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워’ 저자 “미중 반도체 전쟁서 한국은 이익 본다”

김성민 실리콘밸리 특파원 2022. 12.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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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이 만난 사람]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관계 조명한 ‘칩 워’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

미 상무부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중국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업체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를 수출 통제 기업 명단에 추가했다. YMTC는 애플이 아이폰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사로 저울질하던 곳이다. 상무부는 “YMTC가 미국 국가 안보나 외교정책 이해관계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YMTC를 놔두면 중국의 힘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미국의 대중 규제에는 일본과 네덜란드도 동참했다. 지난 13일 블룸버그는 “일본과 네덜란드가 14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m) 이하 공정의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에 수출 금지하는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궁지에 몰린 중국은 WTO(세계무역기구)에 미국을 제소했고, 187조원에 달하는 자국 반도체 지원법 마련에 나섰다.

미·중 대립의 불길이 ‘첨단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산업으로 옮겨붙으면서,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움직임이 긴박하다. 세계 반도체 산업 지형도는 어떻게 변하고, 한국은 어떤 대응을 모색해야 할까. 최근 반도체의 기원과 이를 둘러싼 국가들의 관계를 조명한 책 ‘칩 워(반도체 전쟁)’를 출간한 미 터프츠대 크리스 밀러 교수와 14일 화상 인터뷰를 했다. 이 책은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경영 서적으로 뽑혔다.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는 14일(현지 시각) 화상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를 ‘초크(choke·목 조르기)’라고 했다. 그는 “전 세계가 최첨단 칩을 공급받는 사이, 중국은 규제로 인해 오래되고 비효율적이며 성능이 떨어지는 칩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며 “이 격차를 중국이 좁히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 밀러

◇미국이 중국 반도체 규제하는 이유

-수년간 반도체는 산업·경제 용어였지만 최근 들어 정치·외교 차원에서 더 논의되고 있다. 왜 그런가.

“최초의 칩은 미사일 유도 장치에 사용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후 수십 년간 기업들은 스마트폰이나 소비자용 IT 기기에 탑재하기 위한 용도로만 반도체를 다뤘고 군사적 용도의 중요성은 잊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두 가지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반도체가 다시 정치·안보 중심에 섰다. 첫째는 중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반도체를 개발하며 부상한 것, 둘째는 대만이 중국의 침공 위협을 받으면서 칩 공급의 안전성 우려가 부상한 것이다.”

밀러 교수는 ‘칩 워’에서 반도체를 국가 간 패권 경쟁의 핵심 요소로 설명했다. 최첨단 반도체를 차지하는 나라가 군사적 우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대 미국은 고성능 반도체를 탑재한 정밀 타격용 미사일을 개발해 소련과의 군비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최근엔 군사 분야에 인공지능이 접목되면서 반도체가 뒷받침하는 컴퓨팅 파워는 차세대 군사 시스템에 결정적으로 중요해졌다고 밀러 교수는 밝혔다. 반도체가 세계 경제 구도와 지정학적 힘의 균형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미국은 반도체로 중국의 힘을 본격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등으로 중국 반도체를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무엇을 원하는가.

“지난 10년간 중국은 반도체 분야, 특히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 반면 첨단 시스템 반도체 제조 분야는 뒤처진다. 미국은 오랜 논의 끝에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조만간 격차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규제를 통해 중국의 반도체 발전 속도를 늦추고, 현재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반도체 규제는 중국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는 중국의 군사력 증대를 견제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성장이 위협적이라면 미국은 왜 일찍부터 중국을 규제하지 않았나.

“지금 미국에서는 덩샤오핑 때부터 지난 40년간 중국의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을 너무 지지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미국은 1990~2000년대 중국을 돕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기술을 중국에 이전했다. 하지만 중국은 예상과 다르게 행동했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은 권력을 잡고 외교를 포함한 주요 정책에서 기존의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2000년대와 비교하면 많은 점이 다르다.”

◇미국은 계속 규제할 것

-미국은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과 인공지능 칩 수출을 금지했지만 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칩이나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허용한다. 이런 식이라면 규제 효과가 있을까.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 수출을 중지한 것이 핵심 포인트다. 반도체 장비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몇 곳 안 된다. 중국은 대체 공급처를 찾기 어려울 것이고,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중국에 최첨단이 아닌 반도체 수출을 허용하는 이유는 중국의 해외 반도체 의존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전 세계가 최첨단 칩을 공급받는 사이, 중국은 규제 때문에 비효율적이며 성능이 떨어지는 구닥다리 칩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규제를 그는 ‘초크(choke·목 조르기)’라고 표현했다.

