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대 스마트폰 시장 맞먹는다"…K-디스플레이 새 먹거리는
[편집자주]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2023년 격동의 해를 맞는다. 지난해 한국을 꺾고 디스플레이 글로벌 매출 1위를 차지한 중국은 기술 영토까지 넘보고 있다. 미래차, XR 등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이라는 기회도 공존한다. 유례없는 위기와 기회가 예고된 2023년,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위상을 수성하기 위한 길을 찾아본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중국의 거센 추격 등 K-디스플레이 산업을 위협하는 위기에도 우리 기업들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가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으면서 디스플레이 산업도 새로운 기회를 맞을 것이라는 기대다. 가상현실인 메타버스에 접속하려면 XR(확장현실·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아우르는 용어)기기가 필수적인데, 이를 선명하고 끊김없이 화면으로 구현하려면 첨단 디스플레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자동차 시장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자율주행차, 친환경차 등 미래차용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활용성이 무궁무진한 투명 디스플레이 등도 K-디스플레이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를 전망이다
19일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XR기기 시장은 올해를 시작으로 2025년~2026년에 본격적인 개화기를 맞고 2030년엔 10억대에 근접하며 스마트폰(12억대)시장에 버금가는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XR기기 출하량이 처음으로 1000만대를 돌파하며 2020년과 비교해 60% 껑충 성장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는 양산형 신제품이 없어 성장세가 주춤했으나 내년부터 다시 성장세를 보이며 2025년 연간 출하량이 약 48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다른 시장조사업체 DSCC는 XR시장이 매년 50.7% 성장해 2027년 73억달러(9조5622억원)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타와 구글, 애플 등 빅테크(대형 IT기업)들이 XR기기 시장을 이끌고 있다. 메타는 지난달 말 프리미엄 라인인 VR기기 메타 퀘스트 프로를 선보였다. 내년엔 애플이 혼합현실(MR) 헤드셋을, 소니가 7년만의 신제품인 플레이스테이션 VR2를 내놓을 예정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XR기기를 내놓으면서 디스플레이 업계들도 기기에 탑재할 최신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 XR기기엔 LCD(액정표시장치)가 주로 사용됐지만, 향후 마이크로 디스플레이가 주로 사용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몰입감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고해상도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OLED와 마이크로 LED로 불리는 올레도스(OLEDoS·OLED on Silicon)'와 '레도스(LEDoS·LED on Silicon)'가 대표적이다. 현재로선 올레도스의 양산 가능성이 더 높아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우선 올레도스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2016년 가장 먼저 올레도스를 개발한 소니는 애플의 첫 MR기기 패널 유력 공급자로도 꼽힌다. 그러나 수율이 안정적이진 않은 상황이라고 알려져 국내 기업들이 양산 목표를 앞당기며 빠르게 추격중이다. 국내 기업들과 소니 간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기술력 차이 자체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LG디스플레이는 이미 지난해 올레도스를 공개했고, 지난달엔 8000니트의 고휘도 올레도스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양준영 LG디스플레이 상무는 지난달 "복수 고객사로부터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세트업체들의 기기 양산 시점에 따라 공급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올레도스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VR·AR 시장 대응을 위한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투자를 진행해 2024년부터는 일부 제품 양산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차량용 시장 역시 디스플레이 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는 분야다. 아직까지 규모는 제한적이지만, 국내 업체 텃밭인 OLED 시장을 중심으로 공급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를 포함하는 커넥티드카(인터넷 연결 차량) 출하가 늘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고화질 패널 선호도가 높아진 영향이다. 또 OLED패널은 LCD 대비 전력소비가 적고 무게가 가벼워 전기차에 적합하다고 평가받는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차량용 OLED 시장이 지난해 1억2000만달러(약 1572억6000만원) 규모에서 2025년 5억3000만달러(약 6945억6500만원)로 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전체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 예상 성장률은 12% 정도다. 업계 한 인사는 "자율주행차 등 디스플레이 인포테인먼트 기능이 더욱 중요해질 미래차 시대가 다가올수록 OLED 채용 비율은 급격히 높아질 것"이라 말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흥 시장도 존재한다. LG디스플레이가 차세대 무기로 키우고 있는 투명 OLED가 대표적이다. 기존 LCD 기반의 투명 디스플레이는 투명도가 10%에 그치지만, LG디스플레이 제품 투명도는 검정 필름으로 선팅한 것과 유사한 수준(45%)을 구현한다. 터치패널을 결합하면 키오스크 역할도 가능하다. 활용성이 무궁무진해 쇼핑몰, 박물관, 지하철 등 수요처는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만이 해내고 있는 기술력으로 선점한 시장을 굳건히 하는게 중요하다"면서 "인력·기술 보호와 같은 적극적인 정책 지원 없이는 허무하게 주도권을 내줬던 LCD 산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초기 시장 확대 차원에서 상용화 사업 추진 등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디스플레이 산업에 지원을 쏟아붓고 있는 반면, 우리는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국내 한 디스플레이 업체 관계자는 산업의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수요 감소로 국내 업체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투자를 축소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디스플레이 산업 전 단계에 걸쳐 자국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중국 주도하에 디스플레이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계산에서다.
