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부동산·암호화폐 자산 가치 급락⋯현금 보유, 채권 투자, 금리 고점 탐색 집중
팬데믹·전쟁이 촉발한 ‘고물가·고금리’ 시대
“12월에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조절될 수 있지만, 금리 인상 자체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상황이 일부 나아지고는 있지만 물가 안정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11월 30일(현지시각)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재정·통화 정책 콘퍼런스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12월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4%로, 지난 3월(0.25%) 대비 3.75%포인트 올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제시한 올해 기준금리 점도표는 1%대였다. 기존 예상을 깨고 금리를 급격히 올릴 수밖에 없었던 건 4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상황 때문이다.
2년 넘게 이어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적신호가 켜졌고, 올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까지 폭등하면서 물가는 더욱 빠르게 상승했다. 미국 연준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 6월부터 네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이유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오랜 기간 지속된 ‘저물가·저금리’ 기조를 깨는 씨앗이 됐다. 당시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경제가 얼어붙자, 미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는 시중에 통화량을 늘리는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다. 이 덕에 소비가 늘면서 경기는 살아나는 듯 보였지만, 주식, 부동산, 암호화폐 등을 중심으로 자산 버블(거품)이 커졌다. 여기에 중국의 봉쇄 정책과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 등으로 공급이 줄면서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켰다.
미국과 각국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높여 시중의 통화 유동성을 줄이는 긴축 정책을 써야만 했다. 고물가·고금리 시대가 도래한 배경이다. 고물가·고금리 시대, 가장 큰 변화는 기존 자산 가치가 급감했다는 점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올해 1월 역대 최고점인 4818.62를 기록한 이후, 지난 10월 연중 최저점인 3491.58까지 27.5% 급락했다. 나스닥 지수는 작년 11월 역대 최고점인 1만6212를 찍은 이후, 올해 10월 연중 최저점인 1만88까지 약 38% 떨어졌다.
비트코인은 작년 11월 역대 최고점인 6만8606달러(약 8898만원)를 찍었지만, 올해 10월 1만4503달러(약 1881만원)까지 79% 급락했다. 금리 인상으로 대출 부담이 커지자 부동산 시장도 침체에 빠졌다. 미국 전국부동산업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의 미국 주택 판매는 약 442만 채로, 2011년 12월 이후 가장 적었고, 매매가는 10개월 연속 하락세다. 자산 가치 하락으로 투자자들은 새로운 재테크 전략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코노미조선’이 커버 스토리로 ‘고금리 시대 재테크’를 기획하고, 케네스 피셔, 존 롱고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투자 전문가들과 국내 증권, 채권, 부동산 업계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은 이유다.
고금리 시대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는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낼 수 있는 예·적금이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1월 말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959조400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약 30% 늘었다. 주택청약저축이나 예·적금을 보유한 사람은 기존 통장을 깰 필요 없이, 1~2%대 낮은 금리의 예금담보 대출로 돈을 빌려, 금리 5~6%대의 예금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예금 투자를 할 수 있다.
채권 투자도 인기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채권파트장은 “채권이 지금 같은 금리 인상기 약세장에선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투자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개인 투자자 채권 순 매수 규모는 올 1~11월 18조4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6배 증가했다. 채권 매매를 통한 시세 차익은 금리가 내려가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만 있다면 극대화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은 대표적인 안전 자산이지만 금리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이후 사람들이 투자를 기피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미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매물을 급매나 경매로 사는 건 좋은 기회”라며 “금리는 변할 것이고, 공급은 계속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장기로 보면) 나중에 가격이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의 경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내년에 경기 침체가 오면 주가가 더 곤두박질칠 수 있어서다. 최근 미국의 경제 조사 기관인 콘퍼런스 보드는 2023년 경기 침체 가능성이 96%라고 전망했다.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가 3개월물보다 낮은 금리 역전 폭이 12월 초 역대 최대 수준인 0.76%포인트에 이르면서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
이런 시기에는 부채가 없고 불황에 강한 업계 1위 기업에 투자하는 게 투자의 정석으로 통한다. 세계적인 투자 대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주식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270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케네스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창업자 겸 회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선 고금리 시대가 좋은 기업의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며 “특히 하락 폭이 컸던 기술주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워런 버핏의 위대한 부자 수업’ 저자인 존 롱고 러트거즈대 경영대 교수는 “금리 변동과 상관없이 좋은 주식(가치주)을 발굴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것이 버핏의 투자 원칙”이라며 “투자자는 무엇보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고점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자산 시장이 약세장을 띨 것이기 때문에 현금 보유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고금리 시대 (기업의) 현금 보유가 중요하다”며 120조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를 추천했다.
