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2050년 한국 소비식량의 5배 사라져…농업의 과제는”
[주간경향] 기후변화로 작물의 재배 적지가 바뀌고 있다. 국내에서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은 점점 북상하다가 2070년대가 되면 강원도 산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감귤과 단감 재배지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농업이 기후변화로 거대한 전환을 맞고 있다. 국내만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밀 수입국이었던 러시아는 이제는 밀 수출 대국으로 변신했다. 기후가 좋아지고, 자본을 투자한 결과다.
기후조건이 유리해지면서 금세기 말까지 전 세계 밀 생산량은 17% 증가하지만, 재배 가능 지역이 줄어드는 옥수수는 24%까지 생산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반적으로 예상 시나리오가 긍정적이지는 않다. 지난 10월 학술지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에 발표된 ‘온난화로 인한 수확 빈도와 수확량 감소가 세계 농업 생산을 감소시킨다’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체 식량 공급이 4%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대 지역에서의 재배지 확대에도 불구하고, 더운 지역에서 발생한 생산 손실을 만회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식량가격 폭등은 일시적이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는 장기적으로 지속된다. “국내 곡물 소비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0.8%를 차지합니다. 마이너스 4%면 크다고 못 느낄 수 있지만 한국 규모의 나라 다섯 곳에서 먹을 곡물 전체가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세계 곡물 생산량의 17%가 유통되고 나머지는 자국 내에서 소비가 되는데, 감소량은 유통 물량의 45%에 달하는 양입니다. 시장 자체가 완전히 교란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소비량 5배만큼 식량 생산 감소 예상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은 지난 12월 13일 서울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기후변화로 가시화된 식량위기가 갖는 심각성을 이렇게 전망했다. 지난 6월 출간한 <식량위기 대한민국>으로 화제를 모은 남 소장은 이날 농업의 미래 연속 강연의 마지막 순서를 맡았다. 식량위기가 수시로 나타날 미래에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농업의 첫 번째 목적은 칼로리 제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거죠.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되는 산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농업입니다. 농학자 입장에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상관없이 양적인 건 무조건 맞춰야 합니다. 여기서 실패하면 다른 건 소용없어요.” 지금까진 성공적이었다. 세계 곡물 생산량은 1961년에서 2017년 사이 4배 증가했고, 곡물 재배 면적은 13% 가까이 늘었다. 그사이 인구는 30억7000만명에서 80억명 가까이 늘었다. 종자 개량과 화학비료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농약과 관개시설 투자의 덕도 봤다. 농업 기술의 위대한 성과였다.
2010년대에 오면서 이런 성공스토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인구가 늘면서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71% 많은 식량이 필요한데 오히려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나 이동수단의 전기화는 이미 의심의 여지 없는 대세가 됐다. 그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나 2차전지에 들어가는 광물 자원에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농업에서 그런 속도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생물과 식량 생산은 기후변화의 속도를 맞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농업, 식량을 어떻게 (인구증가에) 맞춰 생산할 것이냐는 것이죠.”
농업 자생력과 지속가능성 높여야
전 세계 85%의 국가는 식량 순수입국이다.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는 러시아·우크라이나·프랑스·독일·미국·호주·브라질 등 몇나라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남 소장은 “식량은 석유보다 더 편중된 자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작정 자급률만 강조하는 건 대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곡물만 생산해서는 농가의 소득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촌 인구가 고령화되는 마당에 소득마저 기대하기 어렵다면 농업을 더 이상 지속하긴 어렵다. 대량생산으로 값이 쌀 수밖에 없는 곡물만 생산할 경우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선진국형으로 도약하기란 요원하다.
따라서 급한 건, 우선 농업의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남 소장은 “농업은 환경적·생태적 지속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할 거냐가 지금은 가장 큰 이슈”라고 말했다. 그는 “한 10년 전엔 청년회장이 65세였다면 요즘엔 75세 정도로 올라갔다”면서 “농촌에서도 가끔 강의를 하면 10년 후에 이 동네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고 말했다. 고령화로 농사일을 하기 힘든 이들이 늘면서 노는 농지가 많이 생기고 있고, 기계화된 벼농사 외에 고추나 딸기처럼 손이 많이 가는 농장 일은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존속하기 어려워졌다. 1960~1970년대생이 은퇴하면서 귀촌해 1인 가구가 늘어 농가 수 자체는 줄지 않고 있다.
남 소장은 우리 농촌의 어려움이 딜레마 상황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농촌을 유지하려면 농촌에 인구가 유입돼야 하는데 경지면적에 비해 농가 인구가 많으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렵다. 전체 농가의 70%가 1.0ha 미만의 영세농이고, 한해 농업 소득이 1000만원이 안 된다. 규모의 효율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려면, 농업법인을 중심으로 대농화를 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 농업의 분화, 다양성을 위해 새로운 사업 모델도 활성화해야 한다. 일례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아프리카의 우버’로 불리는 트랙터 임대 플랫폼 ‘헬로 트랙터’가 인기몰이 중이다.
영농형 태양광 등 토지 이용 고도화도 필요하다. 농업은 환경에 주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농토를 넓히기보다 기존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비료와 농약 등 외부 농자재 투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의 순환농업을 확대해야 한다. 저탄소 사료를 개발해 소에서 나오는 메탄을 줄이고, 가축분뇨를 연료로 활용하는 바이오가스도 활성화해야 한다. 해외에선 축산분뇨가 새로운 투자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 7월 영국에서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설치하는 뱅가드 리뉴어블을 7억달러에 인수했다. 남 소장은 “이 회사가 영국 이스트앵글리아 지역에 스마트팜을 세우면서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폐열을 이용한 히트펌프로 에너지 비용을 확 낮추는 데 성공했다”면서 “농장의 생산비용이 낮아지니 그 전엔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 수입하던 오이나 토마토도 자기 나라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스마트팜으로 발전한다면, 재생에너지를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느냐가 미래 농업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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