뛰고, 잘 먹고, 잘 안 씻고, 정이 많고, 적응을 잘하는 기안84의 진정성은 페루에서도 여전하다. 지금은 <나혼산>을 떠났지만 전성기를 함께 보내면서 수많은 레전드 회차를 남긴 '세 얼간이'의 맏형 이시언과의 호흡은 <나혼산>의 오랜 팬들에겐 더욱 반가운 그림이다. 하지만 이들이 함께 떠난 여행도 처음이 아닌데다, 이미 각자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친분을 수차례 확인한 개인 유튜브 방송도 있는 마당에 인간미를 강조하면서, 이색 체험 위주로 진행된 2회까지의 여행이 새롭게 다가오진 않았다.
팬데믹 이후, 여행 예능이 부활할 조짐을 보일 때 기대가 컸다. 억눌린 여행 수요처럼 관심이 폭발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기록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없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여행 예능의 볼거리를 넘어선 다음 버전의 여행 콘텐츠를 이미 수많은 여행 유튜버들이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 진화의 키워드는 '교류'다. 여행 예능에선 고려되지 않는 가치이기도 하다. tvN <뿅뿅 지구오락실>의 초반 한 장면은 기존 여행 예능과의 작별 인사이기도 했다. 제작진이 세팅한 몰카 시나리오가 크게 벗어났는데, 그 이유는 낯선 환경에서 갈팡질팡하며 웃음을 자아내던 기존의 예능 선수들과 달리 대부분의 젊은 출연자들이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에 문제없는 언어 능력을 갖추고 있고, 구글 앱 등으로 교통수단과 지리를 편하게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디네이터와 대규모 스텝의 존재는 더욱 더 심각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아무리 무계획, 리얼을 내세워도 스텝의 존재는 어쩔 수 없는 장벽이 되고, 통제된 촬영 현장이 된다. 따라서 여행 예능이란 것 자체가 패키지여행처럼 어느 정도 가이드가 이뤄진 '체험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제작 환경상의 한계가 있음을 시청자들이 경험으로 안다. 아무리 색다른 설정을 기획하더라도 여행 예능의 문법 안에서 새로움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그동안 꽁꽁 봉인해온 기안84를 프론트맨으로 내세운 소중한 기회인데 기존 여행 예능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아쉽다. 1,2회는 익숙한 캐릭터들이 언어 장벽 위에서 웃음을 만들고, 아마존 정글 체험과 같은 이색 체험을 다룬다. 물론 현지 가이드 집에 하룻밤 머물며 교류를 하긴 한다만, 현지에서 이뤄지는 생생한 교류와는 거리가 있는 체험의 영역이다. 언어적 장벽을 넘어 로컬에 깊숙이 들어가거나 다른 여행객들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풍경과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여행 콘텐츠들과 디테일의 차이가 크다.
오늘날 방송 예능 콘텐츠의 두드러진 방향성 중 하나가 미디어 컨버전스다. 쉽게 말해 유튜브를 비롯한 웹콘텐츠와의 결합에서 답을 찾는 기획이다. 기획과 인력풀을 웹예능에서 제공받고, 매스미디어의 영향력 지위, 규모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캐릭터들이 유튜브의 여행 콘텐츠의 전형을 만든 유튜버 빠니보틀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만남이다. 방송 캐릭터와 유튜브 장르의 결합이라 새로운 도전으로 비춰질 수 있는 그림이다.
아직 빠니보틀까지 합류한 완전체 여행이 시작되지 않았다. 즉, 빠니보틀의 여행에 함께하는 기안84와 이시언이 될지, <나 혼자 산다>의 게스트로 빠니보틀이 함께할지에 따라 성격이 다른 콘텐츠가 된다. 기존 여행 예능의 시선이 특별한 풍경 속에 들어온 출연자들에게 향했다면 오늘날 유튜브발 여행 콘텐츠의 시선은 3인칭 슈팅게임의 시점처럼 물러서서 출연자를 걸치고 밖을 바라본다. 여행지에서 출연자들이 재밌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은 시청자보다 실제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볼거리를 원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니보틀까지 합류하는 3회부터 과연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기다려진다. 익숙한 여행 예능이 크리에이터의 합류로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빠니보틀 입장에서도 이번이 방송 제작진, 연예인과의 여행이 처음이 아니니 기존 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기안84의 활극과도 같은 여행을 보여주려는 지금의 방향성과 여행 유튜버라는 시장을 개척한 빠니보틀로 대표되는 여행 콘텐츠의 결합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앞으로 흥미로운 반전 포인트가 기대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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