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진보 정치인의 표상' 낸시 펠로시
트럼프 탄핵 주도한 여걸
오바마케어·주요 법안 통과시켜
항상 정파보다 국가 우선
'정치는 희망 주는 것' 보여준 리더
박종구 초당대 총장
지난 20년간 미국 워싱턴 정치를 움직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펠로시는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볼티모어시장을 세 번 지낸 뉴딜 정책 지지자였다. 부친의 영향으로 정치는 공공선을 위한 헌신이라는 의식이 형성됐다. 폴 펠로시와 결혼해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뉴욕타임스를 구독하고 민주당 진보 진영과 긴밀히 교류했다. 1987년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2002년 하원 민주당 원내부대표에 선임됐다. 2007년 사상 첫 여성 하원의장이 됐다. 2018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해 하원의장으로 복귀했다. 11월 중간선거 후 민주당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펠로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권위주의에 맞서 워싱턴 정치의 파행을 막고 두 차례 탄핵을 주도한 여걸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는 펠로시를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하원의장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펠로시는 여성 유리천장을 깬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다. 2007년 하원의장 취임사에서 “오늘 우리는 대리석 천장을 깨트렸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탁월한 정치 스킬과 담대함을 갖췄다. 정치 수완 면에서는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만이 그와 비견될 수 있다.
그의 정치관은 펠로시주의로 요약된다. 원칙과 현실 간 조화를 추구한다. 원칙이 없는 정치인은 존재 의의가 없지만, 실용적 행보를 하지 않으면 목표를 쟁취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입법을 중시했다. 의원의 제1 미션은 법을 제정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투철했다. 오바마와 바이든은 펠로시의 뛰어난 입법 스킬 덕에 주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와중에 집권한 오바마는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안을 제정해 파생금융상품 규제, 금융소비자보호국 신설, 금융회사에 대한 안전성 평가 등을 추진할 수 있었다.
오바마의 최대 치적인 오바마케어는 펠로시의 회심작이다. 테디 케네디 상원의원의 급사로 의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강력한 입법 드라이브로 의료개혁법을 통과시켰다. 2000만 명이 새로이 의료보험의 수혜자가 됐다. 의료보험 미가입 비율이 2014년 10.4%에서 2020년 8%대로 떨어졌다. 저소득층과 소수인종이 커다란 혜택을 받았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7800억달러 규모의 경제활성화 법안, GM, 포드, 크라이슬러 자동차 3사 구제 법안도 그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다. 바이든 집권 2년간 제정된 주요 법안도 정치력의 산물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재건 계획,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철도파업 금지법, 반도체 및 과학법 등 핵심 법안이 통과됐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지난 2년 동안의 인상적인 입법 성과가 자리 잡고 있었다.
펠로시는 항상 정파보다 국가를 우선시했다. 조지 부시의 이라크 미군 추가 파병안에 민주당이 격렬히 반대했다. 태풍 카트리나 사태로 정치적 자본이 고갈된 부시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대안 없이 철수하면 국익에 커다란 손실이 된다는 논리로 설득해 파병안을 통과시켰다. 2008년 가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몰려오자 부실자산 구제 법안을 신속히 통과시켜 월가의 붕괴를 막았다. 정치판을 읽는 눈이 남다르다. 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판단해 입법의 시점과 방향을 결정한다. 정치 자금 모금 능력이 탁월하다. 수많은 민주당 정치인이 펠로시의 정치 모금에 의존했다. 후배 정치인에게 아낌없이 돈주머니를 풀었다. 당내의 우호 세력을 결집하는 뛰어난 수완을 보여줬다. “근심하지 말고 조직하라”는 말은 실용적 정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진보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 입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지만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증오와 독설의 정치, 강성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정치에 함몰돼 있다. 펠로시의 정치 역정은 실천하는 진보 정치인의 표상이다.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 해외투자 '한경 글로벌마켓'과 함께하세요
▶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년치 생활비' 이체 받은 돈으로 주식 투자했다가…'날벼락'
- "15억 아파트, 9억에 매도"…한국 부동산 '손절'하는 중국인
- 아! 일본에 질렸다…개미들 '탈출 러시' 무슨 일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 "둔촌주공보다 3억 싸다"…서울 청약시장 '쌍두마차' 대격돌
- "예금금리 묶이자 돈 몰렸다"…은행 고객들 사로잡은 '이것'
- 360억 결혼식 올리고 이혼하더니…벌써 '재결합설' 들리는 안젤라베이비[TEN피플]
- 카타르 다녀온 안정환, "왜 하라는대로 안해? 개판이야" 분노 폭발('뭉쳐야 찬다2')
- 송민호, 세상 떠난 아버지에 편지…"매달 천만원 병원비 아까워 빨리 가셨나"
- [종합] 홍현희, 남편 믿고 출산했는데…"♥제이쓴에게 그런 대우 받고 사냐" 일침 ('전참시')
- 이상순, 제주 카페 논란에 "이효리와 무관…온전히 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