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GPS·이메일만 봐도 안다...불면증·우울증 디지털치료제 눈앞”
“디지털치료제, 정신건강의학계에서 할 수 있는 것 많아”
“일주기 리듬으로 불면증부터 기분장애, 대사장애까지 관리”
“디지털 치료제 통해서 정신질환자 인식 개선 기대”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5일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에 따라 3개의 의료기기를 혁신의료기기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들 3개의 의료기기 중 2개는 불면증을 개선할 수 있는 디지털 치료기기, 나머지 1개는 인공지능(AI)으로 뇌경색 진단을 보조하는 소프트웨어다.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 제도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의료기기가 의료현장에서 더 빠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한 제도로 지난 10월 31일부터 시행했다. 주요 평가항목은 혁신성이다.
이번에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된 제품 중 2개의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DTX⋅디지털 치료제)는 국내에서 확증임상을 거쳤고, 품목허가 심사를 받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조만간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이들 디지털 치료기기 중 단 하나라도 허가를 받는다면, 국내에서 최초로 허가를 받은 디지털 치료기기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이달 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만난 이헌정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내 최초의 디지털 치료기기가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불면증의 가장 좋은 치료방법은 약물처방이 아닌 인지행동치료이며, 이미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3번째로 승인 받은 디지털 치료기기가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인 솜리스트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최근 정신건강의학과로 범위를 넓히면 더 다양해지고 있다. 솜리스트를 개발한 페어 테라퓨틱스는 중독 디지털 치료기기인 리셋으로 최초의 FDA 승인을 받았다. 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치료하기 위한 프리스피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디지털 치료기기인 인데버RX 등 정신질환, 기분장애 환자를 위한 여러 디지털 치료기기가 있다.
이 교수는 김린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와 함께 바이오벤처 휴서카디안을 차려 일주기 리듬 디지털 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사람 몸 속의 생체시계에 해당하는 일주기 리듬은 한 번 무너지면 불면증과 우울증 같은 기분 장애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스마트워치로 일주기 리듬을 측정하고 이를 데이터로 활용해 불면증이나 우울증, 조울증 등 기분장애 환자의 일상을 정상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교수는 디지털 치료기기가 정신건강의학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정신질환 환자를 관리하는 데 여러 약이 유용하게 쓰이지만, 약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디지털 치료기기가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어떤 주제로 연구하고 있나.
“일주기 리듬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의 문제를 스스로 파악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우선 개발하고 있다. 일주기 리듬은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준다. 문제는 많은 한국 사람들의 일주기 리듬이 깨져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잠을 너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주기 리듬은 어떤 식으로 측정하나.
“여러가지 지표가 있다. 가장 먼저는 수면에 관한 데이터다.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났는지, 잠은 몇시에 잤는지를 측정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서 언제 처음 빛에 노출됐는지도 중요하다. 일주기 리듬은 아침에 일어나서 빛을 처음 볼때를 기준으로 돌아간다. 또 활동에 관련된 데이터도 중요한 데, 낮에는 활동을 많이 하고 밤에는 활동이 적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건 심박수로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크지만 안정적일 때 심박수는 분당 60회 정도다. 낮에 격한 활동을 할때는 최대 12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아침 시간까지 심박수가 60에 못 미친다면 아직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즉 일주기 리듬이 깨져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치료제는 어떤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일주기 리듬은 불면증과 연관이 깊다. 우선 불면증을 관리할 수 있게 하고, 우울증이나 조울증처럼 기분장애, 더 나아가서 당뇨병이나 비만 같은 대사성 질환도 관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디지털 웰빙 제품으로 출시할 것 같다. 미국에는 디지털 치료기기로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일주기 리듬과 불면증은 어떤 관계인가.
“일주기 리듬이 무너져 불면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불면증 때문에 일주기 리듬이 무너지기도 한다. 일주기 리듬은 24시간보다 조금 긴 시간을 주기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 주기는 고정되지 않고, 잠에서 깬 후 처음 빛을 볼 때부터 시작된다. 일종의 스위치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불면증 환자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그러면 자연스레 일주기 리듬은 뒤로 밀리게 된다. 그래서 일주기 리듬을 바탕으로 불면증을 관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분장애와도 관계있나.
“그렇다. 일주기 리듬이 어긋난 상태에서는 우울감의 조절이 어려워진다. 시간에 따라서 우울감이 달라진다는 것은 정신건강의학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데, 보통 새벽에 우울감이 높고 오후에는 우울감이 해소된다. 그런데 일주기 리듬이 어긋나면 한창 일상생활을 활발히 하는 오후에 우울감이 높아진다. 그러다 보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가장 먼저 불면증 관리로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 이유가 있나.
