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김진형 2022. 12.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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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 10권을 처분했다.

10권의 책을 가볍게 보는 것보다 1권을 깊게 읽는 것이 낫다는 표현은 '읽다'가 아닌 '쓰다'에도 통용된다.

지역 문화재단 지원금으로 읽히지 않는 책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편하다.

너무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서 오히려 정작 중요한 책들이 못 읽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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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형 문화부 기자

얼마 전 책 10권을 처분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20권이 새로 들어왔다. 문화부 책장은 영화 ‘모던타임즈’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책들이 끝없이 밀려 온다. 연말을 맞아 각 문화재단 지원사업으로 발간된 책이 성탄 선물처럼 쏟아진다. 문집·수필·시집·소설…. 언젠가 써야지 생각만 하는 가운데 기자의 작은 방에는 미뤄둔 책이 쌓여만 간다.

문학의 공급과잉 시대다. 쓰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앞지른다. 독자의 수요는 작가들의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10권의 책을 가볍게 보는 것보다 1권을 깊게 읽는 것이 낫다는 표현은 ‘읽다’가 아닌 ‘쓰다’에도 통용된다. 지난 가을 만난 한 평론가는 “한 권의 책이 남을 때까지 책장의 반을 비우고, 다시 반을 비운다”고 했다.

책을 만드는데 나무가 얼마나 베어졌을지 생각한다. 지역 문화재단 지원금으로 읽히지 않는 책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편하다. 숙성되지 않은 글, 최소한의 편집과정을 생략한 채 독자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만든 책들이 그렇다. 너무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서 오히려 정작 중요한 책들이 못 읽히는 것 아닐까. 재단 지원 출판도서 중에서는 온라인 판매가 안되는 책은 물론, ‘비매품’도 있다. 작가들도 동료 작품을 읽지 않는다.

일반 상업 출판사에는 편집자들이 있다. 앞에 나서지 않지만 저자와 비슷한 위치를 가진다. 편집자가 손 대면 표지 디자인부터 달라진다.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하고 내용과 문장, 구성까지 함께 고민한다.

어떤 시인은 “문예창작지원금은 구휼미가 아니다”라고 했다. 문학평론가 김겸도 “쓸데없는 책은 환경과 자원 낭비, 더 나아가 공해”라고 했다. 동감한다. 창작지원금이 없으면 책을 내지 못하는 작가들이 있는만큼 분명 필요한 제도다. 다만 지원금 없이도 시장의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 도전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작가와 독자 두 날개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단 한 권의 좋은 책을 위한 장기적 관점도 필요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은 기존 책을 1쇄 더 발간, 도서관에 보급하는 방식으로 작가들을 지원한다. 기존 저서를 꾸준히 지원한다면 정당한 평가와 더불어 ‘정산’이라는 복잡한 방식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책’ 자체가 증명서이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책을 선정해 소개하는 일도 중요하다. 숙제 내주듯 사업계획서를 주고 급하게 책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작가를 지원해야 한다. 출판 상담과 교육, 기존 책 아카이브화 등도 시급하다. 예술의 근간인 인문학 저서에 대한 지원도 있어야 하고, 오래된 책도 다시 읽게 만들어야 한다.

말과 글이 낭비되는 시대. 책을 찍을 때마다 나무도 찍혀나간다. 오늘도 나의 게으름을 자책하며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책을 찾기 위해 방으로 향한다. 책은 읽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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