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부수는’ 재건축, 활성화해도 괜찮을까

주영재 기자 2022. 12. 1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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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선 “그린 리모델링 바람직”
고밀도 개발 필요한 국내와 차이
재생에너지 난방 의무화도 필요

[주간경향]이르면 내년 1월 중에 재건축을 희망하는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이 안전진단을 받을 때 적용되는 구조 안전성 점수 비중이 50%에서 30%로 낮아진다. 구조 안전성 점수 비중이 줄어든 대신 주거환경 비중을 15%에서 30%로 2배 높인다. 설비 노후 비중도 25%에서 30%로 상향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월 8일 이런 내용이 담긴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재건축을 위한 첫 관문에 해당한다. 그간 안전진단은 일종의 재건축 규제수단으로 활용됐다. 구조 안전성 비중이 작아지면서 주차공간이 부족하거나, 배수·전기·소방시설이 취약한 경우에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 이번 규제 완화로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 양천구 목동신시가지를 비롯한 대단지 재건축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평가항목의 배점 비중이 바뀌고,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는 점수가 기존 30~55점에서 45~55점으로 축소되면서 바로 재건축 추진이 가능한 범위가 기존 30점 이하에서 45점 이하로 넓어졌다. 조건부 개건축 판정을 받을 경우 의무적으로 해야 했던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도 선택사항으로 바뀌면서 기간(평균 7개월)과 비용 소모(통상 1억원)를 줄일 수 있게 됐다.

정부가 12월 8일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준공 후 30년이 넘어선 단지들의 재건축 추진이 빨라질 전망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재건축이냐, 그린 리모델링이냐

개정 사항을 반영할 경우 안전진단 통과 단지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가 2018년 3월 이후 안전진단을 완료한 46개 단지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유지보수 판정(55점 초과)을 받는 곳이 25곳에서 11곳으로 크게 줄어든다. 재건축 판정은 0곳에서 12곳으로, 조건부 재건축은 21개에서 23개로 늘어난다. 국토부는 “그간 과도하게 강화된 기준으로 인해 재건축의 첫 관문도 통과가 어려웠던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안전진단기준을 합리화하는 것”이라면서 “이번 제도가 시행되면 도심 주택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국민의 주거여건을 개선하는 데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방식의 재건축이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철거와 자재 투입, 건설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12월 8일 발표한 논평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세계적 흐름과 정반대되는 전면철거 개발방식을 권장하는 반환경적인 정책이라고 평가하며 해당 재건축 안전진단 방안의 전면 철회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충분히 고쳐쓸 수 있는 건축물은 철거보다 수선 개량하는 게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건물 분야는 발전과 수송, 산업 부문과 함께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4대 분야의 하나다. 건물 부문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기준 1억8000만t으로 국내 전체 배출량의 24.7%를 차지한다. 지난 3월 국토부가 발표한 ‘전국 건축물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건축물의 동수는 731만동으로, 전년에 비해 3만동 가까이 증가했다. 20년 이상 노후화된 건물은 전체 건물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건물 에너지 사용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서 신축 건물은 제로에너지화, 기축 건물은 그린 리모델링으로 에너지효율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다만 재건축과 그린 리모델링 사이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에너지효율이 높은 새 건물을 짓는 게 나을지, 에너지효율을 높인 그린 리모델링이 좋을지 선택이 쉽지 않다. 다만 영국의 권위 있는 건축상인 ‘스털링상’을 받은 건축가 14명을 포함한 영국의 일부 건축가들은 2020년 철거보다 리모델링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냈다. 신축 건물에 쓸 철강과 시멘트, 벽돌을 만드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에너지 효율적인 신축 건물을 짓더라도 건설 과정에서 나온 배출량을 상쇄하려면 수십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토지·부동산·건축 분야 전문가들의 모임인 영국 RICS는 당시 상업용 건물이 건설, 운영, 철거 등 수명주기 동안 배출하는 탄소의 35%가 건설 과정에서 나온다고 추정했다. 주거용 건물의 경우 이 수치가 51%였다. 지난 5월 영국 하원 환경감사위원회는 정부에 철거·재건축이 기후위기를 가중시키기 때문에 철거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우리와 비슷하게 정부가 철거 관련 규칙을 완화한 데 따른 우려를 표한 것이다.

건물 전 주기 탄소배출량 알아야 판단 가능

독일의 에너지정책 분야 싱크탱크인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염광희 선임연구원은 “독일에서 200년 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모습을 보니 크레인으로 외벽을 붙잡고, 안을 현대적으로 고쳐 옛 외관에 안은 새로운 느낌이 나도록 한다”면서 “왜 부수지 않냐고 물어보면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더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결국 유럽에서 우리와 같은 전면철거 방식을 보기 어려운 건 고밀도로 개발할 만한 경제적 유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의 사정을 국내에 그대로 대입하긴 어렵다. 부동산 시장의 작동방식도, 건설 자재를 생산할 때의 에너지 소비 정도나 건물의 구조, 주거환경 등 많은 게 다르기 때문이다. 임현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수도권의 밀집도가 높고, 아파트 같은 집합건물 비중이 높아 아파트 재건축을 통해 세대수를 늘리려는(투자 수익을 내려는) 목적이 강하다. 그래서 재건축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면서 “국내 통계를 보면 노후건물이 새로 지어질 때 재건축 비중이 91.3%, 재개발이 7.7%를 차지하고 있어 재건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노후건물의 단열, 성능을 개량해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그린 리모델링은 0.4% 수준에 불과하다.

