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전체주의의 추락, 2022년의 세계사적 의의
‘백지 혁명’에 놀란 중국
히잡 시위에 정권 위기 이란
서로 별개 사건인 듯 보여도
보편적 가치 자유를 향한
염원이 인류를 하나로 연결
다사(多事), 다난(多難), 다재(多災), 다망(多忙)했던 2022년 한 해도 이제 다 저물어간다. 지구촌 곳곳에서 충격적인 사건·사고가 터져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 졸여야 했던 한 해였다. 신나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은하계 중심에 놓인 태양 400만개 규모의 거대한 질량 덩어리 ‘블랙홀’을 최초로 촬영해 공개했다. 대한민국은 순수 국내 기술로 누리호를 발사해 궤도에 안착시켰다. 중동에서 최초로 열린 월드컵에는 전 세계 관중이 몰려가 마스크를 벗고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이 지난 일을 그저 쉽게 잊는 듯하지만, 인간은 망각에 맞서 기억하고 기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과거사를 파헤치고 돌아보면서 우리는 저마다 삶의 의미를 해석한다. 훗날 역사가들은 과연 2022년을 어떻게 평가할까.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올해는 어떤 한 해였는가?
2022년 큰 사건을 들자면,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항전, 현재 진행 중인 이란의 시위, 중국 인민의 ‘백지 혁명’을 꼽을 수 있다. 일면 무관한 개별 사건 같지만, 정보통신의 발달로 전 지구는 이미 촘촘한 그물처럼 긴밀하게 묶여 있다. 세상 어느 지역도 고립된 섬이 아니다. 인과성을 증명할 순 없어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는 이 세상 사건들은 모두 동시성(synchronicity)의 원리로 의미 있게 연결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망동은 수천만 인구의 도시들을 수개월씩 총봉쇄한 중국의 전체주의적 망념과 공명한다. 도덕 경찰을 풀어서 여성의 복장을 감시하는 이란의 종교적 독단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중국, 이란은 국가가 진리를 독점하고,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며, 개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반(反)자유적 전체주의 체제이다. 최고 영도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일인지배(autocracy)라는 점도 세 쌍둥이처럼 닮았다. 현재 이 세 나라가 모두 위기에 빠져 허둥대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지난 9월 21일 러시아에서 대규모 징집령이 떨어진 후 불과 2주일 만에 최대 70만명이 주변국으로 탈출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다. 속전속결을 장담하던 푸틴은 이제 서방과의 지구전을 외치면서 핵 공갈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전승은 고사하고 무승부도 불가능한 상태다. 이란의 민중은 석 달째 전체주의적 신정 체제에 맞서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며 격렬하게 항쟁하고 있다. 전 세계 여러 국제정치 전문가는 이란의 이번 시위가 정권 타도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지난달 말 중국에선 “공산당 해산, 시진핑 하야”를 부르짖는 성난 군중의 대규모 시위가 전국 최소 17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놀란 중공 중앙은 졸속하게 제로 코로나 정책을 파기하고 180도 정책 전환을 선언했지만, 전염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나라 전체가 공포에 휩싸여 있다.
침략에 항거하는 우크라이나인들, 징집을 거부하는 러시아인들, 종교적 부조리에 저항하는 이란의 여성들, 전체주의적 통제에 맞서는 중국의 학생들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의 신장을 부르짖고 있다. 범인류적 가치에 비춰보면, 그들의 요구는 정당하고 세계사의 상식에 부합한다. 반면 서방 세계를 사탄이라 부르는 러시아의 차르, 위구르족을 탄압하며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쳐대는 중국의 황제, 양성평등을 죄악시하며 시오니즘의 음모라 말하는 이란의 제사장은 전 인류에 반기를 들고 자국민을 인질로 잡은 권력 중독의 독재자일 뿐이다. 겉으로는 막강해 보이지만, 그들은 지금 떨고 있다. 갈수록 민심이 떠나가고 국제적 고립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동차 안테나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달고서, 히잡을 풀어서 손에 쥐고 흔들며, 여러 도시 중국 대사관 앞에서 백지 시위를 벌이며 세계 시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2022년 한 해 자유를 향한 염원이 전체주의에 맞서는 인류를 하나로 묶었다. 자유는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이며, 인류 보편의 가치다. 북송의 거유(巨儒) 범중엄(范仲淹·989~1052)이 말했다. “외치고 죽을지언정 입 닫고 살아가진 않겠노라(寧鳴而死, 不默而生)”고. 새해 첫날 이른 새벽 큰 풍선에 그 글귀가 적힌 전단을 듬뿍 담아서 멀리 마파람에 띄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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