-미국이 언제까지 중국 반도체 규제를 지속할까.

“중국의 지정학적, 군사적 위협이 지속된다고 보는 동안 계속 규제할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이 국내 정치와 외교정책을 바꾸지 않고 대만을 계속 위협한다면 규제는 지속될 것이다. 반도체 규제는 중국의 힘을 막는 것이다.”

◇미 규제로 한국은 경쟁 완화 효과 볼 것

-중국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시장이다. 중국 반도체 규제가 한국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난 몇 년간 중국은 반도체 산업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고, 이는 전 세계 반도체 산업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 YMTC, CXMT(창신메모리) 같은 중국 반도체 기업도 부상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 기업들에 장기적인 위협이 됐다. 규제로 중국 반도체 기업의 성장이 차단되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경쟁이 일부 완화될 것이다.”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가 쓴 ‘칩 워(반도체 전쟁)’. 이 책에는 ‘세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술을 둘러싼 싸움’이란 부제가 붙었다. /크리스 밀러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자립 열망에 불을 지필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중국은 투자를 확대하고 자국 반도체 업체에 힘을 더 실어 주는 조치를 하겠지만 세계 시장과의 기술 격차가 워낙 커서 쉽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5~10년 동안 중국은 고전할 것이고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같이 첨단 기술을 확보한 회사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일본·대만을 포함해 반도체 동맹인 ‘칩4’를 추진하고 있다. 칩4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칩4는 강력한 동맹이나 조약의 형태보다는 반도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하는 포럼, 대화의 장이라고 본다. 현재의 변화하는 반도체 산업과 규제에서 어느 한 국가나 기업에 과도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려는 목적이다. 칩4에서 미국·한국·일본·대만이 반도체 산업을 놓고 효과적인 조정을 이뤄내면 이보다 나은 대중국 정책은 없을 것이다.”

◇미국 혼자서 반도체 자급망 구축 불가능

-최근 미국은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 같은 대형 반도체 업체들의 신규 공장을 유치하며 반도체 자급망 구축에 나섰다. 미국의 목표는 뭔가.

“나는 미국이 진심으로 자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 행정부에서도 ‘반도체 자급망(self-sufficiency)’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첨단 반도체 산업은 다양한 국가와 기업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어느 기업이나 국가도 혼자서 첨단 반도체 설계부터 소재 공급, 생산, 파운드리(위탁 생산)까지 모두를 할 수는 없다. 다만 최근 여러 국가가 대만의 지정학적 위기를 우려하며, 대만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 구조를 분산하려고 한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경제적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대만해협 밖에서 첨단 칩 생산 능력을 구축할 필요가 생겼다.”

-반도체는 글로벌 분업으로 작동하는 산업이다. 미국은 설계, 일본은 소재를 제공하고 한국과 대만에서 첨단 칩을 만든다. 수많은 반도체가 들어가는 IT 기기를 조립하는 것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한다. 앞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어떻게 바뀔까.

“이달 초 TSMC의 미 애리조나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세계화는 끝났다’고 했다. 나는 그가 정확한 개념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중국 외 기존 반도체 공급망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소재는 일본, 생산은 한국과 대만, 완성품 조립은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하게 될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기술이 발달하고 생산 비용이 감소하면서 동남아에서 진행하던 IT 기기 조립이 한국이나 대만,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있다.”

-삼성전자, TSMC 같은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한국과 대만에선 ‘자국 반도체 산업을 미국에 뺏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와 TSMC는 앞으로도 자국에서 가장 진보된 기술을 계속 개발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와 상당한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특화돼 있다. 다른 나라가 이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과 대만은 세계 모든 선도적인 기업들의 구애를 받고 있다. 미국이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금까지와 다른 환경에 직면하는 것은 중국뿐일 것이다.”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미국 내 떠오르는 신진 경제사학자이자 교수.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외교 안보 전문 대학원인 미 매사추세츠주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에서 국제사를 가르친다.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유라시아 프로그램 국장을 맡고 있다. 러시아와 튀르키예, 중국의 국제 정치와 경제의 주요 변화, 미국과 중국, 동아시아의 반도체를 둘러싼 정치·외교를 연구한다. 하버드대에서 역사학 학사, 예일대에서 석·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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