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탄소국경세,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법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세(CBAM)가 확정됐다. 2023년 10월 시범운영이 시작되고, 약 2년의 계도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시행된다. CBAM은 보호무역 정책인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IRA가 시행되기 4~5년 전부터 논의가 시작된 만큼 EU의 결정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두 제도는 태생부터 큰 차이가 있다. IRA는 미국 자국 산업 보호만을 위한 '이기심'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CBAM은 전 세계 탄소 감축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자극하는 '이타심'에서 시작됐다. 주요 운영지표에선 더 큰 차이가 난다. 수입을 제한하는 제품의 주요 목표지표(KPI)를 보면 IRA는 특정 업체의 사업장 위치, 고용 인력의 국적 등이 방어적이다. 반면에 CBAM은 '탄소배출량'이 주요 지표다. 어떤 국가에서 수입하든 탄소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다. 세금을 내는 주체도 수출기업이 아닌 수입기업이다. 관세처럼 내는 방식이어서 더 포용적이고 지속이 가능하다. 탄소배출량을 저감하는 기업의 제품은 유럽 시장 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형평성 있는 제도다. 미국, 중국 등 주요 경제 대국이 '유사 탄소국경세' 도입을 앞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변화에 대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럽보다 지정학적으로 탄소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불리하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와 접해 있고, 파고도 완만해서 세계 해상풍력 5위의 잠재량이 있다. 독일보다 일사량이 많아서 태양광을 이용하기에도 유리하다. 또 IT와 금융 기술 도입으로 발전소 인근 주민의 수용성을 유럽보다 2~3배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10여년 전에 태양광을 제2반도체, 풍력을 제2의 조선업으로 키운다는 목표가 있었다. 세계 최고 인재와 최고 기술력에 기반했다. 지난 10년 동안의 탄소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냉소 및 무관심 속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실행이 중요한 때다. 탄소배출이 산업과 실물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도래했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액션 플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우리 기업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탄소배출량 산정 기준이 확대 적용돼야 한다. 탄소국경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 기업이 얼마나 탄소를 배출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건강검진을 통해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서 고칠 수 있는 것처럼 탄소배출량을 먼저 측정해야 기업별 처방이 나온다. 국내에는 약 500만개의 법인이 운영되고 있다. 이 기업이 기존 질량 기준 탄소배출량 산정 및 검·인증을 한다면 어느 정도 기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얼마나 많은 전문가가 투입돼야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물론 질량 기준 배출량 산정은 정확도가 높지만 적어도 예산 수천억원과 인재 수만명 양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과정 전체를 고려할 때 모든 기업의 배출량이 관리되려면 최소 10년에서 최대 30년이 걸릴 것이다. 때는 이미 늦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질량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비용 기준으로 배출량을 산정해서 검·인증해 주고, 이를 운영하기 위한 인공지능(AI) 데이터 기술 등이 요구된다. 그렇게 되면 기간과 비용은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둘째 전반에 걸친 에너지의 전기화와 에너지 믹스 전환이 필요하다. CBAM 기준 품목은 철강·알루미늄·비료·시멘트·전력·수소 등 총 여섯 가지로, 이 가운데 전력과 수소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품목과 다르게 전력과 수소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원료를 뜻한다. 결국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전력이나 수소를 만드는 자원이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탄소배출량 비중은 크게 전력 40%, 열 60%로 구분된다. 열 분야는 대표적으로 탄소배출량이 심한 석유, 석탄, 액화천연가스(LNG)를 태우는 것이다. 열 전달 과정에서 손실률이 높아 전기화하는 것만으로도 배출량을 상당 부분 감축할 수 있다. 전기화된 비중을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으로 에너지 믹스를 전환하면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단기간에 감축할 수 있다. 물론 장기간을 고려하면 에너지 효율화 기술을 적용해야 하지만 CBAM 대응을 위해선 전기화와 에너지 믹스 전환이 전략적으로 우선 검토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탄소 감축 대부분은 재생에너지가 확대돼야 가능하다. EU를 넘어 미국, 중국 등 탄소국경세의 전 세계 확대는 RE100 이행을 가속할 것이다. 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에 비해 공급량 부족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기술이나 경제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지만 제도는 정권에 따라 바뀌고 주민 수용성은 악화할 수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 장벽을 낮추는 제도 혁신과 더불어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힘을 쓰고, 기업은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를 낮추는 기술 혁신을 이어 가야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탄소국경세가 전 세계 국가에 적용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리 기업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외교적 노력보다 탄소 감축 그 자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민·관이 합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전 세계 탄소국경세 시대를 맞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 th.yoon@rootenergy.co.kr
◇필자 소개
윤태환 대표는 덴마크공대(DTU)에서 풍력에너지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 e센터 풍력발전 추진위원회 전문가 자문위원과 운영위원을 겸하고 있다. 2013년 루트에너지를 창업했고, 2017년 재생에너지 커뮤니티 펀딩 플랫폼을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2020년에는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 주민참여 사업을 추진했으며,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루트에너지는 누구나 친환경 발전 사업에 투자 가능한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와 발전소 직접 투자 및 건설 관리·운영, 전력 중개 등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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