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신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
전남 진도대교는 국내 최초의 사장교(cable-stayed bridge)로 울돌목을 횡단하는 다리다.
울돌목은 명량의 별칭인데, 명량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국운이 걸렸던 명량대첩이 있었던 바로 그곳이다. 다리를 건너 진도에 들어서면 좌측 망금산 꼭대기에 그럴싸한 건물 하나가 몇 해 전 들어섰다. 진도타워다. 진도타워에는 명량대첩을 기념하는 공원이 조성돼 있어, 충무공 이순신을 비롯한 명량의 영웅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노산 이은상이 ‘민족의 성전(聖典)’이라고 극찬했던 ‘난중일기’(국보 제76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관한 전시도 볼 수 있다.
거기서 울돌목을 바라보며 감히 충무공 이순신의 정신을 헤아려 보았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약 1년 2개월 전에 전라좌수사가 됐다. 국난을 예견한 그는 부임 직후 전라좌수영 본영과 관할 지역을 세세히 순시해 군의 기강을 확립하고 왜군 정보를 수집하며 과거 왜변(倭變)에 대한 자료를 연구했다. 주변 지리와 지형을 관찰하고 군사적 요충지를 물색하고 점검했으며, 군사들의 실전 전투력을 강화하고 엄격한 군율과 함께 굳건한 정신무장으로 군 전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전쟁에 대비한 모든 준비를 철저히 마쳤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가슴 벅차게 자랑스러운 것은 ‘거북선’이다. 그는 1년여 동안 준비한 끝에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인 1592년 4월 12일에야 비로소 기적처럼 거북선을 완성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거북선이야말로 그의 유비무환 정신의 정수(精髓)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선조의 출전 명령! 그때마다, 그는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고 장계를 올리며 전투에 나아갔다. 그 결과, 그는 23번 전투에 나아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의 연전연승은 전쟁의 고통과 패배감·무력감에 빠져있던 조선 민족이 하나로 뜻과 힘을 합할 수 있도록 한 벼리가 되었고, 국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조선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
그때로부터 430년이 지난 2022년을 살아내는 대한민국을 돌아보자. 올해 우리는 또다시 큰 아픔을 겪었다. 단순히 아픔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비통하다. 이태원 참사다. 158명이 사망했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총 6309명이 거주하는 작은 동네 이태원1동에 하루 약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모일 것으로 이미 예견했었다. 예견했다면 그다음은? 당연히 대책과 준비가 따라야 했었다. 하지만 준비는 없었다. 결국 ‘무비유환(無備有患)’이 된 것이다.
국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는가 하면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도 하고, 재난대책본부·사고대책본부·특별수사본부 등을 구성해 사후 수습을 했다. 국정조사도 예정돼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후(事後) 수습이다. 조선 인조 때 학자인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이 죽은 후엔 좋은 약을 써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즉,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대책을 세워 준비해야지, 일이 일어난 후엔 소용없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단단히 고치라는 것이다.
다만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과 함께 꼬리자르기식 처벌이 아닌 책임 있는 자의 책임지는 모습, 그리고 유족에 대한 진정한 위로와 사과, 다시는 이런 참담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촘촘하고 면밀하며 구체적인 대책 수립과 철두철미한 준비와 실행이다.
나 자신에게도 자문해본다. 나는 과연 나의 삶의 방향과 목표, 예견되는 일들, 일상의 변수 등에 대비해 얼마나 진중하게 준비하고 있는지 말이다.
2023년이 이제 겨우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계묘년(癸卯年)에는 나를 포함한 모든 개인이, 사회가, 국가가 각 영역과 분야에서, 제 조직과 시스템에서 철두철미한 ‘준비’를 마치고 빛나는 새해를 맞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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