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가 만든 ‘한국 첫 아동극장’ 다시 문연다

장해봉 시민기자 2022. 12.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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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전용극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 서구 부민동에 문을 열었다.

독립운동가인 한형석 선생이 한국전쟁 시기에 설립한 자유아동극장이다.

1층 한형석기념관에는 중국과 한국에서 독립운동가·예술가·교육자로 활동한 선생의 업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된다.

광복을 맞아 귀국한 한 선생은 한국인에게 시급한 것이 어린이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1952년 부민동3가 자신의 집 마당에 사재를 털어 자유아동극장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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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항일 운동한 한형석 선생, 中서 공연하며 독립 자금 대기도

- 귀국뒤 낮엔 극장, 밤엔 야학 운영
- 어린이 교육 힘 쓰며 희망 심어줘
- 서구, 부민동에 복원사업 진행 중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전용극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 서구 부민동에 문을 열었다. 독립운동가인 한형석 선생이 한국전쟁 시기에 설립한 자유아동극장이다.

부산 서구가 한형석 자유극장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복원공사 시작 전의 모습.


서구가 63억2000만 원을 투입한 ‘한형석 자유아동극장’ 복원 사업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해돋이로 297(명예도로인 먼구름 한형석 길)에 터를 잡은 새 자유아동극장은 2층 규모(연면적 820㎡)다. 1층 한형석기념관에는 중국과 한국에서 독립운동가·예술가·교육자로 활동한 선생의 업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된다. 관람석 160석을 갖춘 2층 아동극장은 아동·청소년의 눈높이와 감성에 맞도록 원형극장 형태로 설계됐다. 선생의 작품은 물론 각종 공연과 청소년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한흥교(중국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선생의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한형석 선생은 호가 먼 구름이다. 어릴 적부터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영특했던 한 선생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있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현지 아이들로부터 ‘망국노’라는 놀림을 받았던 한 선생은 부친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키웠다.

음악과 예술에 뛰어났던 그는 총칼 대신 선율로 독립운동을 했다.‘압록강 행진곡’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군가를 작곡·작사했다. 1939년에는 한국 최초의 오페라 ‘아리랑’을 작곡했다. 1940년 중국 서안에서 공연을 해 얻은 수익금은 한국청년전지공작대(광복군의 전신)의 피복비로 사용했다.

광복을 맞아 귀국한 한 선생은 한국인에게 시급한 것이 어린이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1952년 부민동3가 자신의 집 마당에 사재를 털어 자유아동극장을 건립했다. 500여 회에 걸친 아동극·그림극 공연과 영화 상영은 전쟁의 폐허 속에 있던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꿈을 키워주었다. 한 선생은 또 밤에는 색동 야학원을 열어 고아들에게 배움의 기회도 제공했다.

한 선생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중국에서부터 알려졌다. 중국의 한 음악학자는 한 선생의 작품을 알아보고 작곡자를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한 선생이 중국에서 ‘한유한’이란 이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 음악학자가 ‘한유한’이 한 선생인 줄 알고 찾아왔을 때 선생은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철기 이범석 장군이 생전에 “이채롭고 기수(奇秀)한 필법”이라 할 만큼 한 선생의 서예 솜씨 또한 뛰어났다고 한다.

복원을 앞둔 자유아동극장이 현재의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굳건한 민족의식을 일깨워줄 교육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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