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전공의는 합리적 선택을 했고,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정혜경 기자 2022. 12. 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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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빈 교수
*편집자 주: 뉴스스프링 <"소아과 전공의가 없어요"...입원 거절하는 병원들>를 보고 정윤빈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소아과 전공의 부족 사태'에 대한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하는 차원에서 전문을 싣습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fF3yW6Q3Il ]

2023년부터 병원에서 새로이 수련을 시작할 전공의(레지던트) 모집이 최근 끝났습니다. 각 병원과 진료과의 모집 결과를 받아 든 모든 이들의 시선이 소아청소년과를 향했고 다들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국 201명 모집인원 가운데 단 33명만이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하였고, 66개 수련 병원 중 무려 55개의 수련병원에서 단 한 명의 지원자조차 없었습니다. 때마침 대형의료기관들에서 들려온 소아 환자 입원 진료 중단 소식은 더 커다란 위기감을 불러왔습니다. 충격적인 현실 앞에 쏟아지는 보도들로 인해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여러 전문가들이 내놓는 다양한 진단과 해법이 길을 잃고 있는 듯 보여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사회적 저출산과 이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 COVID-19의 대유행으로 인한 급격한 소아 환자 감소 등은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외면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10년 전과 비교하여 의원급 의료기관의 총 진료비(요양급여비용)가 감소한 진료과는 소아청소년과가 유일합니다(표1). 비급여 진료가 거의 없는 소아청소년과의 특성상 타과 대비 진료수익의 감소는 더욱 두드러졌을 것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에 수요가 감소했으니 이에 따라 공급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어쩌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인력으로 공급의 규모가 재편되는 그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얼마 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밝혔던 성명문의 '전공의들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는 문구는 가슴 아프지만 정곡을 찔렀습니다.

그런데 전공의들이 밝힌 합리적 선택의 근거에는 다른 중요한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전문의 취득 후 마음껏 소아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증 환아 진료를 중심으로 하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급 기관에 근무하는 전문의 비율을 보면, 활동 중인 전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약 26%에 불과합니다(표2). 소위 메이저과라고 말하는 내과, 외과 전문의의 약 40%가 종합병원급 이상 기관에 근무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의원 개원도 어렵고,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것도 어려우니 전공의들이 외면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전문의 중심 진료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

전공의들이 특정 진료과를 외면하는 현실보다 더욱 큰 문제는, 소아청소년과의 사례에서 보이듯 전공의들이 외면하는 순간 입원환자 진료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24시간 365일 동안 입원환자와 응급실, 각종 검사실을 책임지던 전공의가 없어지는 순간 이 모든 일들은 교수들을 비롯한 전문의들이 해결해야 합니다. 외래와 수술, 각종 시술, 연구 등에 더해 입원환자 진료와 응급실 진료, 당직까지 기존의 전문의들이 버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전공의 대신 전문의를 더 늘려주면 좋을 텐데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원에서는 여전히 전문의를 더 채용할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존경하던 교수들의 삶이 흔들리는 순간 그나마 남아있던 전공의들은 미래를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신규 전공의는 오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됩니다. 소아청소년과의 사례 이전에 이미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외과나 심장혈관 흉부외과 같은 전통적 비인기과는 이미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인 지 오래입니다.

이렇듯 전공의에 의존하는 입원환자 진료 체계는 매우 취약하고, 이는 입원환자 진료에서 시작된 파도가 외래와 응급실, 나아가 향후 지역사회 의료를 책임질 전문의의 수급까지 덮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존 전공의 중심의 입원환자 진료환경에서 전문의 중심의 진료환경으로 변화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문의 중심의 환경으로 변화하면 보다 안정적인 진료환경 내에서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적인 측면이 향상될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전공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가 필요한 전문의의 채용을 병원은 꺼릴 것이고,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원가 상승은 결국 수가 인상의 요구로 이어질 것이기에 정부에서도 난색을 표할 수 있습니다. 병원과 정부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환자의 입장은 이와는 달라야 합니다. 왜 우리 환자들은 이제껏 전공의에 의한 입원환자 진료시스템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일까요? 수십 년간 병원을 지탱해온 전공의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환자들에게 많은 믿음을 주었겠습니다만, 예전과 달라진 현실에서 이제는 우리 사회가 전문의에 의한 입원환자 진료를 요구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안정된 견고한 진료 체계 내에서 미래 세대를 책임질 전공의들을 길러내는 시스템이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그 첫 번째 통로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으로 전문의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합니다. 마침 우리에게는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있습니다. 입원전담전문의란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입원부터 퇴원까지 환자 진료를 직접 담당하는 전문의로, 국내에서는 2016년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도입되어 2021년에 정식 제도로 전환하였습니다.

현재 전국에서 330여 명의 전문의가 종합병원급 이상의 기관에서 오로지 입원환자를 진료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고 있습니다. 제도가 조금씩 정착되며 작년 한 해에만 전국에서 11만 명 넘는 환자가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경험하였고, 입원일수 감소, 합병증 발생 감소, 입원비용 감소 등 전문의 직접 진료에 의한 여러 가지 긍정적인 결과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다소 생소한 제도이지만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잘 활용하여 전문의들이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돌아올 수 있는 통로를 만들면, 전공의 지원율에 따라 병원이 입원환자나 응급실 환자의 진료를 중단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앞서 보여드린 표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의료 현실은 전문의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련 기간 내내 고난이도 수술을 접하며 외과 의사의 꿈을 키웠던 많은 전문의들이 요양병원에서 전문과목과는 관계없는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병원급 이상 기관에서 수술을 집도하는 전문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야간에 중증 응급 환자를 수술하면 이후에 이어질 중환자실과 병동에서의 환자 관리가 엄두가 나지 않아 충분한 수술 능력을 갖고 있어도 대형병원으로 이송을 결정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만약 우리가 잃어버린 전문의를 다시 병원으로 되찾아 올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전문의 중심의 의료환경은 함께 일하는 전문의들이 본인의 역량을 더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여 결국 그 혜택은 환자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잃어버린 전문의를 병원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 중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첫 번째 통로입니다.

예전과 비교하여 유독 의료인력과 관련한 이슈가 많은 요즘입니다. 공공의대 신설과 의사 증원 이슈, 대형병원 의료인의 뇌출혈 사망 사건, 소아청소년과 지원율 하락 등 곳곳에서 의료인력구조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수가의 인상과 의사 수 증원이 소아청소년과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무너지는 의료현장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전문의를 다시 병원으로 되돌려 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고, 수가 문제나 의사 수 문제 등 여러 정책적 방향은 의사인력의 규모가 아닌 의사인력 구조의 정상화를 향해야 합니다.

**정윤빈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 진료교수이자 입원전담전문의로 대한 외과계 입원전담전문의 연구회의 총무이사입니다. 정 교수는 외과 전문의 자격 취득 후 2017년부터 입원전담전문의로 근무하며 수술환자의 안전한 회복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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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기자choi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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