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도시를 구하려면
[서평]
도시의 생존
에드워드 글레이저‧데이비드 커틀러 지음 | 이경식 역 | 한국경제신문 | 2만8000원
지난 반세기 동안 도시가 쇠퇴하는 원인은 대부분 탈산업화였다. 미국의 러스트벨트, 영국의 리버풀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나타난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도시와 도시의 시민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됐다. 도시의 결정적인 특징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밀집성 혹은 근접성이 질병을 더욱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도시가 곧 인류의 번영과 행복의 열쇠라고 주장하며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 놓은 역작으로 평가 받는 ‘도시의 승리’의 저자이자 세계적 도시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근 3년간 전 세계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의 신작 ‘도시의 생존(Survival of the City)’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책은 같은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교수이자 보건경제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인 데이비드 커틀러와 함께했다. 제목에서 잘 나타나듯이 전공도, 정치 성향도 다른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댄 것은 도시의 번영이 이대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두 저자는 그리스 시대부터 역사적으로 전염병이 도시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나치게 높은 주거 비용, 일자리 간 격차, 재난과 재해에 취약한 기반 시설, 부실한 건강보험제도, 낮아진 상향 이동의 가능성,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갈등, 안전과 자유 사이의 딜레마 등을 다룬다. 도시를 둘러싼 모든 사안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총 열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크게 보면 두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네 장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과 관련돼 있다. 비만·약물 의존 및 중독, 깨끗한 식수 부족 등에 주목한다. 다음 네 장은 보다 넓은 차원의 접근으로 사회적·경제적 문제에 대해 다룬다. 교육·범죄·주거 문제·재택근무 등이다. 모든 장에는 각 사안에 대한 저자의 현상 진단과 정책적 대안이 담겼다.
두 저자는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웃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한다. 상하수도와 같은 도시 인프라, 지역과 소득에 따른 건강 격차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자연재해의 범위는 지리적으로 대개 한정적이다. 대형 쓰나미조차 그렇다. 반면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팬데믹은 지리적 경계가 없다. 모든 지구인을 위협한다.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팬데믹 시기 싱가포르 정부는 공사장 인부나 거리의 청소원 같은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건강 관리와 감염 방지 노력을 소홀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들 사이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뒤 싱가포르에는 환자가 급증했다. 19세기 여러 도시를 덮친 콜레라에서 배운 것도 바로 이러한 점이었다.
“팬데믹의 본질은 전 세계의 어느 한 곳에서 시작되는 질병이 모든 나라에 위기를 가져온다는 데 있다.” 즉 델리의 소년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서울 혹은 뉴욕에 사는 직장인도 언제고 건강을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 차원의 팬데믹 대응을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76%, 국내 인구의 91%가 도시에 거주한다. 도시가 계속 성장하고 번영하고 나아가 모두에게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인프라와 보건, 일자리와 주거, 교육과 치안 등 켜켜이 쌓인 여러 과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두 학자의 메시지를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괴짜 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과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의 저자 리처드 플로리다를 비롯한 여러 석학과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 등 다수의 매체가 추천했다. 한국에서는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인구학자 조영태,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도시공학자 정석, ‘세습 중산층 사회’의 저자 조귀동 씨가 추천했다.
김종오 한경BP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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