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로 빚은 막걸리? ‘RE100’ 우리 술은 어떻게 탄생했나
지난 16일 오전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신탄진주조의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쿰쿰 시큼하고 달큰한 냄새가 훅 밀려왔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술 냄새. 양조장 안에서는 막걸리가 병에 담기고 있었다. 공장 옆 사무실에서 유석헌(40) 신탄진주조 본부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대뜸 “막걸리 냄새가 좋다”고 하니, 그는 “막걸리, 약주, 청주 냄새가 다 섞인 냄새”라고 웃으며 맞받았다.
‘문화 유씨’ 종갓집 전통주를 상품화한 업력 21년차 신탄진주조는 지난 9일 ‘아르이(RE)100 술’을 세상에 내놨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전세계적인 기업 캠페인이다. 삼성전자·에스케이(SK)그룹·엘지(LG)에너지솔루션·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도 2040~2050년까지 실천을 목표로 삼고 선언한 바로 그 RE100이다. 현시점에서 현실화한 국내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대전의 중소업체가 국내 최초로 RE100을 실현했다. 유 본부장은 유황철(64) 대표의 아들로 2012년 가업을 잇기 위해 양궁을 그만두고 회사 경영에 뛰어들었다.
신탄진주조는 술병을 플라스틱에서 유리병으로 바꾸고 회사 내연기관 차도 모두 전기차로 바꿨다. 자체 태양광 시설 설치도 추진하고 있다. 진작부터 환경에 관심 많은 술 업체였던 셈이다. 그러던 차에 2021년 4월 대전 대덕구에서 추진한 ‘대덕 RE100 캠페인’의 1호 기업으로 참여했다. RE100을 선언했지만, 실천은 막막한 상황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인 ‘에너지전환해유’가 길라잡이가 됐다. 에너지전환해유는 “아르이시(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를 구매하는 방법으로 RE100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따라 신탄진주조는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3~4개월가량 사용할 전력량만큼의 아르이시를 한국에너지공단을 통해 샀다. 아르이시는 신재생에너지 전력 공급 인증서로, 1㎿h에 아르이시를 발급한다. 기업들은 사용 전기 중 아르이시를 구매한 만큼은 재생에너지를 쓴 것으로 인정받는다. 일반 전기료보다 비싸지만,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 실천을 위해 신탄진주조는 앞으로 아르이시를 꾸준히 구매해 RE100 술을 만들 계획이다.
유 본부장은 “이전보다 생산 비용은 약 15%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작은 회사도 RE100을 이렇게 실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었다”며 “내년 봄부터 대덕구 법동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아파트 내 상가 옥상에 시민햇빛발전소가 가동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그곳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에 대한 아르이시를 구매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산 비용은 올랐지만, 술 가격은 그대로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용을 소비자에게 바로 부담 지우는 대신 생산 자동화로 원가를 절감하려는 구상이다.
현재 신탄진주조에서 생산하는 모든 술은 RE100 제품이다. ‘생유막걸리’는 술맛 아는 이들에겐 유명한 지역 막걸리다. 약주인 ‘단상지교’는 유황철 대표 집안 대대로 전수된 비법으로 만든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로 인공 감미료를 넣지 않아 무겁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하타’는 우리나라 품종 쌀(삼광미)로 빚은 청주다. 일본 사케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술로, 일본에 술 빚는 법을 전해 일본에서 주신으로 모시는 백제인 하타의 이름을 붙였다. 특히 한달에 2천개가량 생산되는 단상지교와 하타는 신탄진 인근 금강 변의 논에서 유 대표가 직접 농사지은 쌀로 만들어진다. RE100 술 생산 시작을 기념해 만든 단상지교와 하타의 스페셜 에디션은 에너지전환해유가 운영하는 ‘미호동넷제로공판장’에서 판매한다.
양흥모 에너지전환해유 이사장은 “지금 우리나라 기업들은 RE100 선언을 하면서도 실천은 2040년 이후에나 하겠다고 한다. 2040년, 2050년이면 사실상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엔 늦은 시점이다. 당장 실천이 필요하지만, 어느 기업도 실행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신탄진주조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RE100을 실현한 것은 그 의미가 상당하다. 대기업도 주저하는 일을 지역의 작은 업체가 해낸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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