그린 리모델링이 필요하지만, 불확실한 효과와 비용을 생각하면 노후건물을 재건축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임현지 부연구위원은 “우리의 경우 철거하고, 더 높이 지을 경우 경제적 유인이 많으니 건물 분야의 에너지효율 개선을 빠르게 하려면 재건축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건물운영단계에서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주거환경 개선 효과가 큰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명주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30년 이상 된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건물운영단계의 에너지를 줄이고 미래 폭염과 혹한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현 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에 준하는 수준의 재건축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재건축을 통한 운영단계의 에너지소비량 감소가 건설 과정에서 사용하는 자재, 시공공법 그리고 건물 철거 때 발생하는 에너지와 상쇄할 수 있다고 판단 하기엔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건축물 운영단계 이전과 운영 이후 단계의 탄소배출량을 정량화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이 교수는 구조 안전진단처럼 주거환경을 평가할 객관적이고 투명한 지표 마련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또한 30년 미만의 공동주택이라도 기후변화로 잦아질 폭염과 혹한에 견딜 수 있는 주거 환경인지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건축을 할 경우 건축물의 수명과 에너지 효율과 관련한 다양한 인증제도 간의 정합성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에너지 효율 기준에선 세대 내 기밀이 중요한데, 장수명 주택 인증 기준에선 정기적 정비를 위한 점검구 설치를 중요하게 보는 상반된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향후 건물 생애주기를 고려한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면 공동주택 구조를 벽식구조에서 라멘구조로 바꾸는 방식이 필요하다. 벽식구조는 건물 꼭대기부터 1층, 지하벽까지 벽이 똑같은 자리에 있어야 구조적으로 하중을 지중까지 전달할 수 있다. 벽식구조는 오랜시간이 흘러 리모델링을 해야 할 시기에 시대의 요구에 맞춰 중간에 벽을 허물고 세대의 면적을 조절할 수 없다. 반면 건물의 하중이 기둥을 따라 지중으로 전달되는 라멘구조는 먼 미래 건물의 뼈대는 그대로 두고 세대 면적을 융통성 있게 넓힐 수 있고, 폐기물도 합판이나 방 사이의 단열재 정도만 나오기 때문에 콘크리트와 같은 구조적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또한 “콘크리트 바깥에 단열재를 붙여 사용하면 태양 복사열에 의한 콘크리트 구조체의 수축팽창현상을 막을 수 있어 구조체의 수명을 크게 늘릴 수 있고, 실내 온도를 콘크리트가 머금고 있을 수 있어서 에어컨이나 보일러 사용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서 “결국 콘크리트를 쓰냐 안 쓰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설계와 시공방식의 변경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실내 열적 쾌적감을 더해주는 콘크리트 구조체로 건물의 구조와 환경안전성까지 확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의 에너지제로주택 ‘노원이지하우스’에 태양광 패널이 붙어 있다. / 주영재 기자
가스 난방 아닌 히트펌프 확대해야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자체 충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0년부터 건축물 단열기준이 강화되면서 30년 전 건축물에 비해 신축 건물의 난방에너지 사용량은 최대 43%까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화석연료 사용의 비중이 높은 게 문제다. 주거 부문 에너지의 약 70%가 난방 용도로 쓰이는데, 화석연료 비중이 84%를 차지한다.

유럽과 미국은 난방 탈탄소화를 위해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2035년부터 모든 신축 주택의 가스 연결을 금지하고, 저탄소 난방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미국 뉴욕시도 2023년부터 7층 이하 신축 건물의 가스관 연결을 금지한다. 2013년부터 신축 건물의 석유·가스 보일러 설치를 금지한 덴마크는 2016년부터 이 정책을 기존 건물로 확대했다. 오스트리아도 비슷한 정책을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서 모든 주택에 가스공급 의무화를 규정하면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 예산 편성도 탄소중립에 역행한다. 유럽연합은 2027년부터 화석연료 보일러에 대한 재정지원을 전면 금지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저소득 취약계층 지원으로 연탄과 등유 구입비를 지원하고 있다. 물론 당장은 필요한 정책이나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게 만들 로드맵이 없다는 게 문제다.

유럽의 경우 외부 공기에서 얻어지는 온도차를 활용하는 공기열 히트펌프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면서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공기열 히트펌프는 기체가 액체로 변할 때 열을 흡수하는 원리를 이용해 냉방을 하고, 액체가 기체로 변할 때 열을 방출하는 원리를 이용해 난방한다. 임현지 부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난방 의무 비중을 도입하고, 최소 효율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 공기열 히트펌프도 재생에너지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그린 리모델링 지원 예산도 공공건축물에 편중돼 있는데, 민간이 그린 리모델링을 할 수 있도록 취득세·재산세 감면 등 지원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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