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재 산 외국인 고객 장부 확인…헬렌 켈러도 책상 구매

김예나 2022. 12. 19. 09: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간 국내에서 우리 문화재를 사 간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정보를 담은 '고객 장부'가 확인됐다.

이 장부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전쟁기를 거치는 동안 그의 가게에서 한국 미술품을 사 간 수백 명의 서양인과 일본인 고객의 이름, 판매 일자, 주소, 품목 등이 적혀 있다.

재단은 올해 6월부터 마티엘리 씨 부부가 수집한 한국 문화재를 연구·조사하면서 그가 소장한 문화재가 2천여 점에 달한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주요 자료 기증을 끌어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마티엘리 씨, 고미술상 장부·박수근 전시 자료 등 60점 기증
"최대 규모 韓 문화재 구입 명단"…국외 소재 문화재 출처 파악에 도움 될 듯
사무엘 리 고객 장부 모습 1936∼1958년에 거래한 고객 명단을 기록한 장부 [선유민 작가 촬영,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간 국내에서 우리 문화재를 사 간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정보를 담은 '고객 장부'가 확인됐다.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나가게 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한국 문화재 소장가인 미국인 로버트 마티엘리(97) 씨로부터 한국 문화재 관련 자료 3건, 총 60점을 기증받았다고 19일 밝혔다.

마티엘리 씨는 도난당했던 18세기 불화 '송광사 오불도'를 2016년 우리나라로 돌려보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1958년부터 1988년까지 약 30년간 한국에서 지낸 그는 주한 미8군 사령부의 문화부 미술공예과장 등으로 일하며 한국의 병풍, 자수, 도자기, 목공예품 등 다양한 문화재를 수집해왔다.

그가 부인 샌드라 마티엘리(96) 씨와 함께 한국에서 모은 문화재는 1천946점에 이른다.

사무엘 리 고객 장부 일부 1937년 7월 14일 헬렌 켈러가 구입한 내용을 적은 부분. [선유민 작가 촬영,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부는 그간 포틀랜드 미술관, 오리건대 조던슈니처 미술관, 시애틀 미술관 등에 소장품을 기증하거나 기탁해왔는데, 이런 '마티엘리 컬렉션'은 지금도 각 기관 한국 전시실에서 주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에 마티엘리 씨가 기증한 자료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은 거래 장부다.

서울 중구 덕수궁 맞은편 태평로에서 고미술상(Samuel W. Lee & Co.)을 운영한 사무엘 리 씨가 작성한 것으로 파악된 이 장부는 1936년부터 1958년까지 약 22년간 거래한 내용을 기록한 자료다.

마티엘리 씨가 회고한 내용에 따르면 사무엘 리 씨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공부했으며,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고미술품을 판매했다고 한다.

이 장부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전쟁기를 거치는 동안 그의 가게에서 한국 미술품을 사 간 수백 명의 서양인과 일본인 고객의 이름, 판매 일자, 주소, 품목 등이 적혀 있다.

마티엘리 씨가 수집한 명함 중 고미술상 명함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객 중에는 장애를 극복한 사회 운동가로 유명한 헬렌 켈러(1880∼1968)의 이름도 확인된다.

헬렌 켈러는 1937년 7월 당시 식민지 조선을 방문해 서울, 평양 등에서 강연했는데 7월 14일 '서안'(Writing Desk·책을 펴 보거나 글씨를 쓰는 데 사용하는 책상)을 하나 구매한 사실이 장부에 나와 있다.

재단 관계자는 "이 장부는 현재까지 알려진 최대 규모의 '한국 문화재 구입 외국인 명단'"이라고 평가했다.

마티엘리 씨가 한국에서 생활할 때 받았던 명함 58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 활동하던 고미술상, 표구상 등 주로 외국인에게 한국 미술품을 취급하던 여러 상점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단 관계자는 "관련 정보를 추적한다면 1960∼1980년대 한국 미술품(또는 문화재)이 해외로 나가게 된 출처를 광범위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1962년 박수근 개인전 리플릿 모습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에 기증한 자료에는 '국민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1914∼1965) 관련 내용도 있다.

1962년에 열린 개인전을 소개하는 리플릿은 기존에 알려진 자료와 비교해 작품 11점의 목록이 더 나와 있다. 미8군 SAC 도서관에서 열린 박수근의 개인전은 유화 45점이 출품된 것으로 추정되나 기존에는 33번 목록까지만 알려졌다.

박수근의 전시를 연구해 온 서성록 안동대 교수는 "추가 11점 목록은 박수근의 SAC 도서관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 전체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정보"라며 사료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재단은 올해 6월부터 마티엘리 씨 부부가 수집한 한국 문화재를 연구·조사하면서 그가 소장한 문화재가 2천여 점에 달한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주요 자료 기증을 끌어냈다.

재단은 향후 '마티엘리 컬렉션' 관련 연구를 진행해 학술적 성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그간 여러 차례 한국 문화재를 기증했던 이전 행보를 잇는 또 한 번의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자료의 보존·관리를 위해 유관기관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문화재 수집가, 로버트 마티엘리 씨 지난 6월 촬영한 모습 [벤 코트(Ben Cort) 촬영,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es@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