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광기의 역사’ 되풀이하지 말아야
우리나라 비슷한 사건은 형제복지원·영화숙·재생원…국가의 사과와 지원 필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1961년 박사학위 논문 ‘광기의 역사’를 발표했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서구 사회의 질서가 이성을 기초로 이뤄졌다는 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광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밝힌다.
광기는 고대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됐다.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런 생각은 이어졌다. 그래서 광기는 질병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광인은 일반인과 함께 살 수 있었다.
17세기 이성의 시대가 열렸다. 이성과 비이성이 분리돼 광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았다. 비이성적이고 반사회적인 비정상인은 배제와 교정의 대상이 됐다. 17세기 중반 유럽 각국은 구빈원을 설치해 사람들을 잡아 가뒀다. 한때 파리 시민의 1% 이상이 감금됐다. 감금 대상에는 광인뿐만 아니라 극빈자 거지 부랑아 등이 포함됐다. 18세기 후반 산업의 발달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감금이 풀렸다. 대부분 산업현장의 최하층 노동자로 편입됐다. 끝까지 남은 건 광인이었다. 광기는 치료를 받아야 할 질병으로 여겨졌다. 광인을 위한 전용시설이 정신병원의 기원이 됐다. 눈여겨볼 대목이 몇 군데 있다. 구빈원을 설치하고 광인과 부랑아 등을 감금한 주체는 국가였다. 그리고 감금이 성행한 시기는 17세기 이후였다.
‘광기의 역사’를 보면서 20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떠오른다. 형제복지원으로 대표되는 인권유린 사건들이다. 최근 국제신문의 보도로 세상에 드러난 영화숙·재생원도 형제복지원과 다르지 않다.
유럽에서 국가가 구빈원을 설치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감금을 합법적으로 만들었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조치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 지침’을 통해서다. 형제복지원은 부산시와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근거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사회적 약자인 부랑아 장애인 청소년 등 3만8000명을 마구잡이로 입소시켰다. 알려진 대로 끔찍한 인권유린이 자행됐고 6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형제복지원 사건 이전인 1960년대에 격리·감금과 인권유린이 자행된 영화숙·재생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피해자 대부분 어린 나이에 처참하게 인간의 존엄을 빼앗겼다. 살아남은 자들은 트라우마로 평생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아직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영화숙·재생원의 배경에도 국가가 있다. 영화숙·재생원은 형제복지원의 근거가 됐던 내무부 훈령 제410호 이전에 부산시로부터 업무위탁을 받았다. 부산시는 1968년 조례를 만들어 부랑인 단속과 수용 권한을 민간시설에 넘겼고 보조금을 지급했다. 부산시, 즉 국가가 시설 운영과 존립 근거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오랫동안 외면하고 침묵했다. 지난 8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공식 인정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진 지 35년 만에 국가 책임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단지 인정만 했다. 국가의 사과와 지원도 권고했지만 아직 국가의 사과와 지원은 없다. 결국 피해자들은 지난달부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다시 ‘광기의 역사’로 되돌아가자. 푸코가 박사학위로 발표한 것이 1961년이다. 푸코는 1984년 사망했다. 만약 푸코가 1960년대에 부산의 영화숙·재생원을 알았다면, 죽기 전에 형제복지원 사건을 접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17세 이후의 서구 사회를 분석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단지 광인이 부랑아나 거지 등 사회적 약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판 ‘광기의 역사’가 형제복지원이고 영화숙·재생원이다.
푸코에 따르면 서구사회는 이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광기가 필요했고 광인을 배제·감금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감금은 사회적 약자를 사회에서 격리한 ‘인간 청소’에 가까웠다. 사회적 약자를 격리하고 감금한다는 발상 자체가 인권유린이다. 더욱이 감금을 넘어 살인 강제노역 폭행 성폭력이 국가의 비호 아래 저질러진 점에 대해서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인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려면 국가의 사과와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영화숙·재생원 등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인권유린 사건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다시는 ‘광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김희국 편집국 부국장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