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대중의 취향 제대로 저격한 윤제균의 저력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그린 뮤지컬 영화 '영웅'이 12월 21일 관객과 만난다. 2009년 초연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동명 창작 뮤지컬을 각색한 작품으로 국내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다. '흥행술사' 윤제균 감독이 '국제시장'(2014) 이후 8년 만에 연출을 맡은 신작으로 한국 영화 최고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혔다. 3년의 기다림 끝에 2022년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 '영웅'은 대작 뮤지컬 영화의 위엄과 윤제균 연출작다운 재미, 감동을 고루 갖춘 작품이다.
영화는 하얀 설원을 걷는 안중근(정성화)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광활한 설원의 풍광은 단번에 영화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곧바로 이어지는 노래가 예열 없이 객석의 온도를 단숨에 끌어올린다. '단지 동맹'으로 연결되는 장면 전환에서 영화의 기세와 자신감이 느껴진다. 몰입감 넘치는 오프닝 장면으로 기선 제압한 영화는 곧장 안중근의 뜨거웠던 생애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 이후 전개는 고향을 떠난 안중근이 동지들과 거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가상의 인물인 궁녀 설희(김고은)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해 독립군에게 전달하는 정보원이 된 사연을 오간다.
안중근 역은 뮤지컬 '영웅'의 초연부터 주연을 맡아온 정성화가 연기했다. 영화 주연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안중근 의사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영화 '영웅' 포스터 속 이미지 그대로다. 영화를 보면 안중근 역에 그가 아닌 다른 배우를 쉽게 떠올릴 수 없다. 14년간 한 인물을 연기한 배우의 캐릭터 장악력과 뮤지컬 명곡들을 스크린에 맞게 되살려낸 가창력은 오직 정성화만의 고유 자산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온전히 책임지고, 등장할 때마다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정성화에게 단단히 빠져들고 만다.
영화는 원작의 구조를 따르되 영화만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배치했다. 회령 영산 전투를 추가해 스펙터클한 전쟁 장면을 연출하고, 원작에서 무대 효과와 앙상블이 인상적이었던 독립군들과 일본군들의 추격전을 코믹한 액션 추격전으로 바꿔 웃음을 선사한다. 안중근의 가족과 설희의 과거를 자세히 묘사해 인물의 성격을 강화하고, 원작에서 안중근을 사모하는 중국 소녀 링링 캐릭터를 마진주(박진주)라는 인물로 바꿔 독립군 막내 유동하(이현우)와 러브라인을 형성해 새로운 사연을 더했다.
원작 뮤지컬을 본 관객이 아니어도 '영웅' 넘버들은 워낙 유명해 한 번쯤은 접했을 법하다. 영화는 원작 넘버의 감동을 잇기 위해 과감하게 배우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녹음' 방식을 택했다. 전체 노래의 70%가 라이브인 만큼 후시 녹음과 다른 생생한 감동이 전달된다. 대표 넘버인 '단지동맹' '영웅' '누가 죄인인가' '장부가'의 절절한 가사가 또렷이 들리면서 가슴 벅찬 순간들을 선사한다. 김고은이 애절하게 부른 '그대 향한 나의 꿈'은 영화 버전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노래다.
'영웅'은 맡은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배우들의 공이 큰 작품이다. 조선의 마지막 궁녀 설희를 연기한 김고은은 첫 뮤지컬 연기에 도전해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주로 혼자 연기하는 분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풍부한 감정 연기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조재윤, 배정남, 이현우는 안중근과 거사를 함께하는 독립군으로 등장해 감초 역할을 담당하고, 이들을 돕는 마진주 역의 박진주는 익히 알려진 노래 실력을 극 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안중근의 동지 마두식 역의 조우진,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여사 역의 장영남, 명성황후 역의 이일화도 저마다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가 개봉하면 아마 가장 많이 회자될 이름이 나문희 배우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를 연기한 나문희가 안중근이 고향을 떠날 준비를 하는 초반 장면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독립운동가의 어머니 역할에 그치는 듯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조마리아 여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아들의 투옥 소식을 듣는 장면부터 나문희의 명연기가 펼쳐진다. 자식이 처한 상황에 비통해하면서도 결연한 태도를 굽히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뿐만 아니라 애달픈 감정을 담아낸 구슬픈 노래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단순히 신파로 치부할 수 없는 진한 울림이 대배우 나문희의 연기 내공에서 나온다.
원작 뮤지컬을 대중적 감성으로 풀어낸 '영웅'은 한국 뮤지컬 전기 영화의 첫발을 내딛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윤제균 감독은 '천만 흥행'을 기록한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2009)와 시대극 '국제시장'에 이어 한국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뮤지컬 전기 영화 장르에 도전해 노력의 결실을 맺는다. 남녀노소 관객을 겨냥한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가 비장한 서사의 무게를 덜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극의 흐름을 깨뜨린 점이 아쉽지만, 뮤지컬 영화다운 영상미와 음악이 두루 빛나는 작품이다.
안중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과거에도 여러 편 만들어졌고, 톱스타 현빈이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 '하얼빈'이 현재 제작 중이다. 작품으로 민족 영웅을 기리는 작업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영화 '영웅'은 현시대의 한국인들에게 안중근의 삶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 문제)를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알리는 유의미한 영화가 듯하다. 잊힌 역사를 되살려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영화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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