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77] 고창의 고려실(高麗室)
전북 고창은 고인돌이 1665기나 밀집해 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인돌 밀집 지역이다. 고인돌은 미니 피라미드에 해당한다. 이렇게 고인돌이라고 하는 미니 피라미드가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지역이 고대부터 식량과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었음을 말해준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펄에서 소금도 구웠다.
그러나 들판이 넓은 곳은 꼭 피를 부르게 되어 있다. 고창은 동학혁명의 근거지다. 혁명이 폭발하니까 농토를 가지고 있던 고창의 양반 사족 계층도 동학군에게 큰 타격을 받았다. 동학 이후로 밀어닥친 일본 토벌대에 선비 집안들 역시 시달렸다. 영남 양반에 비해서 호남 양반들 피해가 훨씬 컸다. 역사의 파도를 그렇게 맞고도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고창의 토박이 선비 집안들이 있다.
흥덕 고려실(高麗室)의 장흥 고씨들은 면암 최익현 학맥이고, 주곡(蛛谷)의 현곡정사 만권당은 간재 전우의 학맥이고, 진주 정씨들은 노사 기정진 학맥이었다. ‘고려실’은 무슨 뜻인가? 동네 입구의 커다란 바위에 ‘高麗谷’이라고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암각 글씨가 있는 동네 안쪽에서 사는 고씨를 통상 고려실 고씨라고 부른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섰을 때 이곳에 숨어 들어온 고씨들이다. 조선 조정에 나가서 벼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집안 가훈이었다. 이 집안의 집터와 묘터를 둘러보니까 문필봉이 보이는, 그래서 인물이 나오는 터를 일부러 피해서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밥이나 먹고 살면 되었지 너무 뛰어난 인물이 나오면 정치에 휘말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른 집안은 A급 명당을 쓰려고 눈에 불을 켰지만 고씨들은 B급 명당에 만족한 셈이다.
경남 함안에 가면 역시 고려동(高麗洞)이 있다. 담을 길게 쳐놓고 담장 밖은 조선이니까 우리는 담장 안의 고려 땅에서 살겠다고 다짐한 이씨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고려실 고씨들은 구한말이 되자 의병 운동에 앞장섰다. 고씨들은 면암 최익현(1833~1906)의 제자들이었다. 면암이 자기 고향도 아닌 호남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 와서 의병을 일으킨 배경에는 고씨들이 돈을 대고 핵심 연결 고리를 제공하는 뒷받침이 있었다.
면암이 대마도로 유배 갔을 때 한약을 구해서 대마도까지 가서 수발 든 인물도 고석진(高石鎭·1856~1924)이었다. 고창에는 간재, 면암, 노사 제자 집안이 남아 있다. 호남의 양반 사족 집안들은 19세기 말 이후로 영남에 비해서 훨씬 처신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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