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인체 침투 테크놀로지’ 이야기…디지털 알약에서 스마트 렌즈까지[몸의 정치경제학]
트랜스휴머니즘의 도래 7
전편에 신체 인터넷(이하 IoB) 시대의 도래를 소개했다. 물론 현재 IoB를 견인하고 있는 주동력은 신체 외부 착용 기기, 즉 웨어러블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체 삽입형 마이크로칩의 급확산이 예시하듯 IoB의 무게추가 기존 웨어러블에서 신체 침투형 기기로 기울고 있음이 감지된다. 신체 위(on body)에서 신체 속(in body)으로의 이행은 <그림1>에 묘사된 세 가지 인체 침투 테크놀로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림1>의 세 가지 유형을 역순으로 간략히 설명해 본다. 먼저 C 매개형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 Brain-Computer Interface)를 통해 이뤄진다. 삽입술을 통해 뇌에 장착된 센서가 신경 세포의 활동과 지시를 독해해 무선으로 연결된 컴퓨터에 이를 전달, 실행하는 유형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BCI 연구는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017년 뉴럴링크(Neuralink)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강한 탄력을 받았다. 지난 12월 1일 머스크 CEO의 발표에 따르면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이제 곧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 착수할 예정이다.
만약 뉴럴링크의 작업이 성공한다면 뇌와 여타 신경 기능 손상으로 인한 각종 질병들, 예컨대 척추마비·시각장애·파킨슨병·알츠하이머 혹은 치매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상태에 획기적 진전이 예상된다. 단적으로 말해 일반인이 온라인에서 하는 쇼핑이나 뱅킹 등 모든 활동을 단지 생각만으로 실행할 수 있는 ‘디지털 염력’이 가능해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BCI와 유사한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 Brain-Machine Interface)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월 카이스트와 서울대 공동 연구팀은 뇌파 신호를 해독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했고 이에 따라 생각만으로도 로봇 팔을 움직이는 것이 현실화되는 기술 수준에 도달하게 됐다.
마블(Marble) 영화에 등장하는 텔레키네시스(telekinesis)를 보유한 슈퍼 휴먼이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흥분된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한 섣부른 낙관을 경계하며 머스크 CEO 같은 기술 흥행사가 투입하는 기대 거품에 쉽게 동요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편 B 삽입형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초소형 디지털 기기를 인체에 삽입하는 형태로 베리칩(Verichip), 인공 심장 제세동기, 스마트 렌즈 등이 대표적 사례다. 가장 널리 그리고 빠르게 보급돼 있고 의료 보건 영역을 벗어나 일상생활과 소비 부문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인공 심장 제세동기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 덴마크 대표로 활약한 크리스티안 에릭센 선수로 인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20년 경기 중 심정지로 쓰러진 에릭센 선수는 그후 이식형 제세동기 삽입 수술 받았고 이번 카타르 월드컵 본선 D조 1차전 튀니지와의 경기에 덴마크 대표로 출전해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12.5km 거리를 뛰었다.
전편에서 여러 번 소개했지만 세계적으로 약 6000만 명의 환자가 고통받고 있는 부정맥을 다루는 인공 심장 박동기의 진화는 눈부시다. 에릭센 선수는 쇄골 밑 수술로 투입된 성냥갑 크기 유선형 인공 제세동기를 쓰지만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사용 승인한 미크라(Micra) 무선 심장 박동기는 길이 약 3.3cm, 두께 약 0.82cm로 이전 유선형 모델 크기 대비 93%나 축소됐다.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 절개술로 사타구니 대퇴정맥을 통해 우심실에 이동되는 이 무선 심장 박동기는 쇄골 밑에 삽입하는 유선형에 비해 향상된 내구성과 통합형 배터리를 앞세워 삽입형 디지털 기기의 아이콘이 됐다. 업계는 2021년 기준 5조8000억원 규모의 시장이 60세 이상 인구의 급증에 따라 2030년까지 매년 3.4%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눈의 미래, 미래의 눈 : 스마트 렌즈
임플란트 칩과 심장 박동기 만큼이나 쾌속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안구 삽입 렌즈(intraocular lens)다. 단순 시각 교정용에서 출발했지만 다양한 부가 기능이 탑재되면서 트랜스휴먼 증강 신체(augmented body)의 영지를 넓히고 있다. 야간 시력을 증강시켜 주는 기능에서부터 웨어러블 안경인 구글 글라스(Google glass)처럼 이동 정보가 렌즈에 투사되는 증강현실(AR) 고급 기능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다.
