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쾌거 '벤투가 옳았다' [ST월드컵결산①]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한국 축구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무대를 밟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11월 20일부터 이달 19일까지 펼쳐진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한국은 조별리그 H조에서 1승1무1패(승점 4, +0, 4골)을 기록, 포르투갈(2승1패, 승점 6)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우루과이도 1승1무1패(승점 4, +0, 2골)로 한국과 같은 승점, 골득실을 기록했지만, 다득점에서 한국이 앞섰다.
한국은 내친김에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에 도전했지만, 16강전에서 강호 브라질에 1-4로 완패하며 카타르에서의 여정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4강), 2010 남아공 월드컵(16강)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16강 무대를 밟으며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실패를 딛고 12년 만에 16강 진출에 성공, 자존심을 지켰다.
▲ 험난했던 16강 도전, 역경 극복한 벤투호
16강으로 가기 위한 벤투호의 여정은 험난했다. 조 추첨에서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등 만만치 않은 상대들과 H조에 편성됐다. 포르투갈과 우루과이는 신구가 조화된 강력한 선수진을 갖춰 한국보다 전력상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장 할만한 상대로 꼽혔던 가나도 귀화 선수들이 대거 합류시키며 전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벤투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4년간 갈고 닦은 '빌드업 축구'가 빛을 발했다. 한국은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수비적인 축구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맞불 작전으로 나갔다. 벤투호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우루과이와 대등한 승부를 펼친 끝에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승점 1점을 획득했다.
이후 한국은 가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수비에 빈틈을 드러내며 2-3으로 무릎을 꿇었다. 내심 1승을 기대했던 가나와의 경기에서 오히려 패했기에 벤투호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하지만 벤투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실낱 같은 경우의 수만이 남은 상황에서 H조 최강인 포르투갈을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후 우루과이-가나전이 우루과이의 2-0 승리로 끝나면서, 한국이 조 2위를 차지하며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 '마스크 투혼' 발휘한 손흥민, '새로운 해결사' 조규성
손흥민은 이번 대회 4경기에서 모두 마스크를 쓰고 풀타임을 소화했다. 월드컵 전 제대로 된 실전을 치르지 못했고, 부상 통증과 시야의 불편함까지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가나전 패배 후에는 손흥민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 빛을 발휘했다. 포르투갈전 1-1 동점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 절묘한 패스로 황희찬의 역전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포르투갈전 승리 후 손흥민은 마스크를 벗고 포효했다. 이어 16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 다시 한 번 기쁨을 만끽했다.
부상 투혼을 발휘한 선수는 손흥민 만이 아니었다. 포르투갈전 결승골의 주인공 황희찬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조별리그 1, 2차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김민재도 첫 경기인 우루과이전에서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결정적인 순간 제몫을 해주며 16강 진출의 주역이 됐다.
핵심 선수들의 부상 투혼은 신예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됐다. 조규성은 이번 대회 전 경기에 출전해 한국 대표팀의 새로운 해결사로 자리잡았다. 특히 가나전에서는 한국 선수 최초로 월드컵 경기에서 멀티 골을 터뜨리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강인의 활약도 눈부셨다. 날카롭고 창의적인 플레이와 패스로 한국 공격의 새로운 옵션이 됐다. 가나전에서는 조규성의 첫 골을 도우며 공격 포인트까지 기록했다.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백승호도 데뷔골까지 터뜨리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 뚝심의 벤투, 결과로 증명하다.
벤투 감독은 지난 2018년 8월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뒤 이번 대회까지 약 4년 4개월 동안 대표팀을 이끌며 역대 최장수 사령탑이 됐다. 이 기간 동안 57전 35승13무9패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고,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4년 4개월 간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2019 아시안컵에서 8강 탈락의 쓴맛을 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코로나19) 사태로 대표팀 소집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힘들게 추진한 유럽 원정에서는 대표팀 내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두 차례 한일전에서 0-3 참패를 당하며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축구인들 사이에서도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 없이 나왔다. 빌드업 축구를 약팀인 한국이 월드컵에서 강팀을 상대로 펼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결과로 자신의 길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세계의 강호들과 대등한 점유율로 경기를 펼치는 모습은 한국도 강팀의 축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 앞으로의 4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벤투 감독과의 동행은 카타르 월드컵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벤투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는 이미 지난 9월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브라질전 이후 한국 대표팀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벤투 감독이 남긴 유산을 이어가고 새로운 사령탑을 선임해 앞으로의 4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는 벤투 감독과의 동행을 통해 4년간 흔들리지 않고 한 방향으로 달려가면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대한축구협회는 내년 2월까지 새로운 사령탑을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의 4년을 위한 신중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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