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신뢰도 꼴찌 국회, 헌법 46조 2항 잊지 말아야

김봉기 산업부 차장 2022. 12.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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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국회에 많은 권한 줬지만
동시에 ‘국가이익 우선하라’ 적시
경제법안·예산안 지연하는 국회
여론조사 “신뢰 안한다” 81%

얼마 전 몇몇 IT(정보 기술) 산업 인사와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언론 보도 이후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 최대 AI(인공지능) 연구소 오픈AI의 채팅 로봇 ‘챗GPT’를 화두로, 대화는 문화·과학·의료·금융 등 사회 영역 곳곳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AI의 활약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 명이 “이제 ‘AI 국회의원’도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말하자 “요즘 국회를 보면 차라리 AI에 맡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호응이 나오면서 갑자기 대화 주제가 국회에 대한 불만으로 바뀌었다. 요즘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도 하나로 똘똘 뭉치지 못하는 정치권을 향한 답답함이었다.

18일 서울 여의도 인근 한강변에 꽁꽁 언 고드름 너머로 국회가 보이고 있다./뉴스1

‘양보를 하지 않는 상대방 때문’이라고 서로 주장하는 여야 정치권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눈에는 여야 누가 더 책임이 있느냐보다는 정치권, 국회 전체의 잘못으로 비친다. 실제로 지난 12~14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주요 여론조사 업체 네 곳이 공동으로 진행한 국가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여섯 기관 중 ‘꼴찌’였다.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해당 기관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지방자치단체 49%, 경찰 48%, 법원 44%, 정부 43%, 검찰 39%, 국회 15% 순으로 나타났다. 아예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에선 국회가 81%로 압도적 1위였다. 그다음이 검찰(56%), 정부(54%), 법원(50%), 경찰(48%), 지방자치단체(43%) 순이었다. 특히 응답자 중 보수 지지층 82%가, 진보 지지층은 78%, 중도는 87%가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국회 행태를 보면 유추 가능하다. 여야 간 충돌로 내년도 국가 예산안은 법정 시한(지난 2일)을 훨씬 지나고도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국가 핵심 산업이자 안보와 직결된 ‘반도체 지원법’은 발의 4개월 반이 넘었는데도 이제 고작 ‘반쪽’ 처리를 위한 첫 관문만 넘었다. 반도체 지원법을 구성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중 전자만 지난 15일 소관 상임위(산자위)를 간신히 통과했고,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소관 상임위(기재위)에 묶인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요청한 법인세 인하도 여야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국회는 국정감사 피감 기관도 아닌 기업의 경영진을 매년 국감 증인으로 소환하고 있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로 2020년엔 기업인 증인 수가 63명이었지만, 지난해 약 90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100명이 넘는 기업인이 국감장으로 불려 나왔다.

국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AI에 맡겨보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국회나 국회의원의 권한은 우리 사회의 근간인 헌법이 부여한 것인 만큼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권한 행사에는 의무가 뒤따른다. 우리 헌법은 국회와 의원들에게 입법권(40조), 불체포특권(44조), 국가 예산 심의·확정권(54조), 국정조사·감사권(61조)을 주면서도 46조 2항에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정파나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이익이다. 국회가 신뢰를 잃은 건 국가 이익보다 정쟁(政爭)을 벌이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뢰 회복도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고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볼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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