2018년 도입된 스마트 렌즈는 눈과 눈물의 성분 분석을 통해 혈당 수치를 측정하고 이를 실시간 전송해 원거리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했다. 한편 올해 5월 중국 광저우 선 야트센(Sun Yat-Sen)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렌즈는 배터리를 탑재하지 않아 눈에 부담이 없고 당 수치 측정은 물론 녹내장 치료에 필요한 약물의 적정량을 자동 분비한다고 한다.
2021년 기준 8조5000억원 규모이지만 2029년에는 4배 정도 증가한 약 32조원 시장으로 성장이 관측되는 만큼 이 분야에는 ‘빅 피시(big fish)’들도 많이 진출해 있다. 소니와 구글도 있지만 삼성도 일찍이 뛰어들었다. 2014년 삼성은 극소형 카메라·센서·안테나를 내장하고 눈 깜박임을 통해 기능이 조절되며 모바일폰으로 콘텐츠가 전송되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특허를 취득했다.
더 뛰어난 성능은 스트라스페이 크라운(Strathspey Crown)이 2017년 6월 특허 취득한 렌즈다. 이 렌즈는 백내장과 노화에 따른 근거리 시력 상실을 자동 보정하며 놀랍게도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와 초소형 비디오 카메라가 장착돼 보이는 모든 것들을 기록,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여기에 와이파이 블루투스, 근거리 무선통신(RFID) 기능이 부가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무선 정보 전송이 가능하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영상 녹화 기능과 무선 통신의 보안에 대한 우려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다.
‘
대장 검사 센서 드실 시간입니다’ : 섭취형(ingestible) 디지털 알약
A 섭취형은 말 그대로 입안에 삼키는 디지털 기기다. 디지털 알약이란 용어를 들으면 정서적 두드러기가 먼저 돋는 이들도 있겠지만 마이크로칩이나 스마트 렌즈 같은 삽입형과 달리 시술이 필요 없고 일회용이라는 강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현대 디지털 알약의 가장 선명한 용도는 체내 진단용이다. 심장 박동, 호흡지수, 폐를 비롯한 여타 기관의 체내 온도를 상시 측정하고 정밀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사진2> 속 필캠(Pill Cam)은 대략 종합 비타민 정도의 크기이고 식도·위·소장·대장 등 소화계 내시경 역할을 한다.
필캠의 도입으로 기존의 입과 항문을 통해 뱀 같은 튜브를 넣어 위나 대장 상태를 검사하는 조야한 내시경 시대도 조만간 막을 내릴 듯하다. 현재 배터리와 LED 전등이 탑재된 필캠은 양끝에 달린 초소형 컬러 카메라로 최장 10시간 동안 초당 최대 35프레임을 촬영해 전송할 수 있다.
배터리와 카메라를 섭취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최근 UCSD(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병원에서 개발한 디지털 알약은 자연 분해되는 물질로 구성되고 화학 전지 대신 포도당·멜라닌·위산 등 체내 유기 성분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바이오 연료(biofuel)’를 채택했다. 기능 여부에 따라 최소 200달러, 최대 2000달러(약 26만~260만원)이라는 가격 장벽이 다소 높다.
사실 전자 센서가 부착된 디지털 알약의 대명사는 2017년 미국 FDA가 승인한 어빌리파이 마이사이트(Abilify MyCite)였다. 거북한 사실은 이 알약에 든 마이크로칩이 조현병·우울증·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처방약 복용 여부를 감시하는 기기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칩에 내장된 센서는 섭취 용량을 추적, 기록하고 그 정보를 신체 부착 패치(wearable patch)에 일차 전송하며 그렇게 기록된 정보가 다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환자 자신은 물론 담당 의사나 간병인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말이 좋아 디지털 알약이지 좀 더 확실히 말해 환자의 약물 복용 준수를 강제하는 감시 카메라인 셈이다. 실제로 2018년 다보스 포럼에서 화이자의 CEO는 이 약의 ‘강점’이 환자의 복용 준수를 강제하는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것을 ‘강점’으로 인식하는 것은 과연 제약 의료계의 상식일까. 섭취용 디지털 센서가 약물 복용 준수를 넘어 다른 체내 활동도 추적 감시할 수 있다는 의구심은 데이터 통치와 빅 브라더 음모론에 과도하게 움츠러든 필자만의 망상 탓일까. 아무튼 다행스러운 점은 어빌리파이 마이사이트를 비롯한 추적 기능을 가진 디지털 알약이 대중화에 처참히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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