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애도의 출발 그리고, 행동하는 애도
10·29 참사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방문 너머로 ‘어떡하노…’ 부모님의 연이은 탄식이 들려왔다. 뉴스 소리에 휴대폰을 켜고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포털사이트, SNS에 올라온 글들을 한참을 반복해서 본 후에야,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구나’ 인지되기 시작했다. 그날은 청소년 아이들을 위한 핼러윈 특별행사가 예정되어 있던 날이라, 빠르게 동료들과 논의하고 핼러윈이 없는 기획으로 전면 수정하기 시작했다. ‘나도 믿기지 않는 이 일을, 아이들에게는 무엇 때문이라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여러 의미로 마음이 착잡했다.
이날 이후로 수많은 뉴스기사, 거리에서 ‘애도’라는 단어를 만났다. ‘애도’ 꼭 필요하고, 마땅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마냥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애도’는 ‘침묵’의 동의어가 아닌데, 타자를 향한 마음이 존재한다면 ‘애도’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뤄질 수 있는 것일 텐데, 마땅히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과 같이 이야기되는 말들이 불편하게, 또 어렵게 다가왔다. 마음을 충분히 전함을 실천하기도 전에, 조심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사람들이 퇴근할 무렵의 시간, 서면에서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려 지하철에서 내리던 순간이었다. 폐쇄된 지하철 역사 공간, 갑자기 밀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불안함이 몰려왔다. 10·29 참사 당시 SNS에서 보게 되었던 장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사진들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면 괜찮았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지만, 나의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사고 현장을 보고 난 트라우마는 ‘일상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믿게된 후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서서 잠깐 멍하니 쉬어간 후에야,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제대로 꺼내지지 못한 채 스며든 불안은 일상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또 일주일 뒤, 고치 식구들 사이에서 CPR 교육을 진행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CPR 교육이란 말 그대로, ‘행동하는 애도’를 의미했다. 더불어 개개인이 스스로 소화해야 했던 참사의 아픔을 꺼내어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다. 길을 잃다 방향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일주일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상상, CPR 교육’ 사명을 가지고 교육을 진행한다는 간호학과 교수님들,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는 CPR 기계 업체 대표님, ‘위급상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이야기하는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 속에, 이미 애도는 시작되었다.
11월 중순, 고치가 운영하는 두 곳의 공간(프린체, 청년월동기지 니트플레이스)에서 ‘행동하는 애도’의 자리가 열렸다. 2시간 남짓한 동안, CPR 실습을 하며 목이 쉬고, 땀이 흐르고, 팔이 후들거려도 강사진, 참여자 모두에게서 지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내 눈앞에 누워있는 한 사람을 내가 살려낼 수 있을까, 아니 살려내야만 한다’에 대한 간절함만 존재할 뿐. ‘좋은 애도’란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마음을 다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 앞의 타자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이렇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저렇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고민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좋은 애도란 존재하지 않았다. 정해진 애도도 없었다. 그저 마음을 다해,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만 존재하며, 내 마음은 깨끗하고, 진실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갖춰야 할 태도였던 것이다.
10·29 참사 이후, 50여 일이 지난 현재. 동료가 전해준 글을 다시금 떠올리며, 태도를 고쳐 잡아본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000명이 죽었다는 것을 ‘5000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000건 일어났다’가 맞다. (중략)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신형철 ‘인생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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