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수의 그림산책] 풍곡 성재휴의 ‘배암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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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도 아니고 개구리도 아닌 통통하게 생긴 '맹꽁이'라는 양서류가 있다.
맹꽁이는 위험에 처하게 되면 복어처럼 배를 불리는 습성이 있다.
가는 나뭇가지로 등이나 배를 톡톡 치면 위험에 처한 맹꽁이는 배를 자기의 몸 두 배 정도 될 때까지 크게 불렸다.
어른들은 실속도 없이 허풍을 떠는 사람을 보면 맹꽁이처럼 배불리는 소리 한다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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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도 아니고 개구리도 아닌 통통하게 생긴 ‘맹꽁이’라는 양서류가 있다. 맹꽁이는 위험에 처하게 되면 복어처럼 배를 불리는 습성이 있다.
어려서 친구들과 맹꽁이를 가지고 노는 일이 많았다. 가는 나뭇가지로 등이나 배를 톡톡 치면 위험에 처한 맹꽁이는 배를 자기의 몸 두 배 정도 될 때까지 크게 불렸다.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재미있어 맹꽁이 힘든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개구쟁이 노릇을 계속했다. 어른들은 실속도 없이 허풍을 떠는 사람을 보면 맹꽁이처럼 배불리는 소리 한다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다른 동물들도 자신의 몸을 크게 하여 다른 생존 경쟁자들에게 과시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행동은 생태계의 본능인 것 같다.
사람의 경우에도 어려운 상대를 만나면 한껏 허풍을 떨어 능력을 과시하는 이들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강자에게 늘상 당하고 살다가 술김에 호기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화가 풍곡(豊谷) 성재휴(成在休, 1915~1996)가 저명한 한학자 산강재(山康齋) 변영만(卞榮晩, 1889~1954)을 찾아갔다. 마침 변영만은 책을 읽다가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성재휴가 놀라 그 이유를 물으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선비가 책을 읽으며 술을 마시다 술병 뚜껑을 닫지 않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쥐 한 마리가 나와 술병을 넘어뜨리고 술을 핥아 먹었다. 쥐는 대취하여 정신을 못 차리고 ‘고양이 나와라’라고 큰소리쳤다는 것이다. 성재휴 또한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우스워 한참을 웃었다고 한다.
성재휴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 이야기가 계속 머리에 맴돌아 그림으로 그리고자 했다. 주인공으로 쥐를 대신해 같은 처지의 약자인 개구리를 택했다. 술병에서 흘러내린 술을 핥는 것보다는 인간의 모습처럼 술잔으로 마시게 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그래야 인간의 삶을 표현한 비유적인 그림이 될 듯했다.
성재휴는 자신도 한잔 마신 후 얼른 종이를 펴고 붓을 들어 재빨리 휘두르기 시작했다. 붓은 시원하게 허공을 가르며 술 취한 개구리의 모습을 그려 나갔다. 먹을 푹 찍어 하늘에 가득 차게 큰 보름달도 띄워 놓았다. 작가도 취했는지 달을 그린 붓 선들이 뱅글뱅글 자연스럽게 돈다. 개구리의 눈에 비친 달이 빙글거리며 도는 것인지, 작가의 마음이 도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점차 개구리의 취기가 도도히 올라온다. 그동안 얼마나 강한 자들에게 쫓기며 살아왔던가? 가진 것 없고 약한 것도 억울한데, 강자 앞에서 오금이 저려 말 한마디 못 하고 살았다.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점차 취기가 오르자 얼굴은 붉어지며 몸은 늘어지고, 마음은 여유로워지며 배도 맹꽁이처럼 부풀어 오르며 겁도 없어진다. 그동안 생활에 쫓기기만 한 삶이 슬프고, 하고 싶은 말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도 후회된다. 몸이 나른해지며 나도 모르게 자꾸 입이 크게 벌어진다. 순간 평생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말을 참지 못하고 소리쳐 내뱉고 말았다.
“배암 나와라! 배암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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