“수면에 대한 연구는 꽤 많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불면증을 치료하는 방법도 여럿 있다. 불면증 약은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을 조절해 잠에 들게 한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잠에 들게 하는게 아니라 잠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방법에 적합하다. 그리고 이 방법이 효과도 좋다.”
-잠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대표적으로 수면 무호흡증이 있다. 이름 그대로 잠을 잘 때 호흡을 멈추는 상태를 말한다. 수면무호흡증은 산소포화도로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산소포화도가 95%인데,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일시적으로 산소포화도가 85%, 심하면 70%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산소포화도가 낮아지면 잠에서 계속 깨게 되는데 이게 수면의 질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내가 수면 무호흡증이 있는지 알게 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의 역할이 될 것이다. 갤럭시워치나 애플워치 같은 디지털 웰빙 제품으로도 측정할 수 있다. 다만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참고만 하는 것이 좋다.”
-디지털 치료기기로 불면증을 치료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현재 사용되는 디지털 치료기기는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를 디지털로 바꾼 것들이다. 불면증 환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누워있는다는 사실이 불면증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누워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불면증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가 개발하는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는 인지행동치료에 더해 일주기 리듬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알고리즘을 추가로 제공하는 것이다. 불면증의 원인이 일주기 생체리듬의 비정상적인 뒤처짐이 원인이 되기 때문이며 이를 앞당기는 생활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면 불면증이 해결될 수 있다.”
-우울증 확인에는 어떤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나.
“심장 박동수, 표정, 말투, 수면패턴 등 다양하다. 더 나아가서 이메일을 얼마나 자주 확인하는지도 우울증을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이메일을 자주 확인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거의 확인을 안하고 있으면 어떤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위성항법장치(GPS)를 써서 환자의 활동 범위가 어떻게 변하냐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사회 생활이 어려워지고, 활동반경도 점점 줄어든다. 평소와 비교해서 특정 시기에 활동 반경이 크게 줄어든다면 우울증의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신과에서 디지털 치료기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우울증 환자가 병원을 찾았을 때를 생각해보면, 의사들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설문을 작성한다. 문제는 환자가 스스로 우울하다는 얘기를 해야 최종적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우울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가끔은 환자와 가족이 함께 찾아왔는 데 생각이 다른 경우도 있다. 환자는 스스로를 우울하지 않다고 얘기하고, 가족은 우울해 보인다고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도구로 유용하다는 의미다.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디지털 페노타입(표현형)이라는 용어가 있다. 아마 생소한 단어일 거다. 디지털 장치를 사용하기 전에는 측정하기 어려웠던 영역을 디지털 장치의 힘을 빌려 더 수월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면담과 설문 같은 방식으로 병을 찾아내야 하는 정신과에서는 중요하다.
정확한 진단을 하려면 환자가 감추고 있는 부분, 일상생활에서 겪는 부분들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짧은 진료 시간 동안 이를 알아내기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같은 디지털 장치로 실시간으로 행동 데이터를 얻고, 이를 진단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진단이 아니라 치료에도 쓸 수 있나.
“그렇다. ADHD 같은 행동장애에 대해서는 이미 디지털 치료기기가 나와 있다. 정신과에서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약을 처방하기도 하고, 심리상담을 하기도 한다. 인지행동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인지행동 치료는 어떤 교육을 통해서 환자의 생각과 행동을 교정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인지행동 치료를 하려면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야 하고 오랜 시간을 써야 한다. 그런데 만약 이 과정을 디지털로 만들면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정신질환, 기분장애를 어떻게 바라보나.
“아주 가벼운 수준의 기분장애는 때로는 천재성을 보이기도 한다. 인류 역사에 큰 기여를 한 사람들 중에는 조울증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정치 지도자, 예술가, 사업가 등 다양하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질환자를 부정적이고, 사회가 무조건 보호하거나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너무 초기부터 약을 사용하면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체감되나?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고, 의료인들의 수준도 높다. 서비스의 질도 세계 최상위권이다. 다만 정신질환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아쉽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정신건강요양시설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는 일들이 있다. 다행이도 지금은 예전보다는 인식 개선이 많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나.
“일부 실손보험도 문제 문제다. 우선 정신과 질환은 2016년 이전에 가입한 실손보험으로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비가 걱정돼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실손보험 가입을 거절당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서 이런 부분들이 모여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신질환에 대해 인식이 어떻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나.
“정신과는 낯선 공간이지만, 디지털 환경은 익숙한 시대다. 또 정신과 약이라고 하면 부정적이지만, 디지털 치료기기라고 하면 호기심과 흥미가 든다. 해외에서는 게임 형태의 디지털 치료기기도 있을 정도다. 앞으로 다양한 기술이 도입되면서 정신질환, 기분장애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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