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코로나와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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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것이 왔다.
지금 나는 나흘 째 혼자만의 방에서 칩거 중이다.
즉 코로나와 동거 중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 중에 'Ca depend.' 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누군가 내게 코로나의 경험을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속으로 이 말을 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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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것이 왔다. 지금 나는 나흘 째 혼자만의 방에서 칩거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가 아니다. 즉 코로나와 동거 중이다. 12월이 되면서 미뤄두었던 만남이 잦아지고 당연히 간만의 회포에 술 한 잔과 맛있는 식사가 곁들여지면서 불청객도 슬그머니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행히도 내 경우엔 증상도 경미하고 이대로라면 가벼운 독감 정도로 지나갈 것 같아 초반의 정신적 공황만 빼면 꽤 점잖은 골칫덩이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 중에 ‘Ca depend.’
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누군가 내게 코로나의 경험을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속으로 이 말을 읊을 거 같다. 해석하자면 ‘나름대로 (아프거나 덜 아프거나)’
그런데 이 ‘자기 사정에 따라 제각각’ 증상이 칩거 사흘째쯤 접어들면 무효화된다. 모두, 한결같이 지루함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는 뜻이다. 처음엔 침상에 누워 적절히 환자 코스프레를 즐기며 ‘하늘도 땅도 다 침대’ 놀이를 하다가 슬슬 자의반 타의반 묵언수행에 지쳐 입부터 근질근질 거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운신의 폭이 화장실, 방, 가족들에게 민폐 안 끼칠 정도의 최소 동선으로 거실 횡단이다 보니 열심히 쳇바퀴 도는 처량한 다람쥐 신세가 따로 없다. 이쯤 되면 드디어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광속 서핑을 시작한다. 더 이상은 화면을 들여다 볼 수 없을 만큼 눈이 뻑뻑해지고 기초 대사량 자체가 현격히 준 둔한 하루 이틀을 지내고나면 화장실에 오가며 한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게 되는데 바로 이 순간에 현타가 온다. “거울 속에 저 사람은 누구?”
모 대형서점 건물에 한동안 쓰여 있던 아름다운 문구 ‘지금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책, 당신 앞에 있는 친구, 당신이 점한 공간이 온전히 당신을 드러낼 것이다’가 갑자기 엄청난 저주의 한 구절이 되어 내 맘에 비수를 꽂는다. 웬만한 핫팩 역할 정도는 거뜬히 해낼 뜨끈한 휴대전화, 거울 속의 나 닮은 나 혹은 나 아닌 나, 기초 기능만 수행하는 좁은 화장실이 부끄럽지만 완벽하게 오늘의 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가끔은 이렇듯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고립된 섬 속에서 미처 몰랐던 자아가 ‘나’에게 손을 흔든다.
코로나라는 세계적 대재앙을 맞으면서 확실히 우리의 삶이 변했다. 공동체의 삶이 쪼갤 수 있는 가장 작은 개인의 단위로 분절되었으며, ‘손에 손잡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는 최고의 금기 조항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팬데믹 패닉’은 오히려 우리 모두는 서로 엄청나게 공고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주었다. 며칠 전 나와 그래도 지금까지는 직접적으로 무관했던 사회적 현상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현실의 일부가 되면서 나는 내가 ‘나’와 맺는 관계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내 일상은 지나치게 인터넷이 가능한 기기에 의존하고 있었고, 주어진 여유를 제대로 관리하고 즐길 준비가 부족했으며, 중년이 되면서 365일 입에 달고 사는 체중 조절의 적절한 타이밍을 눈앞에서 놓치고 있었다.
뜻밖의 재앙이 던져준 화두를 나는 이제 남은 격리 기간 동안 풀어보려 한다. 내가 사랑했던 ‘나’, 내가 존경하는 ‘나’, 내가 남기고 싶은 ‘나’에 대한 고민을 말이다. 코로나와의 앞으로 동행이 그 누구에게도 그저 재앙만이 아니기를 본격적인 겨울의 한 자락에서 방콕맨의 한 사람으로 기원해본다, “Ms Rona, shall we dance?”
홍지영 강원영상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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