지난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가 다소 꺾이자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자산 시장이 조금 반등하긴 했지만, 12월 들어 11월 고용 지표와 비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예상치를 웃돌자 금리 인상이 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강해지는 등 금리 전망의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분위기다. 최근 많은 전문가가 내년 1~2분기에 금리가 고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1980년대 미국 연준 의장을 지낸 폴 버커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19%까지 올렸던 점을 떠올린다면, 금리 고점을 쉽게 예단할 수는 없다. 시장을 관망하며 현금 보유가 필요한 이유다.
금리 향방을 좌우할 물가 전망에는 금리뿐 아니라 다른 변수도 있다. 올해 인플레이션 심화는 수요 확대보다는 공급망 교란과 불안정한 글로벌 에너지 시장 탓이 컸다.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던 중국의 위드 코로나 급선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전 여부 등도 주요 변수인 것이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금리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plus point
Interview 오건영 신한은행 WM그룹 부부장
”美 연준, 금리 인상 속도 낮추는 대신 최종 목표 금리 높일 수도”
“미국 연준은 금리 인상이 언제 끝날 것인지 시장이 예측하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시장에서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 물가가 다시 빠르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건영 신한은행 WM그룹 부부장은 12월 5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관측했다. 다음은 거시경제 전문가이자 경제 베스트셀러 ‘부의 대이동’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등을 펴낸 오 부부장과 일문일답.
금리 인상, 언제쯤 끝날 것 같나.
“아직 물가가 안 잡혔다. 금리 인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 연준은 금리를 인상하면서도 실물경제가 둔화하고,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면 긴축 정책을 이어 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연준 입장에선 이것이 딜레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금리 인상 속도를 천천히 가져가면서도 최종 목표 금리를 높이고, 고금리를 오랜 기간 유지하는 방법을 쓸 것이라고 본다. 연준은 언제 금리 인상이 끝날지 사람들이 확신하지 못하도록 긴축과 완화적인 발언을 함께 쓸 것이다.”
금리가 계속 오르면 경기 침체가 올 텐데.
”고금리가 오랫동안 유지되면 실물경제에서 약한 고리들을 흔들게 된다. 내년에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은 커졌다. 그러나 미국의 고용이 탄탄한 편이고 저축률이 매우 높다. 이런 방패막이가 있어서 경기 침체가 와도 얕은 침체로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물가가 잡혀야 금리가 떨어질 텐데.
”금리는 올랐지만, 아직 공급망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국은 이제야 코로나 봉쇄 정책을 풀기 시작했다. 오펙 플러스(OPEC+)가 산유량을 늘리는 것도 물가를 잡는 데 도움이 된다.”
금리가 오르면 금값은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금값이 그렇게 많이 떨어지진 않았다. 이유는.
”금이라는 자산은 실물화폐인 달러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자산이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금값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건 미국의 경제 성장성이 확고할 때 가능한 이야기다. 미국의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면 금에 대한 시장의 니즈가 커지고, 어느 정도 금값 방어가 가능해진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Part 1. 솟구친 금리에 달라진 투자 패턴
①팬데믹·전쟁이 촉발한 ‘고물가·고금리’ 시대
②[Infographic] 고금리 시대 방황하는 투자자들
Part 2. 자산운용 전략 제언
③[Interview]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셔인베스트먼트 창업자 겸 회장 케네스 피셔
④[Interview] ‘워런 버핏의 위대한 부자 수업’ 저자 존 롱고 러트거즈대학 경영대 교수
⑤[Interview] 도리안 카렐 슈로더투자신탁운용 펀드 매니저
⑥[Interview]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
⑦[Interview] 경제 전문 유튜버 겸 전업 투자자 전인구 전인구경제연구소장
⑧[Interview] 윤여삼 메리츠증권 채권파트장
⑨[Interview]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
⑩고금리 시대 은행 재테크 전략
⑪[Interview] 왕현정 KB증권 절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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