16일 현지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디스플레이 '줴치'(굴기)를 선언한 후 징동팡(BOE)·화싱광디엔(CSOT)등 자국 기업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쏟아부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BOE와 CSOT가 정부에서 받은 적자 보조금은 각각 1조6000억원, 9200억원에 달한다. BOE가 LCD 패널 양산을 위해 지은 공장 건설 비용 7조 8000억원 중 허베이 지방 정부와 금융 기관이 90%에 가까운 대출을 지원하기도 했다.
중국은 LCD와 OLED를 국가 차원에서 주요 지원 사업으로 지정하고 기반 시설 구축부터 설비투자, 패널 생산 등 전 과정에 걸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목표 수율을 달성하면 격려금을 지급하고, 적자가 나면 지원금을 준다. 원재료·전기·가스 등 기초 재료 역시 지원 대상이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의 LCD 시장점유율은 한국(14.4%)은 물론 대만(31.6%)도 뛰어넘은 50.9%로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올해 2분기 기준 소형 OLED 패널의 중국 점유율도 50.6%에 달한다.
중국 기업이 '디스플레이 줴치'를 달성하는 주 방법은 덤핑이다. LCD 패널이나 리지드·플렉시블 OLED 패널 사업에서 원가 이하의 저렴한 가격으로 물량공세를 퍼부어 국내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메운다. 경쟁사들은 손실을 견디지 못해 시장에서 벗어나고, 중국 기업들은 정부 지원으로 손해를 충당한다. BOE의 LCD 5대 응용 분야 시장점유율은 세계 1위이며, CSOT는 불황에도 광저우·선전·소주 등에 생산기지를 확대하고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반도체 중심 기조'가 강해, 상대적으로 디스플레이 산업이 소외돼 있단 지적이다. 삼성디스플레이(지난 6월)·LG디스플레이(내년 중) 등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LCD 패널에서 철수하고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반도체에 비해 세제·보조금 지원 등 혜택이 부족하다. 한국의 OLED 시장점유율은 2016년 98.1%에서 지난해 82.8%로 크게 떨어졌다.
반도체 업종과 디스플레이 업종의 기초 공정이 유사해 인력 유출이 쉽다는 점도 문제다. 상대적으로 처우가 열악한 디스플레이 업종의 저연차 인력들이 높은 대우를 보장받는 반도체 업종으로 쉽게 이직하는 탓이다. 올해 상반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BOE의 첸 얀슌 회장이 직접 나서 "BOE의 시장 가치는 과소평가됐으며, 시장 회복에 대비해 투자를 늘리겠다"며 처우 개선을 약속한 중국과 대조적인 대목이다.
최근 정부는 디스플레이 산업을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에서 반도체와 함께 15개 첨단전략기술 분야에 선정했다. 이로써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R&D)·설비 투자, 특례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으나 업계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조세특례제한법상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돼야 현행 지원세율(3%)보다 2배 높은 세제 혜택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적 전략 사업으로 디스플레이를 지정하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중국에 비해 국내는 이미 큰 폭으로 뒤처져 있다"라며 "아직은 기술 격차를 확보하고 있지만 인력 유출과 세금 부담 등 산적한 문재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마저도 따라잡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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