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신정체제 43년만에 최대 위기… 반정부 시위 속 유럽·중국도 등돌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2. 12.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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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여성·청년·소수민족이 시위 중심, 빈곤층도 가세 조짐
유럽, 러에 드론 지원한 이란에 분노… 중국은 사우디와 손잡아
시대착오적 복식 제한 고치고, 핵 합의 통해 경제난 타개 나서야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에 항의하는 이란인들이 지난 10월 아미니의 고향인 이란 북서부 사케즈를 향해 차량 이동 중인 가운데, 히잡을 두르지 않은 여성이 차 위에 올라가 있다. /AFP 연합뉴스

이란이 심상찮다. 혁명 4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발단은 9월 16일 히잡 불량 착용을 이유로 교화시설에 입소했던 22살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였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분노한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히잡을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의 강경 진압은 여성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지금까지(12월 12일 기준, 이란인권행동단체 추산) 어린이 68명을 포함, 490명이 목숨을 잃었다. 저항은 전국으로 퍼졌다. 북서부 쿠르디스탄에서 수도 테헤란 및 남동부 발로치스탄까지 전국 150여 개 도시에서 1000건 이상의 시위가 이어졌고 1만8000명이 구금되었다.

본디 시위가 낯설지 않은 나라다. 본격적 시위는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 항의로 72명이 사망했던 2009년 녹색 운동부터 도드라졌다. 경제난이 심화될 무렵인 2017년에도 최고지도자 등 체제 기득권 세력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며 저항하다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9년 파업 시위 때는 정부의 무차별 진압으로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목숨을 건 시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란 신정 체제가 강고하게 유지되어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공권력의 힘이었다. 바시지 민병대와 보안 경찰은 무섭고 잔인했다. 또 다른 이유로 이란 시위의 특성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선거 부정이나 부패에 항의하는 정치 시위였고 주체는 중산층과 지식인이었다. 다만 혁명 대신 개혁을 원했다. 체제 전복까지 겨냥하지는 않았다. 뚜렷한 리더가 없었다는 점도 이유였다. 지도급 인사들은 정부에 의해 이미 구금되거나 가택연금 상태였다. 저항을 결집할 핵심 인사가 없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동력을 잃었던 것이다.

이번 히잡 시위 역시 이전과 비슷하게 잦아들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긴 하다. 구심점이 없다. 쟁점도 여성의 복식과 연관된 젠더 문제였기에 정치 논쟁에 비해 초기 폭발력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전과는 다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거리에 나선 여성들은 용감했다. 평균 15세 내외의 여학생들이 주축이었다. 이들이 나서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젊은 세대로 확산되었다. 여기에 쿠르드, 발로치 등 소수민족들이 가세했다. 젠더, 세대, 민족 문제가 합쳐졌다.

좀 더 나아가 계급 시위로 확산되면 판은 달라진다. 징후가 보인다. 이번 시위가 예상외로 넓게 확산된 배경에 경제난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폭발력이 강하다. 체제를 지지해 온 빈곤층이 반정부 대열에 서면 양상은 순식간에 변한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삶의 질이 추락한 최근 몇 년간 정부는 딱히 빈곤층을 회유할 묘안이 없었다. 상식적인 방법은 이란 핵합의 재협상을 타결 짓고 제재를 풀어 경제에 숨통을 트는 것밖엔 없다. 그러나 쉽지 않아 보인다. 이념에 사로잡힌 최고지도자와 그 핵심 옹위 세력이 체제 붕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개혁정책을 펴기는 어렵다.

외교도 꼬였다. 이란은 무리수를 두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에 미사일과 드론을 공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럽은 분노했다. 핵합의 재협상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3국이 미국과 이란을 설득하며 얼마나 동분서주했던가. 어떻게든 이란을 품으려 했다. 그런데 이란 무기가 유럽을 때리게 된 것이다. 이제 유럽은 이란을 적으로 인식한다. 이란 국민은 기가 찰 노릇일 터다. 국내에서는 지금 자유를 외치며 저항하는 시민들이 죽어가는 판에 침략의 주역 러시아와 손을 잡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정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충격적인 소식이 하나 더 전해졌다. 이번 달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우디 국빈 방문 때 이란의 입장에 반하며 걸프 왕정 편을 들었다. 2020년 시진핑은 이란과 25년 동안 4000억달러 규모의 경제 협력을 약속했다. 중국은 반미 성향의 이란을 파트너로 삼아 중동 내에서 일대일로의 입지를 다지려 했다. 그런데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틀어진 틈을 타 중국은 사우디와 손을 잡고, 결과적으로 이란의 뒤통수를 친 셈이다. 본래 이란은 중국을 미더워하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의 제재 복원으로 어려움을 겪던 터라 대안이 없었다. 지금 다급하게 손을 잡은 러시아도 언제 비슷하게 나올지 모를 일이다.

내우와 외환이 겹친 이란에 선택지는 많지 않다. 물론 답은 있다. 국민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핵합의를 다시 살려 제재 해제를 통해 경제난 타개에 나서야 한다. 위기감을 느낀 이란 정부는 약간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히잡 착용 법률 재검토에 들어갔고 단속하던 도덕 경찰도 자취를 감추었다는 후문이다. 핵합의 재협상에서 그간 완강히 거부하던 미신고 핵물질 사찰을 위해 국제원자력기구 인사들이 곧 이란을 방문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아직은 일시적인 변화로 읽힌다. 시위 주동자에 대한 처형이 계속되고 있다. 적법한 사법절차를 뛰어넘는 사형 집행은 국가 살인에 가깝다. 외교 면에서도 적대관계를 양산하고 있다. 유럽도 적으로 돌리고, 그나마 이란을 이해하는 편이었던 미국의 이란 핵 특사 로버트 말리도 돌아섰다. 중국에까지 배신감을 느끼게 된 상황에서 러시아만 남았다. 뚜렷한 대안이 없다 해도 러시아와의 연대는 결국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시리아에서 이란은 이미 러시아의 몽니를 충분히 경험했다. 숙환과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된 최고지도자의 고민이 하루하루 깊어진다.

미적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복식 제한은 시대착오적이다. 문화상대주의로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 규정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형벌을 받고, 심지어 죽어간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체제를 지키기 위해 자국민을 학살하는 일은 야만이다. 야만은 결국 국민에 의해 배척당한다. 이란이 야만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변화를 모색하고 새 길을 갈 것인가는 온전히 지도자의 몫이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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