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사재기’ 중앙은행들, 금융위기 내다봤나···한은은 9년째 매입 중단 [조지원의 BOK리포트]

조지원 기자 2022. 12. 1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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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안전자산에 통화가치 방어 수단
중앙은행 금 보유량 48년 만에 최대
金 산 이유로 ‘금융위기 가능성’ 꼽아
한은 “가격 변동성 커 金 살 때 아냐”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 놓인 골드바 모습. 성형주기자 2020.08.05
[서울경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金) 사재기에 열중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자 통화가치 방어(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인 금을 경쟁적으로 사두는 것이다. 다만 한국은행은 포트폴리오 다변화 측면에서 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며 2013년 이후 9년째 금을 1g도 사지 않고 있다.

19일 국제금융센터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 중앙은행의 금 매수 규모는 399.3톤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1분기 87.7톤에서 2분기 186톤에 이어 금 매입 규모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터키(31.17톤), 우즈베키스탄(26.13톤), 인도(17.46톤), 카타르(14.77톤) 등 주로 신흥국 중앙은행이 금을 대거 사들인 가운데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중국과 러시아도 금을 상당량 매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분기에도 UAE 등을 중심으로 금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전체 금 보유량은 3만 6746톤으로 1974년 이후 48년 만에 최대로 증가했다. 세계 최대 금 보유국은 미국(8133.5톤)으로 독일(3355톤), IMF(2814톤), 이탈리아(2452톤), 프랑스(2437톤) 순으로 이어진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금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것은 과거 금본위제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금이 아직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다.

골드바. 서울경제DB

최근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을 사 모으는 가장 큰 이유는 위기감이다. 국제금융시장 불안과 변동성이 높아지자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금협회가 올해 4월 중앙은행 57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1개국은 ‘금융위기 가능성’을 금 매수 이유로 꼽았다.

무엇보다 금은 위기 상황에서 보험 역할을 한다. 신흥국 입장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통화가치가 급락하는데 금 가격은 반대로 오르게 된다. 일종의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 되는 셈이다. 중앙은행은 금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보단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산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금을 산다. 올해 금을 가장 많이 사 모은 터키는 리라화 가치 폭락에 대응해 금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또 다른 안전자산인 달러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대체재로서 금을 매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위기로 위험회피 심리가 확대된 것도 금을 매입하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과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2010년 유럽 재정위기, 2019년 코로나 확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위기 상황 때마다 금 수요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은행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골드러시(gold rush)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한은이 보유 중인 금은 104.4톤으로 2013년 2월 이후 약 10년째 변함없다. 달러 환산 기준 47억 9000만 달러로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 4161억 달러의 1.2% 수준이다. 금은 시세를 반영하지 않고 매입 당시 가격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변동 없이 그대로다. 다만 19일 국제 금 가격인 트로이온스(T.oz, 약 31.1g)당 1791.51달러 기준으로 환산하면 대략 58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한국은행 앞. 연합뉴스

한은이 금을 매입했던 것은 과거 김중수 전 총재 시절이 마지막이다. 당시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금을 매입하자마자 가격이 급락하면서 국회 등에서 투자 실패라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후 금값이 올라 취득 원가를 훌쩍 넘어섰지만 한은은 금을 쳐다도 보지 않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중앙은행들이 안전자산 확보 차원에서 금 매입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며 “금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금을 더 매입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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